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부정 현상을 마주한
사회학자와 역사교사의 좌담회

사는이야기 - 지역모임에서는

>> 정리:강화정(부산역사교사모임)

# 부산역사교사모임(이하 ‘부역모’)은 2019년 1년간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이란 주제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한 강좌, 답사, 토론회를 겸한 연수를 진행하였습니다. 11월 1일 성공회대 강성현 선생님을 모시고 7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1월 2일 토요일 오전, 부역모 소속 교사들과 강성현 선생님과의 좌담회가 열렸습니다. 부역모 교사들 10명이 참여했고, ‘최근 이슈인 <반일종족주의>, 인헌고 사태에서 마주한 역사부정 문제와 역사교육의 역할’에 관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이 글은 해당 좌담회 녹취록 중 일부를 정리해 옮긴 것입니다. - 녹취 및 정리 (부산 신정고 강화정)
일시 : 2019.11.30.
장소 : 정난각


『반일종족주의』, 인헌고 사태’를 마주한

사회학자와 역사교사들의 좌담회


<본격적인 좌담회에 앞서> - 사회학자가 바라보는 “현대사”는 어떻게 다를까?


부역모 최병희 : 어제 강의가 현대사와 관련한 내용이어서 강성현 선생님이 사회학자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역사학에서 말하는 보도연맹, 4・3,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사회학에서 보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강성현 : 원래 역사학의 대상은 근대까지입니다. 이후 시간은 아직 역사화 되지 않은 까닭입니다. 한국학계에서 해방 이후를 다루기 시작한 첫 분과학문은 정치학이었습니다. 역사학에서는 서중석 교수가 등장하면서 성균관대에 현대사 관련 커리큘럼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물이 근현대사 검인정 교과서에 반영되었습니다.


민족은 역사에서 중요한 화두입니다. 하지만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민족에 대한 추상적 관념들을 구체적으로 채운 것이 80년대 학번의 서클이나 혹은 성균관대에서 현대사가 공식적 커리큘럼이 되면서 부터입니다. 근대사를 연구하는 방식으로 현대사를 연구하는 분이 생겨났고, 실증사학이라 부르는 일부 방법이 역사학의 방법론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또한, 현대사에서도 그 방향을 꿰는 누빔점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민족’이었습니다.


반면, 사회학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민족만이 아니라 주요 키워드가 많았습니다. 사회사 , 일상, 문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정치사로만 접근하지도 않았습니다. 역사에 다양한 행위자들이 존재한 까닭입니다. 더 발전된 것이 사회사, 역사사회학 같은 영역입니다. 특히 역사사회학은 구조를 봅니다. 벽돌보다 집으로 비교하는데, 가령 사회혁명에 대한 여러 역사를 비교하는 형태입니다. 역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내적인 조건과 사람들, 행위자도 안보고 역사를 비교 하냐고 묻는데 ‘집만’ 보는 것입니다. 반면, 집을 구성하는 요소를 보는 것이 사회사인데, 벽돌까지 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인물만이 아니라 민중들을 봅니다. 민중보다도 민중‘들’이 더 중요한 것인데 특정한 사건에서 나타나는 집합적 민중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정치학은 결정권자 즉, 거시적 행위자인 대통령이나 가령 촛불행위자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정치적 경계(boundary)를 정해두고 역사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 섞였습니다.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이 다 ‘융합’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역사를 가르칠 때 사건사의 맥락으로 ‘배경 – 전개 – 결과’하는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건은 파도의 표면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배경도 구조의 제약성으로 이해합니다. 가령, 한국사회 문제인줄 알았는데 미국의 경계 안에 한국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제도 경로성, 매커니즘이 중요한 요인입니다. 어제 강연 때 말씀드린 제노사이드도 경로의존성이 있어서 비슷한 보편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나 표피로 들어오면 그 사회가 갖는 독특한 시간성과 맥락을 반영한 역사적 조건이 존재합니다.


