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끔찍한 상상,
과거 혹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

-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데넹크스, 봄나무, 2017)

/ 예영주(경남 창원자유학교)




히틀러 아빠.JPG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담아낸 그림책


누구나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하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더 간절하게. 주인공 루디의 아빠 에곤은 어쩌면 꿈 속에서도 1933년 3월 5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으리라.


1933년 3월 5일. 그 날 이후 겨우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5살 꼬마 루디를 둘러싼 세상은 거대한 태풍에 휩싸인 듯 완전히 딴 세상으로 변해 버린다.


책 속에 소개되는 두 달 간의 날짜들을 잠시 따라가 보자.


1933년 3월 5일. 독일 총선거. 히틀러 나치당의 승리. 40만 명이 넘는 나치 SA 돌격대 창설. 공포 정치 시작됨.

1933년 3월 21일. 뮌헨 부근에 다하우 강제수용소 건립. 유대인과 정치 사범, 동성애자, 보헤미아 집시 등 20만 명이 수감되고 그 중 3만 명이 희생됨.

1933년 4월 20일. 히틀러 총통 생일. 도시 전체에 하켄크로이츠 나치 깃발이 나부끼고 상점에는 작은 히틀러 조각상이 진열됨.

1933년 5월 10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독일 정신에 어긋나는’ 불온서적 불태우기 집회가 이어짐. 유대인의 책, 마르크시즘 책, 평화주의 책, 히틀러 반대 세력의 책들을 압수해 불태움.


열렬한 히틀러 지지자였던 에곤은 겨우 2달 전 확신에 찬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거대한 불기둥을, 산더미처럼 쌓인 ‘불온서적’을 태우는 불기둥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게 된다. 이때 에곤은 그 불기둥이 수많은 사람들마저 태워 버릴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일이 바로 자기 가족의 일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말이다.



역사를 보는 정교한 시선, 다수의 폭력을 경계하다

지난 2016년부터 3년간, 매년 여름에 독일을 여행했었다. 2016년 첫 해에 마주했던 베를린과 잿빛 드레스덴이 주었던 강한 인상이 나를 다시 독일로 향하게 했던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장면과 공간들이 많이 있지만 갈 때마다 방문했던 곳이 있다. 베를린 훔볼트대학 법대 앞 광장이었던가, 불태워진 ‘불온서적’이 있던 훔볼트대학 지하서고 자리다. 2016년의 어느 날 그 자리에는 견학을 온 독일의 청소년들이 있었다. 바닥에 설치된, 아래가 보이는 투명한 유리 너머 텅 빈 지하서고를 바라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히틀러의 선전부장이었던 괴벨스의 선동 아래 생각을 불태우고, 사람을 불태우고, 그것을 ‘순결한 독일’을 위한 ‘정화’라고 불렀던 그 역사를 마주하며 독일의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도 그게 궁금하다. 그 다음 해도, 또 그 다음 해도 나는 그 서가 앞을 찾았다. 책 속에 소개된 베를린 광장의 불온서적 불태우기 집회 장면 사진이 바로 그 장소인 듯하다.


세 번째 여행에서는 훔볼트 대학 옆에 있는 노이에 바헤를 방문해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를 직접 보았다. 1차 대전에서 아들을 잃고, 2차 대전에서 손자를 잃은 케테 콜비츠.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피에타’ 모자상의 바로 위 천장은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어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그대로 모자상 위에 내려앉아 깊은 슬픔을 더 짙게 해 준다. 전쟁의 참혹함을 그 어떤 연설보다 강렬하게 전해주며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게 한다. 베를린에 있는 케테 콜비츠의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 그녀가 어려운 시기 약자들의 고통에 어떻게 공감했고 어떻게 함께했는지 알게 된다. 자신이 가진 미술이라는 무기로 반전과 평화를 외쳤던 그녀의 용기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국주의 독재 치하의 자국민들 또한 무력한 희생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 또한 그렇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점에서 나치에 의해 고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치의 전체주의 깃발 아래 가해국 독일의 국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그저 히틀러와 같은 가해자의 집합 속에 있었다고 여겼던 독일 국민들 또한 나치로 인해 고통 받고 삶이 파괴되었음을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담담하지만 숨기지 않고 보여 준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좀 더 정교한 시선을 가져야 함을 일깨워 준다.


