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 '2019 역사교사의 날' 참가 후기
>>박지란(대전산업정보고)
한밭모임 선생님들로부터 11월에 울산에서 ‘역사교사의 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활동하는 선생님 한 분과 같이 가겠다고 일찌감치 마음을 먹은 터였다. 다들 울산 선생님들이 정말 즐거우신 분들이니 꼭 참석하라고 강력 추천을 해주셨기 때문에 빨리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다만 같이 가기로 한 선생님이 못 가시게 된 이후에 선뜻 혼자 가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아 역사교사의 날 당일이 되어서도 고민을 하게 되었다. 대전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야 결정한 탓에 토요일 일정의 1부 수업은 듣지 못했다. 이후 프로그램들이 워낙 좋았던지라 역사교육과정의 세계사 자료집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못 듣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윤종배 선생님의 강연 중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조차도 거의 끝자락이라서 깊은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발제문을 찬찬히 읽으며 선생님의 내용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초보교사라고는 하지만 학년 초에 수업 내용, 진행, 평가를 포함한 수업 연간 계획을 잘 세워두지 않았던 탓에 수업 운영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직업계 고등학교라는 특성상 학생들의 성취수준이 높지 않고, 역사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데 학습자들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과정의 구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윤종배 선생님의 발제로부터 <특성화고 학생을 위한 배움책>, 김포제일공업고등학교 교사들의 특성화고 교재 개발 사례 등을 알 수 있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선배 교사로부터의 조언과 경험을 참고하여 우리 학교에 적합한 교육과정 구성을 고민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음은 방지원 선생님의 강연이었다. 교육과정 프로젝트였던 ‘역사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라는 워크숍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방지원 선생님께서 한국사·세계사를 넘어서는 과목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신 내용이 인상 깊었다. “30년 뒤에도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까요?”라는 말에 놀랐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쳐보면서 느꼈던 것과 맞닿아 있는 질문이었다. 올해 교사가 되어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국사가 갖는 의미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역사를 가르치고 있고, 가르쳐야 할 나조차도 “학생들에게 역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역사는 어떤 과목이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수업 방향을 잡아 나가야 의미 있는 과목이 될 수 있을지 올 한 해 내내 고민했다.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역사가 의미 있는 과목이 되려면 학생들이 어떤 역사를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강연이었다.
다음은 토론 발제자인 손석영 선생님의 차례였다. 아쉽게도 늦게 온 탓에 발제문은 받지 못했지만 발제문 없이도 충분히 쉽게 이해되는 발제였다. 손석영 선생님 발제의 골자는 교사 하나 하나가 개별적 교육과정으로 존재해야 하며, 역사 교육 과정에서 국가가 빠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손석영 선생님의 발제를 들으면서 나 또한 국가의 역사 교육과정 속에서 의문을 갖지 않았던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광개토대왕은 왜 왕이 아닌 ‘대왕’인지, 콜롬버스는 정말 위인전에 오를만한 인물인지” 등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만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며 나도 교육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교육과정 속 오류가 있는 서술이 있는지 계속 의심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는 앞선 발제와 관련해 모둠 토의 시간을 가졌다. 주어진 네 가지 주제는 ▲초중고 계열성,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 ▲교육과정 재구성 방안과 사례 ▲세계사 수업,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역사과 선택과목 상상하기였다. 모둠은 앉은 자리에서 가까운대로 구성됐다. 우리 모둠은 ‘역사과 선택과목 상상하기’ 주제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고교학점제의 실현 여부에 대한 논의를 잠깐 했다. 시골 같은 경우 학교 간 거리가 멀어 과연 다른 학교를 오가면서 수업을 선택하여 듣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는 분들이 계셨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는 이미 제안됐던 <여행 세계사>와 같이 주변 마을의 유적을 둘러보는 <유적지 탐방>과 같은 과목이 논의됐다. 소홀했던 문화사에 대한 심도 깊은 수업이 가능하리라는 기대와 함께, 답사를 진행하면 학생들의 흥미도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여행이 들어가면 지리 과목과 겹치지 않겠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지역 특색과 관련되는 지리 과목과 별개로 여행하면서 “역사” 학문을 살릴 수 있는 내용(유적지, 문화재, 지역의 역사 등)이라면 여행이 과목에 접목되어도 좋을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모둠 토론 후 저녁식사가 있었다. 나는 고기파로 삼계탕을 먹었다. 운이 좋게 학교 선배를 만나 충북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할 수 있었다. 따뜻한 찰밥과 먹는 진한 육수의 백숙은 먼 길을 달려 울산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한밭 모임 선생님들과 같이 오지 못해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충북 모임 선생님들이 챙겨주셔서 편하게 저녁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저녁 이후 첫 강연은 전북에서 오신 김현진 선생님이 해주셨다.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수업에 담으려고 하셨다는 점이 강연을 집중하게 했다. 김현진 선생님은 그 대답을 “학생을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로 찾았다고 하셨다. 김현진 선생님이 속한 모임에서는 수업을 ‘밥 짓기’로 비유한다고 했다. 좋은 밥(삶의 지혜)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쌀(지식)과 밥을 짓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임에서 추구하는 활동지는 쌀(역사 내용 지식)이나 활동(역사 수업 활동) 둘 중 어느 것에 치중하지 않고 지식과 지혜를 모두 담는 요리가 되는 활동지를 만들고자 하셨다고 했다. 만드신 활동지를 보면서는 확인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수능이라는 성취기준을 놓치지 않으면서 사료와 발문을 통해 사고를 멈추지 않도록 계속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하신 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수행평가로 점수가 제시되거나 자신이 할 만하다고 느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나 역시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점이었기에 언젠가는 내 수업에 학생들이 강화물 없이도 참여할 수 있는 활동지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은 빈수빈 선생님의 ‘동네 유적으로 역사 배우기’ 시간이었다. 앞선 모둠 토론 시간에 비슷한 과목이 제안되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박남옥이라는 분에게 사이먼 맥캔카트라는 외국인이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 신기했는데, 특히 어떻게 박남옥이 영화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주목한 점이 경북여고를 취재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이 부분이 대구 모임 선생님들께서 ‘대구와 관련된 유명한 인물을 모아놓기만 한 것’이 지역사가 아니라 ‘대구와 관련된 인물들이 어떻게 그러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민을 지역과 함께 연결하여 담아낸 것’이 지역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사이먼이 했다는 “경북여고에서 차세대 여성 리더를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라는 질문은 경북여고 뿐 아니라 뛰어난 리더를 키워낸 모든 지역의 집단에게 울림이 있는 질문이 아닐까 싶었다.