60_좌.JPG


<좌담회의 시작>


1. <반일 종족주의>의 극단성


부역모 배애란 : 우리는 역사를 전공했고, 강성현 선생님은 사회학을, 이영훈 류의 낙성대 연구소와 <반일종족주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경제학 중에서도 경제사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보기에, 다른 역사전공자들과 저렇게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하고 처음에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은 ‘저들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되었을까?’, ‘그야말로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저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점의 차이? 세계관의 차이일까? 같은 사실을 가지고 도대체 왜 저렇게 해석할까요? 아니면 다른 사실입니까?



강성현 :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반일종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런 생각에 동조하는 학생들, 일본인들, 그와 같은 행동이 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특히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육 현장에서 부딪히고 갈등하며 겪는 이야기를 선생님들과 나눌 생각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영훈 식의 주장과 비판에 대해 가장 앞장서서 비판하시는 분들이 경제학 하시는 분들입니다. 허수열 선생님이 대표적이십니다. 그러니까 경제사의 주장과 방법이 원래 그런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책이 있고, 주장이 있고, 내용이 있으면, 내용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장이 놓여있는 맥락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영훈과 같은 뉴라이트에게 몇 개의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2008년, 2013년, 그리고 지금. 왜 <반일 종족주의>는 2-3개월 만에 10만부를 팔았을까? <이승만 티비>는 구독자 10만에다가 10만을 넘어서는 파생채널은 왜 더 많을까? 이승만 TV에서 가져와 학생들이 만든 콘텐츠는 왜 더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까? 학생들은 왜 그 같은 생각에 동조하는 것일까?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효과일까? 여러 가지 의문을 던집니다.


<반일종족주의>의 내용을 논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 우파들이 다 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반일종족주의> 1/3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것입니다. ‘종족주의 아성’이라고 말하는. 나머지는 다 대안교과서나 교학사 교과서, 국정교과서와 거의 다름없습니다.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관점입니다. 이제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안 건드렸습니다. 이영훈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몇 번 데인 적이 있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들이 반일민족주의에 대한 그 동안의 공격과 시도를 반일종족주의로 우회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일 이데올로기를 ‘샤머니즘적 종족주의’로 칭하면서 그 자체로 혐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종족주의는 적대성을 기반에 둔 것이므로,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 종족주의적 경향을 국민주의나 올바른 민족주의로 바뀌어야 해.’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책에서 개인에 기초한 서구의 민족주의 이야기를 꺼내지만, 실상 일본의 민족주의야 말로 국수주의적이고 배타적인 것입니다.



2. 2018년 뉴라이트의 새경향, 연대와 유튜브!


부역모 배애란 : 세 번의 변곡점 (2008년, 2013년, 2019년) 중에서 특히 올해가 문제가 되고 관심의 초점이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성현 : 이제까지 연대는 진보만 했는데, 우파들이 더 연대를 잘한다는 사실, 한일 우파연대가 생긴 것입니다. 글로벌 우파 간에, 글로벌 백래쉬 진영 간에 글로벌 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영훈 강연 중에 한 강의는 57만뷰를 찍고 지금도 더 올라가고 있습니다. 57만명이 되려면 일본판 일베 채널이라는 J채널에 댓글 작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엄청 응원합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다만 그 뒤에는 우파들의 펀딩이 있습니다. 이우연과 이영훈은 일본 우익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대변하는 한국인 스피커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또라이 취급을 받던 한국인 스피커가 이제는 서울대 출신의 대중적 영향력을 갖추게 된 것 입니다.


글로벌 우파 간에 정말 빠른 속도로 네트워킹이 되었는데 저는 유튜브가 대단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60~70대에게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알고리즘과 그것에 대한 60-70대의 반응은 대단히 무서울 정도입니다. 감각이 우리와 다릅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정보(source)라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입니다.


