두개의 9.19성명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역사이야기 연재] - 정욱식의 피스메이커①

/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1. 두 가지 질문 : 아직도 오지 않은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김정은 위원장과 확약했습니다.”


2018년 9월 19일 저녁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 마련된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이 경기장에는 약 15만 명의 평양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 대통령의 연설대 옆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부도 앉아 있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위와 같이 역설했다. 그의 연설에 15만명의 평양 시민들은 모두 일어나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이해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2018년 남북관계 최고의 명장면으로 이것을 뽑은 까닭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기한 내용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보다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14년 전에도 역사적인 합의가 있었다. 6자회담의 결과로 나온 9.19 공동성명이 바로 그것이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대표들이 서명한 9.19 공동성명은 모두 6개항으로 구성됐다. 1항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에 대한 내용으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 포기” 및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에 복귀”하기로 했고, 미국은 한반도 핵무기 부재 및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조선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2항은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추진을 담았고, 3항은 대북 에너지 제공이, 4항은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갖는 한편, 6자회담을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5항에는 상기한 합의 사항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단계적이고 상호 조율된 조치로 이행하기로 했다.


6자가 한반도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도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향해 “거보(巨步)를 내딛게 되었다”고 그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진통 끝에 나온 6자간의 9.19 공동성명은 어느덧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9.19 공동성명뿐만 아니라 6자회담 자체도 2008년 12월에 결렬된 이후 11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북미 갈등 해결을 위해 최초로 합의되었던 1994년 제네바 합의도 그 운명을 다한 지 오래되었다. 2018년 평양 공동선언과 그 이전에 채택된 4.27 판문점 선언, 그리고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싱가포르 공동성명도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숱한 합의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반도 평화는 오지 않은 것일까? 과거의 실패를 딛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본 글에서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2. ‘머피의 법칙’인가?


한반도 평화를 향한 노력은 최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 그리고 2007~8년에도 한반도 정세는 평화의 문을 두드렸었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를 향한 노력들은 엉뚱하게도 한반도 위기로 이어지곤 했다. ‘머피의 법칙’처럼 매번 북핵 문제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말이다.


그 기원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북일관계 개선도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를 ‘기만 계획’이라고 불렀다. 핵심적인 요지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한 플루토늄 90g은 거짓이고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핵무기 1~2개 분량인 10kg 정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일치’가 발생하자 미국은 북한에 특별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강도적 요구”라며 거부했다. 그러자 딕 체니 국방부 장관은 한미정상이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팀 스피릿’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고, 북한은 이에 격렬히 반발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1차 북핵 위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1992년 불거졌던 ‘불일치’ 문제는 16년 후에 대략적인 진실이 드러났다. 2008년 미국은 북한이 건네준 영변 핵시설 가동 일지를 검토한 결과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의 양이 정확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2002년에 북한을 이라크 및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불렀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8년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한 결정적인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이때에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2000년 6월에 열리는 등 남북관계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2002년 9월에는 최초의 북일 정상회담도 성사돼 ‘평양 선언’이 채택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200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천신만고 끝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미국 공화당이 취한 첫 번째 조치가 바로 대북정책 ‘교체’였다. 이들은 인수위 시기에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가로막았을 뿐만 아니라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대북 협상을 중단시키고는 ‘북한 위협’을 이유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선언했다.


2002년 10월에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을 이용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1994년 제네바 합의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와 북일 관계에도 제동을 걸려고 했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의도는 존 볼턴 국무부 차관(2019년 현재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발언 속에 잘 담겨 있다. “HEU는 제네바 합의를 깨부술 해머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은 여전히 논란거리이지만, 분명한 점은 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친서를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려고 하는 등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력히 희망했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편지조차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의 약속 사항인 중유 제공도 중단했을 만큼 강경한 자세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제네바 합의는 깨졌고 북한은 NPT에서 다시 탈퇴하곤 봉인되었던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고 말았다. 이른바 ‘2차 북핵 위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말았다.