책 속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쩌면 먼 시공간 속 과거가 아닌 가까운 시공간 속 현실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빠의 얼굴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투표자 절반 이상이 아빠와 같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에요.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에서 나치당의 승리를 선언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을 때 아빠는 라디오 볼륨을 한껏 올렸어요.

“국민 여러분, 우리는 복종하는 국민을 원합니다. 그러니 복종하십시오. 우리는 강한 국민을 원합니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기꺼이 개인의 희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직 단호한 복종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록 죽을지라도 우리의 조국, 독일은 영원할 것입니다. 독일 만세!”

히틀러의 연설문 속 ‘독일’을 ‘대한민국’으로 바꿔서 한번 읽어 보자. 우리 역사 속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저런 연설은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공동체 의식’, ‘국가의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집단 속에서 ‘나’를 숨기고 지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제로 혹은 강제가 내재화된 자발성으로.


또 다른 장면을 보자. 1933년 6월, 루디의 여동생 마리엘이 태어났다. 마리엘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 아침에 루디네 악기 상점 문을 두드리고 나치 당원인 여자 셋이 들어온다. 그들은 ‘독일 혈통 보호처’의 임원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웃이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어요. 이윽고 소시지 가게 주인인 발뒤르 아주머니가 서류 하나를 꺼내는 거예요. 동생 마리엘을 계속 집에 두고 돌볼 수 없다는 내용의 서류였어요. ‘그런’ 아이들은 정부가 맡아 키우기로 히틀러가 결정했다는 거예요.
언젠가 엄마가 다하우의 막사와 철조망 얘기를 해 준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 불쌍한 아이들이 버려진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소문이 돈다는 거예요. 엄마는 마리엘을 국가에 맡기지 않을 거고, 어떤 서명도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다행히 아빠도 엄마와 같은 생각이었지요.
여자 임원들은 매서운 눈으로 엄마 아빠를 쏘아보며 “곧 다시 올 테니 두고 봅시다.”라고 말했어요. 그 일이 있고 난 뒤, 부모님의 악기 상점을 찾아오던 단골손님들이 하나둘씩 우리 가게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어요.



루디 가족에게 정말 무서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가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까지 침공한 어느 날, 루디의 아빠마저 전쟁에 나가야 했고, 1945년에 접어들자 루디의 마을은 영국군 전투기들의 표적이 된다.

히틀러로 인해 8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독일인들이 희생되고 독일은 항복을 선언한다. 포로 수용소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아빠, 그리고 엄마, 루디, 마리엘. 이렇게 네 가족은 폐허 더미 속에서 빵을 배급받아 지내며 무너진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다. 폐허 속에서 히틀러의 초상화를 발견한 17살 루디는 아빠에게 다가가 묻는다.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

아빠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 질문은 전후 독일이 끈질기게 파고들어야 했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독일인들의 대답을 우리는 베를린 도심 한복판의 집시 희생자 추모공원, 동성애자 희생자 추모공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광장 등에서 느껴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독일의 역사교육에서 그 대답을 찾아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선거가 최악의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잘못된 투표가 개인의 삶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 점에 대해서는 촛불 시위와 대통령 탄핵 과정을 함께 했던 우리 청소년들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다수의 선택이라 해서 반드시 현명하지도 않으며, 다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늘 경계하라고 말해 준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역사적 사실과 그 흐름을 따라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이야기 전개와 “이건 그냥 상상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야. 실제 있었던 팩트라구!”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록 사진들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며 현실감을 더해준다. 그렇지만 이 책의 읽는 재미를 더 해 주는 것은 그림이다. 히틀러의 라디오 연설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소용돌이 속 다양한 표정은 글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면에서 역사를 공부할 때 그림이 주는 배움은 의외로 참 큰 것 같다. 나치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팔과 손가락을 하켄크로이츠가 연상되는 직각으로 표현한 것도 주인공 가족의 그림과 대비되며 이러한 부분이 독자에게 상상력을 키워준다.



그렇다면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해 볼까?

우선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것과 내 삶의 연관성을 어떻게 학생들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계신 선생님이 있다면 이 책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를 읽어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나 또한 고민해 본다. 이 책을 어떻게 한국사 수업과 연관시켜 볼까?

그리고 개별적인 ‘나’의 존재가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선생님께도 권한다. 이 책은 평범한 개인들의 선택과 그에 따른 행동이 결국 역사를 만들어 왔음을 보여 준다.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 아빠를 향한 루디의 질문을 통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어쩌면 나의 선택과 행동이 가질 수밖에 없는 역사성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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