이것은 일부 10대 청소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극우 유튜브 채널에 가면 선생님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역사 교사들에게는 이런 질문을 던져라.’ 팩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하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에 진실(truth)과 사실(fact)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면 다행입니다만. 교사가 자신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순진한 얼굴을 다가와 질문한다고 생각해봅시다. “페미니즘은 알고 보면 갈등주의에요. 저희야말로 평화를 추구합니다.”라는 학생 발언을 갑자기 듣게 되면 발언을 당황스럽습니다. 교사는 ‘갈등이 아닌데…’ 하면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사가 생각하는 평화와 이 학생이 생각하는 평화가 다르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순간에는 교육자로서 권위와 전문성을 높이 세우고 정확하게 상대의 의도를 지적해야 합니다. 결코 멈칫하면 안 됩니다. 민주주의, 대화, 소통, 이런 단어로 상황을 대처해서는 안 됩니다. 교육현장은 나름의 전선입니다. 현재, 한일 우파간의 네트워킹이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들려옵니다. ‘자신은 주입과 싸운 것이다. 주입의 주체는 전교조이다.’ 인헌고 학생수호연합의 주장 중 일부입니다.



부역모 최병희 : 이번 인헌고 사태는 유튜브를 통한 의식화. 확증편향에 의해 적극적으로 의식화된 학생들이 싸움을 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성현 : ‘의식화’라는 표현을 하셨지만, 학생들에게 그것은 ‘저들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행위는 대단히 힙한 것이기도 합니다. ‘통념에 대해 우리는 도전하는 거야’라는 인식하기도 합니다. 대단히 진영화 된 논리입니다.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판단을 요구하지만, 결국에 자신과 상반된 결과가 나오면 믿지 않습니다.



3. ‘친일 VS 반일’ 구도의 청산을 염원하는 뉴라이트!


부역모 배애란 : 일본 우파가 움직이고 한일 네트워킹을 통해서 일본의 우파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 한국의 우파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으로 그러는 것입니까?



강성현 : 친일 반일 구도를 깨는 것이 한국 뉴라이트의 소원입니다. 그것을 깨려고 반북으로 뭉쳐보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이 50-60년을 넘어가면서 집권과 수권을 거듭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데올로기가 밑천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논리가 없으니 일본 우파의 논리를 가져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논리를 빌려서라도 - 이영훈의 종족주의는 약간의 변주이고 – 친일청산 구도를 깨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2004년이 왜 중요하냐면 기득권이 깨지면서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를 계승해서 친일 청산 국면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것을 법제도화 한 것이 진실화해위원회 함께 친일 청산활동 보고서 및 활동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인명사전 간행도 같은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이때 하나의 큰 테마가 생깁니다. ‘기득권=친일파’. 이런 등식이 성립된 이후 뉴라이트는 이 논리를 깨고 싶어 합니다.


올드라이트인 지만원이나 조갑제의 논리는 ‘친일보다 친북이 더 나빠.’ 였는데 더 이상 안되는 겁니다. 상대화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뉴라이트는 동아일보가 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자유주의 연대 신지호가 기수를 들고 나왔는데. 자학사관이라는 용법으로. 친일과 반일이라는 시도가 2014년의 시도였습니다. 그 첫 공격을 북한으로, 친북으로 했습니다. 친일을 바로 공격하지 않고 금성교과서를 공격했고, 그 다음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승조 교수가 ‘식민지배는 오히려 축복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보수파들조차 공격을 했습니다. 당시 한승조 교수가 자유주의 단체 대표였는데 산하 단체 회원들이 비판했습니다.


이때, 뉴라이트가 깨달은 바가 ‘친일-반일 구도를 깨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2013년부터 시도된 그들의 시도는 계속 실패했습니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율 1곳. 국정교과서 실패.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천지개벽 수준으로 올라왔습니다. 현재의 <반일종족주의> 기세로 10년 후에 재집권한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베처럼 됩니다.


2012년 아베 2차 집권 이후 2016년 새로운 시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후쇼사 교과서는 0.1%도 안되었습니다. 지금 일본서적은 망했고 – 우리로 치면 금성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 새역모는 계열 2개를 합치면 6-7%입니다. ‘6-7%밖에 안되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팩트는 상대적인 거야’라는 인식입니다. ‘절대 팩트라는 것은 없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토론해보자고 하지만 대단히 기계적인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러일전쟁, 아시아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인을 위한 전쟁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토론해보자고 한다면, 아이들은 결론을 내지 못합니다. 다만, 거기서 얻는 효과란, ‘좋은 전쟁이란 것이 있나?’ 하는 질문을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팩트는 상대화되어 있고, 모든 팩트는 복잡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반응은 ‘팩트 싫어.’ ‘사실 이야기하는 사람 싫어’, ‘팩트충’, ‘팩트주의’ 등입니다. 이때 ‘팩트주의’는 팩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팩트를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역사부정 이전에 사실에 대한 회의를 갖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불투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4. 한반도 평화 국면에서 드러나는 뉴라이트의 정체?