2007년에는 북한의 시리아 핵 개발 지원설이 불거졌다. 이때에는 부시 행정부가 뒤늦게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선택해 6자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성명의 1단계 이행 계획인 2.13 합의와 2단계 이행 합의인 10.3 합의가 나오는 등 북미관계와 6자회담이 선순환을 그리고 있었다. 이에 힘입어 10월 초에는 2차 남북정상회담도 열렸다. 그런데 딕 체니 부통령 등 잔존 네오콘 및 이들과 동조한 세력은 이스라엘이 공습한 시리아의 의혹 시설은 핵시설이고 이건 북한이 지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실은 오리무중에 빠졌고 협상 동력은 급격히 위축됐다. 설상가상으로 청와대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이명박 정부마저 대북정책을 ‘교체’하면서 6자회담은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왜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에 설 때마다 어김없이 미국발 ‘비밀 북핵설’이 불거진 것일까? 이는 미국의 패권 전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때마다, 또한 주한미군 유지・강화 및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의 구실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북핵 문제를 과장하고 강경하게 대응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과거지사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은 세계적인 탈냉전 분위기에 따라 주한미군도 대대적으로 감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체니와 폴 월포위츠 차관이 장악한 펜타곤은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대규모의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핵 능력을 침소봉대하고 중단키로 했던 ‘팀 스피릿’ 훈련 재개를 밀어붙였다. 이러한 강경책의 이면에는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봉쇄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강하게 깔려있다. 그리고 북핵 위기를 틈타 주한미군 3단계 감축 계획은 중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전력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명명하고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MD 및 한미동맹 재조정과 미일동맹 일체화를 추진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큰 구실로 ‘북한위협론’을 들고 나왔다. 2009년에 집권한 오바마 행정부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미국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허덕이고 금융위기의 늪에 빠진 사이에 중국은 급격히 부상했다. 그러자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말부터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전략적 인내’로 후퇴했고 중국을 겨냥해서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구했다.


1990년을 전후해 유럽 공산국가들의 체제 전환과 독일 통일, 그리고 소련의 몰락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미국은 냉전에서의 승리를 선언했다. 동시에 아시아에서 부상하던 중국을 주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대놓고 중국봉쇄론을 말하는 것은 꺼려했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연관된 상황에서 중국을 적대국으로 취급하는 것은 미국에게도 상당한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위협론을 ‘꽃놀이패’로 이용했었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북한의 비밀 핵 의혹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의혹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이었었지만, 그 목적은 대부분 달성되기도 했었다.



3. 하노이 노딜의 원인


최근 상황은 어떨까? 큰 관심을 모았던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은 ‘노딜’로 끝나고 말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를 북한에 관철하려고 했던 것이 회담 결렬의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이와 관련해 존 볼턴 안보보좌관은 회담 결렬 이후 미국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건넨 ‘비핵화의 개념 문서’는 “핵과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라”는 것이었다며,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광범위하게 정의된 비핵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이 비핵화에 탄도미사일 및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하면서 이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면 북한이 거부할 것이라는 점은 미국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터였다. 미국의 의도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비핵화 정의’ 문서의 작성 주체와 그 의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존 볼턴 및 언론들에 따르면, 작성 주체는 국무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재무부, 에너지부 등의 핵심 관계자들이었다. 그 의도는 “이 문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으로 어정쩡한 타협을 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 : 백악관의 트럼프>를 떠올리게 한다. 2018년 9월에 출간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라는 놀랍게도 ‘북한’이다. 또한 이 책의 결론은 미국의 현직 관료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행정적인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전쟁도, 김정은과의 담판도 불사할 수 있는 트럼프에 대해 현직 관료들이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 정의 문서를 만든 본질적인 의도는 ‘전부면 좋고 전무도 괜찮다(All is good, but nothing is Okay)’는 데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노딜을 예감하면서 말이다. 협상을 불발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들이민 ‘비핵화 정의’ 문서가 정확히 그랬다. 트럼프는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더 이상 북한의 핵위협은 없다”거나 “한국전쟁을 끝내는 것은 대단 일이다”는 등의 트윗을 올리며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트럼프의 참모들이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러자 볼턴은 동료들을 이렇게 안심시켰다고 한다. “걱정하지 말라. 협상은 붕괴될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이 문서를 수락하고 김정은에게 건넨 것일까? 우선 2차 북미정상회담의 타이밍이 절묘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헨의 의회 증언이 하노이 정상회담 일정과 정확히 일치하고 만 것이다. 청문회 날짜를 선택한 주체는 반(反) 트럼프 정서가 강하고 한반도 현상 유지를 선호해온 민주당이었다. 트럼프는 호텔 방에서 코헨이 자신을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칭하는 게 미국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을 보고는 모종의 결심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노이에서 ‘노딜’을 선택해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바꾸겠다고 말이다. 실제로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은 코헨의 청문회에서 하노이 노딜로 바뀌었다. 동시에 김정은과의 노딜을 중국과의 무역협상 및 한국과의 무기 거래 및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트럼프의 상업적 욕구도 작용하고 말았다.