다음 강의는 구혜영 선생님의 차례였다. 경기역사교육실천연구회에서 대표로 나오셨다고 했다. 1정 연수 후 독서모임에서 시작된 모임이 84명으로까지 커졌다고 하셨다. 같은 마음을 가진 선생님들끼리 한 모임을 키워가며 2년 간 운영해오신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수업 밖 활동 내용들은 역사 기행과 기억 뱃지·ucc 공모, 수요집회 참가 등 꽤 규모가 커서 놀라웠다. 수업 밖 활동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해주셨는데 교실 안 활동 내용이 어떨지도 궁금했다.
전국역사교사의 날의 제목이 <역사교사, 경계를 넘다>인 만큼 밤에는 여기저기서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염치없이 당일 등록한 주제에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는 미명 하에 숙박을 할 수 있겠냐고 여쭤봤는데, 집행부 선생님들의 배려 속에 집행부 선생님들과 한 방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무려 꼬치어묵이 무한리필 되는 포장마차에서 울산 선생님들이 제공해주시는 수제 맥주와 밤은 무르익어갔다. 우리 학교에는 일반 교과 선생님이 4명밖에 없기에 항상 역사 동료, 선배 교사에 목말라 있었는데 그 갈증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한밭 모임 선생님이 없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처음 본 사이라고 믿을 수 없게 모두 반갑게 맞아주셔서 즐겁게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배부르게 조식을 먹고 세미나실로 모였다. 첫 번째 순서는 충북역사교사모임이었다. 제목은 “여기, 사람이 있다”였다. 되게 제목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50,000원의 상금이 걸린 네이밍이라고 했다. 소외된 역사, 그림자 진 역사를 잘 담아낸 좋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북 모임의 발표에서도 여성, 노동, 국가 폭력의 역사에 대해서 발표가 진행됐다. 제일 인상 깊었던 발표는 젠더사였다. 젠더사는 여성의 삶을 주체적 관점에서 살피는 관점이라고 했다. 사실 학생들의 젠더 감수성이 높지 않은 상태-여성 비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남학생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에서 이런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내가 걱정한 부분들이 수업의 인터뷰 활동을 통해 극복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웠다. 이 수업의 경우, 학생들이 직접 소외된 경험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극복하며 소모적인 논쟁이 차단될 수 있었다. 학생들도 자신이 직접 경험/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 만들어지면 오해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근대 여성의 일생을 인포그래픽의 방식으로 표현하게 한 것도 매우 좋았다. 인포그래픽 작품들은 교사가 수업에서 가르치지 않은 내용들까지 포함된 입체적인 생각들이 잘 녹아있었다. 꼭 내 수업에도 인포그래픽을 활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진 발표는 노동사와 국가 폭력에 관한 내용이었다. 특히 국가 폭력의 발표에서는 행위자 관점이라고 하여 가해자, 희생자, 방조자 등 각각의 행위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조명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러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기억’의 중요성에 이어 ‘역사’ 학문의 의미를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교과서에서 이 일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왜 그렇게 기록되고 있는지 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역사를 배우는 것 아닐까.
다음 강연이었던 박혜정 선생님의 논쟁적 역사 수업도 배울 점이 많았다. 특히 모임에서 공부했다는 책들은 모두 좋아 보여서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하나일 수 없는 역사>와 <현대사 몽타주>, <기억 전쟁>은 바로 사서 책장에 꽂았다. (아직 손에 잡지는 못했다.) 학생들이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는 것도 좋았고, 쉽게 자신이 평가할 수 있도록 도표화 시켜놓은 활동지도 좋았다. 무엇보다 선생님 스스로 자신의 활동지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시는 부분이 좋았다. 계속해서 공부하고, 더 발전하시려는 모습을 배웠다.
박중현 선생님의 한일 갈등 수업에 대한 강의에서는 평소 가지고 있던 고민이 해결되는 기쁨을 느꼈다. 전날 밤에도 학생들이 이미 ‘위안부’ 문제는 배상이 해결된 것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이 계셨다. 그때 공감을 많이 했다. 나는 배상, 판결이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만 했을 뿐 공부하지 않아서 학생이 물어보면 아마 제대로 된 답변을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중현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학생들에게 강제동원의 개념과 청구권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지에서도 학생들이 직접 한일 관계를 조망할 수 있게 한 부분이 현재와 맞닿아 있어서 좋았다. 과거를 위한 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니클로’며 ‘일본 여행’이며 ‘이 시국에’를 남발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에 대해 방향을 어렴풋이 잡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기차표가 매진인 관계로 유일하게 좌석이 있는 기차 시간을 맞추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허겁지겁 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사 수업에 대한 고민, 역사 교사로서의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열정적인 선생님들을 보며 내 모자란 부분을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 앞으로도 역사교사의 날은 계속 찾게 될 것만 같다. 물론 다음부터는 한밭 모임 선생님들을 모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