부역모 배애란 :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가 시작되고, 빨갱이로 매도되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과거사 청산도 함께 진행되면서, 북한에 대한 우리의 적대감이 서서히 무뎌져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가 집권하면서 그 분위기가 무너졌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남북화해와 평화 분위기에서 보수들이 굉장한 위기를 느끼고 있고, 이 같은 상황이 일본을 더 크게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남북화해를 ‘더’ 진행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햇빛 속에 들어가면 먼지가 더 잘 보이듯 뉴라이트의 정체가 더 잘 보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강성현 : 저는 상황을 잘 헤아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 서울 불바다. 그때 엄청 사건이 컸습니다. 그것을 해결한 것이 클린턴의 6자 회담이었습니다. 한반도 냉전과 동아시아 냉전이 여전할 때였습니다. 탈냉전 상황에서 동북아시아만 다른 공간에 있었습니다. 마치 화석처럼.


그것을 풀어보기 위해서 이른바 북방 3각과 남방 3각, 북중러와 한미일 간에 조약체결과 관계 회복이 이뤄졌습니다. 한국도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남은 관계가 ‘북일’과 ‘남북’간 관계였습니다. 남북 관계 회복을 시도한 것이 김대중 대통령이고, 햇볕 정책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북일 관계도 고이즈미가 방북해서 북일 수교를 맺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때 일본에서는 일본인 납치 사건이 붉어졌습니다. 아베가 움직였고 그 뒤에 미국 네오콘이 있었습니다. 9.11 테러 직후에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를 화약고로 만들겠다는 기획이 있었습니다. 남북관계는 노무현 정부에서 계속 추구했는데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2002년 이후 일본인 납치 사건으로 극단적인 폄북, 반북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2004년 한국의 뉴라이트와 일본의 우파가 같은 목소리를 냅니다. 일본 우파들이 촉구합니다. 구로다라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친일청산법이 등장할 때, ‘중요한 것은 반북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왜 북한은 북핵 개발을 시작한 것일까요? 지금 문제의 모든 근원은 2002년에서 시작된 겁니다. 자주노선 걷겠다고 하면서 핵병진 강국으로 가겠다는 피력합니다. 다시 북한은 우리에게 아주 위험한 존재가 되었고, 그전에 be the reds! 오 필승 코리아!로 끝난 줄 알았는데 종북 담론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공안몰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북한 문제에 대한 혐오도 굉장히 커졌습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2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첫째,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2002년 보다 파장은 더 클 거라 생각합니다. 북한이 어디로 튀느냐에 따라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하면 한일 문제도 해결되리라 예상합니다. 패싱 되지 않기 위해서 아베가 북일 관계를 맺어야 하고, 북일 관계 기준은 김대중 – 오부치 게이죠의 한일 공동 선언에 플러스 알파가 되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 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이나 일본회의가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하는데 녹녹치는 않아 보입니다.


둘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종전선언이 선포되고, 평화와 냉전이 종식되면 진정한 평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저는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우리 사회와 문화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 국회에서 보이는 모습들, 진영화 된 상황이- 더욱 그렇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여론 조사는 엎어진 컵모양이었습니다. 양극은 없고 ‘대체로 그렇다’ 혹은 ‘그렇다’는 답이 다수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여론 조사는 모두 컵 모양입니다. 양극단에 사람들의 견해가 존재가 뚜렷합니다. 이 사회에 정말 심각한 수준으로 에너지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자기 확증 편향의 에너지’라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진실이 있다.’ 광화문에 계신 분들도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또, 광화문 태극기 부대도 이제는 양상이 바뀌었었습니다. 동원이 아니고 가족 단위 참가자도 생겨났고. 세대로 보나 연령대, 지역으로 보나 여전히 특정 집단들이긴 합니다만 참여 인원이 10만명을 쉽게 넘깁니다. 이 사회가 여전히 전쟁이라는 원리를 걷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행은 제약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정권에서 약간이라도 북한을 압박한다. 혹은 매파가 아닌 민주당에서 집권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북한문제에 보수적입니다.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판이 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원리가 계속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뒤는 상상 가능하시죠? 문제의 원인에 들어가서 – 그것을 통제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되지 않고 잠복될 뿐입니다.