물론 북한도 하노이 노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김정은은 여러 차례에 걸쳐 ‘왜 내 본심을 몰라주느냐’고 하소연했지만, 정작 그 본심을 제대로 보여준 적은 없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비핵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와 핵물질은 어떻게 되느냐에 있다. 그런데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를 말한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한 번도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다. 이건 하노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더라도 그 단계를 밟아나가면 어떤 출구에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말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4. ‘한국식 해법’을 만들어야


북미간의 교집합이 희미해지고 차집합이 커질 때, 한국이 해야 할 역할은 한국식 해법을 만들어 교집합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한국의 선택이 미국의 범위에 갇히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범위에 갇히는 순간, 남북한의 신뢰마저 크게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문재인 정부가 생각해온 ‘포괄적 일탈타결과 단계적 이행’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괄적인 합의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식 해법에 쉽게 동의하지 말고 이견을 솔직히 얘기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자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북정책의 힘은 대미정책에서 나온다.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해야 북한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제는 상기한 문제점들을 개선하면서 ‘한국식 해법’을 마련하는 데에 두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부족했던 한국 시민단체들의 소통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전략적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한국식 ‘비핵화의 정의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이 그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는 남북한이 “비핵지대 내” 당사자들로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이 “비핵지대 외” 당사자들로 이 조약에 참여하는 구도를 일컫는다. 이러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비핵지대가 비핵화의 정의 및 목표를 둘러싼 북미간의 동상이몽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북미간에는 비핵화의 정의 자체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가장 큰 문제이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이자 목표로 삼으면 이러한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비핵화와 달리 비핵지대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어온 정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핵지대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는 핵무기의 부재로서 지내 내에 핵무기의 개발・제조・실험・보유・배치 등을 금지한다. 둘째는 비핵지대에 대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금지한다. 셋째는 비핵지대 조약의 위반을 방지하고 분쟁 발생시 해결을 도모하는 조약 이행 기관을 설치한다.


둘째, 이게 가장 완벽에 가까운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과거와 현재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더라도 미래의 핵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에는 미래에도 기술, 자원, 인력이 남아있게 될 것이 때문이다. 비핵지대 조약 체결은 북한의 이러한 잠재력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는 것을 봉쇄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조약이 체결되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뿐만 아니라 남북한 핵검증 체제 구성에 따라 한국의 검증도 받아야 한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약속에 국제법적 구속력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북한의 조약 위반시 더욱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 역사상 이러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전임 정부 때보다 강력한 합의를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비핵지대 조약 체결이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북한이 요구해온 “미국 핵위협의 근원적인 해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의 완전한 핵폐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핵지대 조약이 필요하다. 이 조약을 체결하면 미국의 대북 핵 불사용 및 불위협 약속에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부여되고,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을 배치, 전개, 경유할 수도 없게 된다. 이는 곧 평화협정 체결시 가장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주한미군 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남북미중이 ‘전략 자산 없는 주한미군’이라는 상호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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