5. 한일 역사 갈등을 바라보는 양국 시민들 간의 인식 차이에 대하여


부역모 배애란 : 지난 화요일날 만덕고등학교에서 한일 교류 수업을 <동아시아사> 시간에 했습니다. 일본 츠쿠바 대학에서 앞으로 일본어 선생님이 될 학생 8명이 왔습니다. 교수님과 조교 제가 통역을 맡았습니다. 한국의 고등학생들과 일본 대학생이 대화하는데 인식 차이가 엄청났습니다. 일본 대학생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한국 고등학생들이 질문하면 ‘아, 그런 것은 잘 모른다’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에 대해서도 우리는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베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일본 대학생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것은 정부 문제이고 외교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아이들은 이것을 역사문제라고 인식합니다. ‘우리는 배운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고 일본 대학생들은 거듭 이야기했습니다.

일본 전문가인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본 전체가 나쁘다고 하는 것. 보통의 사람들이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들은 나빠.’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이야’ 라고 공격을 해올 때 누구라도 기분 좋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한국은 우리보고 늘 나쁘다’고 생각하고, 마치 악인처럼 우리를 이야기하고 대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어? 이런 마음을 갖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난 8월에 부산-일본간 교류 모임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정말 양심적인 분들이십니다.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고, 한국과 평화를 위해 같이 힘쓰려는 일본 내에서도 1%미만의 지성을 갖춘 양심적인 분들입니다. 이 중 아즈마 선생님은 저보다 2-3살 많은 분으로 20년 가까이 만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박유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박유하 책은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래서 ‘저는 안 읽었습니다.’ 라고 말을 흐렸습니다만.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우호적으로 이야기한 책에 대해 심정적으로 지지하게 됩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려하지 않고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계속 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성현 : 현장의 방법과 팁인데 상당히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이야기는 아베가 먼저 합니다.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단죄를 요구하지 마라. 우리 세대에게서 끊어내겠다.’ 이것이 대국민 메시지였습니다.



부역모 배애란 : 한국은 끊임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성현 : 연원이 있습니다. 카또오 노리히가 쓴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라는 책이 번역이 되어 나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어떤 논리가 등장했는가 하면 사죄를 하려면 ‘우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추도와 의례에서 탄생한다.’ 는 논리였습니다. 전쟁 때 전몰장병에 대해서 일부 A급은 빼더라도 그런 사람을 기억 기념할 수 있어야 우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우리라는 주체가 생겨나야 비로서 이웃의 여럿에서 사과를 할 수 있게 된다는 3단 논법이었습니다. 궤변으로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회 내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 우리는 매번 사과해야해’하는 생각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 이유를 독일과 비교할 때 학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당사자는 굉장히 기분이 나쁜 겁니다. 이 분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한일문제를 단죄하는 구도가 아닌 대화하는 것으로, 원래 교류의 목적에 맞게 접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 현장의 팁이나 방법은 익숙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박유하의 경우는 한국 쪽에서 화해를 시도한 것입니다. 당연히 화해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전 단계에 대해서는 눈감거나 다른 논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일본 극우뿐 아니라 리버럴(liberal)에게도 먹히는 겁니다.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본 리버럴에게 일본 천황은 이전에 전쟁을 일으킨 천황과는 다른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천황 개인으로 봐도 인품도 훌륭하고 아베와도 싸우지 않느냐 이런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 일부가 비판하는 것은 개인 천황이 아니라 ‘천황제’입니다. 여전히 천황제를 유지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레이와 시대에 지금 천황이 아닌 그 동생을 추대할지도 모른다는 음모론도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천황제는 지금과 정반대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그런 것까지 세심하게 터치하면서 사과 아닌 사과를 화해라는 방식으로 청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선생님들 대부분은 내가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끓고 있고 것이겠지요. 진지하게 박유하가 왜 문제인지를 – 그 논리와 방법을 강의할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고 확실한 자기 정리가 필요하다 싶습니다.



6. 반일 ‘민족주의’가 우리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


부역모 최병희 : 역사수업에서 일반적인 반일 감정을 심어 넣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한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 갔는데 거기서 만난 일본아이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한국 아이들이 제일 처음한 질문이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고 생각하느냐’, ‘왜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상대 일본 학생 중에 한 명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생각한다. 독도 아래에 어떤 자원이 묻혀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의 우리 후손을 위해 이 땅은 우리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겁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대해 한국 학생들이 결국 한마디도 못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한일 역사 갈등과 관련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사과해야 돼’라는 생각만으로 들이댄 경우입니다.



강성현 : 서경덕과 반크 같이 반일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듯한 이들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반일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는 국가를 만들지 못했던 시절에 국가적 관념으로 공동체를 유지한 것이고, 저항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일이라는 것이 반제국주의를 의미한다면 반일민족주의는 한국 사회 국수주의나 국가주의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해야 하는데 오히려 제국주의화, 국수주의화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를 살펴보면 반일민족주의를 형식이나 내용으로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유신도 그런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서경덕과 같은 행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역사문제를 브랜드, 국가 브랜드의 관점으로만 바라봅니다. 너무 단순화해서 선동하듯이 하면 그 후과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바로 잡고 싶어도 그는 저와는 상대가 안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연예계부터 정계까지 두루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내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역모 배애란 : 그동안 부산역사교사모임이 고치현 시민단체와 교류 모임을 하면서 학생들 간의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한번은 사직고 학생이 독도 영유권을 문제 삼으면서 엄청 흥분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일본 학생 한명이 너무도 침착하게 ‘그럼 국제사법재판소를 가는 것은 어떨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부산 고등학생이 ‘내 껀데 내꺼 가지고 왜 재판소를 가는데’(부산 사투리) 라며 잔뜩 흥분해서 말해서, 통역하던 김영환씨가 여기서 끝내자고 서둘러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지금처럼 20년간 교류모임을 지속해서 속을 다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었고, 그 사건이 머릿속에 대단히 크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강성현 : 교류모임의 일본학생들은 일본에 가면 한국 쪽의 입장에서 설득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감정이 다치면 그것이 원체험이 되어서 오히려 반일 논리를 찾게 됩니다. 인터뷰나 유튜브에서 유사한 설명이 나오면 그냥 확 끌려가버립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다’에서 ‘우리의 잘못이다’로 갔지만 ‘알고 보니 저쪽도 문제가 있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방식은 역사 문제가 아닌 것이 됩니다. 현재 일본 회의는 그 정서를 파고 들고 있습니다.


부역모 배애란 : 교류를 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이, 일본인들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싫다는 생각을 바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요. 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동의한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다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섬세하고 부드럽게 보통의 일본 시민들에게도 다가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성현 : 그러다가 이영훈 주장을 보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기특하다 생각할겁니다.


부역모 배애란 : 우리를 벌레보듯 하다가 사람 보듯 하는구나. 그렇게 느끼지 싶습니다.



7. 역사부정문제와 관련한 현안 문제, 역사교육의 접근법은?


부역모 강화정 : 학교 현장에서도 보며 역사의 기존 서사 구조가 다분히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인데, 전선이 나뉘고 학생들까지 책임과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만 견고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걱정입니다. 이후 이야기 주제와 관련해 이융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어제 교육부에 가서 논쟁이 되는 현안에 대해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칠지 이야기를 나누고 오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반일종족주의>와 인헌고 사태 등과 같은 ‘현상’이 가진 맥락에 대해 이야기 많이 나누었습니다만.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다소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맥락을 살피지 않고 현안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이 다소 나이브하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우선은 이융 선생님 말씀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부역모 이융 : 어제는 교육부에서 공문은 왔지만 실은 비공식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인헌고 사태와 현안 문제를 다루면서 이슈가 된 부산 역사교사의 2가지 사례와 관련하여,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에서 현장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근거하여 논쟁성을 기반으로 한 수업과 가이드라인 제시하려 할 때 학교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이 논쟁성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인 시각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에서 말하는 교사의 중립성은 교사의 탈정치화가 아니고, 교사의 견해도 하나의 의견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상식적인 한국사회 교수조차도 ‘위험하지 않느냐’ ‘교사의 주입이 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습니다. 교육부는 교사의 정치성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못하는 상황입니다. 언론에게 두드려맞기 좋은 주제이고, 바로 색깔론으로 전교조 몰이 할테니 무척 난감한 상황인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보이텔스바흐 합의나 몇몇 사례들을 통해서 돌파구를 마련해 놓고 싶고, 수업을 통해 어떻게 논쟁성을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보려 노력 중이었습니다.


역사과에서 문순창 선생님의 페미니즘 사례 자료를 보여드리고 왔습니다. 준비가 잘 되면 현안도 잘 가르칠 수 있고 폭넓게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사 양성 과정에서 논쟁성을 배울 수 있도록 교수들이 모이는 듯해서 방지원 선생님 논문도 드렸습니다. 실제 경북대에서는 역사과 1,2학년 수업 중에 해당 차시를 어떻게 논쟁성으로 풀어나갈 것이냐를 수준 높게 가르치는 사례가 있으니까 한번 의논해보시라 말씀드렸습니다.


민주시민교육과에서 성공회대에 연구소를 만들어서 같이 하고 있는데, 그렇가 만들어봤자 좌파 교육부에서 좌파 대학 연구소에서 만든 안(案)으로 뭐 할거냐 공격하면 속수무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양쪽이 다 모여서 도출 할 수 있는 정치교육이 실효성 있게 전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된 느낌이고 테이블로 안건이 올라온 느낌입니다.



강성현 : 우리가 보이텔스바흐 합의 이야기를 하는데, 전 거꾸로 최악의 사태에 대한 연구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선이 아니라. ‘정치성이 문제가 아니다’와 ‘의사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원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잘 도출된 사례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나 영국에서의 노동당 집권기 모습입니다. 최악의 사례로 꼽으면 대처리즘때 교육법이 바뀌고, 일본 아베가 채택한 교육기본법의 핵심 원리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교육기본법 개정 이후 현재 일본식 교육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사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합의되지 않을 때, 갈등이 심해졌을 때, 어느 쪽이 일방향일 때, 전술적인 최악의 사례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보이텔스바흐는 우리는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의 지형은 무척 다릅니다. 저는 현장에서의 대처법과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연구자, 활동가와의 협업을 통해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현장이 급하니 여기서 제안을 해야 합니다. 거기 응할 수 있는 사람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최악의 콘텐츠도 보셔야 합니다. 저처럼 우파 연구 하는 입장에서 보면 정신세계가 황폐해지는 콘텐츠들이긴 한데 조직적으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아이가 어떤 것에 노출되는지 확인하셔야 합니다. 안보시고 회피하면 포인트가 엇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 덧붙여 정치를 (교사의 정치성)을 인정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느냐? 하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교사들의 정치성, 정치적 주체에 대한 논쟁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독일도 네오나치를 직면하듯 사회마다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부역모 이융 : 답답합니다. 아주 선언적인 방법론조차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그럼 교실은 모두 정치에 대해 입 닫고 이야기 하지 말라는 뜻인데, 차악이라도 어떻게 하면 교실 속에서 아이들이 자기 견해를 드러내고 상대방의 견해를 인정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어떤 것이 나와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드러내면 다친다.’ 혹은 ‘확실히 드러내서 못 건드리게 해라.’ 이런 폭력성에 기반한 어떤 정치교육의 담론을 못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단어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 첩첩산중이지만, 가장 눈앞에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는 방법, 가장 사소하고 단순하지만 그 방법이 무엇일까를 자꾸 고민하게 됩니다. 전국을 돌면서 포럼을 하고 있는데 마땅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지금 이 같은 상황에서 가이드라인 제시한다고 와 닿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강성현 : 부역모는 부역모대로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현장에서 나온 가이드라인이어야 하고 여기 상황에서 맞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이드라인일 뿐 해결책은 아닙니다.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부에서 전문가들이 모여서 10번을 만나든 20번을 만나든 그렇게 해결되어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지침 혹은 나침반인 것이고 그까지 가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최단으로 가려면 뛰어가야 하는데 당연히 부작용이 있습니다. 못 보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합리적인 방법은 현장의 방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별 역량에 맡기지 말고 서로 힘을 받으며 방안을 모색해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방향과 대안을 마련해가시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8. 거대한 ‘백래쉬(backlash)’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은?


부역모 강화정 : 오늘 이 좌담회를 마무리할 시간이 된 듯합니다. 한국사회는 촛불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아냈다 혹은 지연시켰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일본이나 미국, 유럽과 남미의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강성현 선생님도 전 세계적 현상으로서 백래쉬를 이야기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더 해주시겠습니까. 각자에 맞는 대응책에 관한 논의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강성현 : 예. ‘글로벌 백래쉬’. 글로벌이라고 했으니까 공통성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겠고 페미니즘이 전선인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이 문제가 되니까 페미니즘 빼고 논의 하자고 하면 그 순간 진겁니다. 페미니즘에서 이겨야 해요. 최소한 페미니즘이 갈등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학습현장 사례 개발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 하나의 전선이 소수자 혐오의 문제, 그 다음이 역사(역사부정)입니다. 이 세 가지가 글로벌 백래쉬 중심에 있습니다. 선진 모델이든 후진 모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도 똑같습니다.


백래쉬에 대한 백래쉬 : 여성주의자들은 리부트 라고 말하는데 이 문제를 미투와 위드유로 해석해냅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68의 슬로건은 대단히 큰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의 제2물결. 그에 맞는 슬로건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그 전선에서 싸워서 이겨야 하고 도망가시면 안됩니다. 더욱 페미니즘을 공격해 올 것이고 여성교사들에 대한 젠더혐오를 더 노골적으로 말할 것입니다. 개인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바라봅니다. 중성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역모 최병희 : 작년에 통합사회 수업하면서 인권침해 사례 찾아보자고 하니까 여성가족부가 여성이 옷을 벗을 때 가슴을 드러내는 것을 못 보게 한다.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 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강성현 : 혐오발언을 표현의 자유, 더 나아가 권리로 이해하는 시대입니다. 그것이 왜 권리가 아닌지 교육자의 위치에서 ‘밟아’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침묵하는 대부분에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이란 주장이 왜 나왔는지 최소화해서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존의 문제이고 절박의 문제이고. 왜 한국사회에서 미투가 나왔는지 맥락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들의 감각. 여성화된 존재들의 감각이 무엇인지를 보고, 사람들이 왜 위드유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용화여고 미투가 많은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가 대단히 추상적이고 이제는 해체되었다고 보이는데 현실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폭력의 구조는 여전합니다. 용화여고 학생들이 이것을 드러내고 고발한 사건입니다. 저는 이런 수준의 이해 공감을 중심으로 인식을 넓히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관심 있는 동아리가 만들어지면 거기에 맞게 지도하고 공유 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런 전선들을 만들어서 유지하거나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를 포기하는 순간 지고 접고 들어가야 합니다.


역사교사들이 너무 좁은 의미의 역사만 이해하지 말고, 앞서 이야기한 권리, 인권, 이런 부분에 대한 맥락을 풍부하게 이해하고, 현재화 된 과거의 문제를 사고하게 하는 것이 역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것을 역사교육의 의제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교육도 성인지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페미니즘도 페다고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사실 페미니즘은 생존형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남학생들을 페미니즘 페다고지의 관점으로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적 폭력의 문제로 ‘안돼요 싫어요’는 피해자 개도의 방식일 뿐입니다. 여러 부분에서 여러 접근들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도 그런 자리이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61_좌.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초등역사교육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배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