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보다Go! : 걱정만 하긴 꽤 젊은 교사들의 수업 에세이
≫ 김정호(충북 봉명고)
편집자주] 2019 겨울호의 김현진 선생님(전북역사교사모임)에 이어 2020 봄호에서는 김정호 선생님(충북역사교사모임)의 여성사 수업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수업 소재를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수업 과정에서 학생들 맥락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까지 쉽지만은 않았던 선생님의 고민이 녹아있다. 역사교사들은 학생들의 ‘생생한’ 질문들에 부딪치며, 과거를 현재의 맥락으로 마주한다. 여성사 수업은 특히나 그렇다. 몇 년째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뜨거운 이슈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수업 고민 과정들을 따라 가보며, 2020년 올해 새로운 주제의 수업을 구상해보기 위한 기운을 얻어가 보면 어떨까.
시끌시끌한 종례시간. 학생들이 스스로 조용히 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져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종례시간 분위기를 만들고 조용히 시킨 후에 안내사항을 전달하는 시간이나 물리적 시간은 큰 차이가 없더군요. 그런 종례 분위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제가 교실 문 앞에 가만히 서있으면 자발적으로 서로를 조용히 시키곤 합니다. 별명도 얻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보살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렇게 해도 종례시간을 많이 앞당기진 못합니다.
좋은 수업을 잘 하는 선생님도 좋지만 학생들을 옳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김현진 선생님의 이야기에 저의 교육관을 한번 돌아봤습니다. 옳은 방향을 알려주고 그 방향으로 성장해야겠다는 마음만이라도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실 문 앞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옳은 방향을 지향하고 실천하고 있는 제 모습을 학생들에게 항상 보여주고, 오롯이 학생 옆에 ‘서있어’ 주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강제적으로 주입하게 되면 학생들은 튕겨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료, 선배 선생님들과 내린 결론은 옆에 서 있어주기. 그런 방식으로 조금씩 좋은 영향들을 학생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저도 항상 옳은 방향을 심어주자는 생각을 갖고 수업을 계획하는 것 같습니다.
“저 결혼하고 아이 낳더라도 잘해나갈 수 있어요. 팀장님처럼!”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대사 한 부분입니다. 영화 속 여자주인공의 삶은 자신감 있던 저 대사와 다르게 결혼 이후 육아와 함께 지쳐가기 시작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수업시간에 영화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의 반응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소설 82년 김지영을 읽었는데, 독서상황기록에 넣어도 괜찮을까요?”
처음에는 그 질문이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었으면 당연히 독서상황기록에 기입하는 것이 아닌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과 영화를 둘러싼 논란에 학생들은 이미 익숙해져있었고, 특히나 남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무분별한 정보 속에서 페미니즘과 ‘82년생 김지영’을 바라보는 관점을 명확하게 세우기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 학생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기록을 생활기록부에 남겨도 좋을지 고민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괜찮아.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의 이슈를 이해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의 장점이 될 거야.”라고 그 학생을 응원해주었습니다.
요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젠더(gender)를 둘러싼 갈등이 격해지고 있습니다. 서로의 젠더를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우려가 많습니다. 근대사 속 여성의 이야기를 수업 주제로 선정할 때부터 충북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논쟁점이 많을수록 짚어가야 하고 학생들에게 다뤄주어야 할 것 같아 용기내기로 했습니다.
근대 여성사 수업은 수행평가와 함께 계획했습니다. 성취기준 중에서 [10한사05-02] 부분을 이용하여 수업을 재구성하였습니다.
근대 여성사 수업을 준비하면서 일부 학생들의 젠더에 대한 비합리적인 인식을 어떻게 해결하고 진행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1차시의 다양한 인권(청소년, 노인, 외국인, 외모, 성별)의 차별사례 인터뷰 활동도 그런 고민 끝에 구성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1차시 ‘인터뷰 사례 발표’시간부터 학생들과의 충돌이 생기더군요. 전업주부인 어머니를 인터뷰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얼마나 대우해주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학생들 간에 언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업주부는 본업이 가사노동인데, 여행 다녀와서 어머니가 세탁하고 빨래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대신 저희 아버지는 새벽에도 일을 나가거든요.”
발표자와 듣는 학생 간에 격한 논쟁이 일었고, 교실 분위기는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교사의 개입이 이뤄지고 나서야 언쟁이 끝이 났습니다.
“명절 행사는 가사 노동일까? 가족행사는 가사 노동일까? 전업주부의 퇴근시간은 언제일까? 전업주부의 직장 공간은 어디로 한정지으면 괜찮을까?” 등의 고민거리를 던져주면서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사의 발문이 뜻밖의 것이었나 봅니다. 혹은 학생들이 교실의 분위기를 살폈는지 언쟁이 줄어들었고, 전업주부의 노동 범위를 어디로 한정지어야 할까 등의 기준이 먼저 논의되어야 비판도 이뤄질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학생들의 언쟁들을 일부러 하나하나 시비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주제5 사료)최상 천이백원, 가격천만별
시골에 있는 뚜쟁이는 대개 어떠한 사람이 만흔가. 농사도 안코 장사도 안코 주막으로 몰아단기며 막걸리잔이나 치우고 엿박멩이판에서 개평푼이나 빼어서 먹고 사는 무리들이니, 방물장사 그릇장사하는 늙은 로파들을 돈을 주어가며 새에 나녀도 집집마다 드나들게 하야 어려운 집 며느리, 학대받는 새댁네들을 꼬여내어 서울로 데려다가 팔게 됨으로 실상 그 돈을 밧는대로 데리고 온자의 조흔일만 되고 만다. 어느 상품이든지 등급이 없는 것은 없지마는 아녀자 상품처럼 등급이 만흘순 업슬 것이다. 최상으로 일천이백원짜리를 위시하여 최하 오십원짜리까지 있다하니 그 중간에 끼어있는 품수가 단백으로 구분할 수 업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제일 갑이 만히 나가느냐하면 나이 이십안팟이 되고 얼굴이 어여쁘고 부모의 승낙서와 민적등본까지 가진이가 보통 일등이라는데 그리고도 가무가 능한 자이면 일천이백원이란 그중 만흔 갑슬 밧게 되고……
《시대일보》1925.8.26.“인육시장4”
모둠활동 다섯 번째 주제 ‘창기‧기생‧카페여급’에서 제시된 사료의 일부입니다. 근대사 속의 여성인물들의 열악한 환경은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인육시장’이라는 적나라한 단어들이 학생들에게 충격이어서 더 적극적으로 사료를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근대 여성사 속 기생, 카페여급, 창기 등의 사회구조적 환경과 성매매 문제를 모둠별 사료학습을 통해 이해시켰습니다. 그리고 전쟁 속 여성인권 침해 사례로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마지막 계획은 현대사회 속 성매매 문제를 언급하며 성매매 여성들의 유입 경로를 설명하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7차시 마지막 피드백 중에 교사와 학생간의 의견충돌이 생겼습니다. 현대사회의 성매매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관련짓는 과정에서 수업시간이 많이 지연되었습니다. 현대사회의 성매매 문제는 근대사 속 여성의 경우(창기, 일본군위안부의 사례)와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금 시대의 성매매 여성들은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서 유입된 경우가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 ‘자발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너희들은 고등학교에 ‘자발적’으로 입학한 거니? 사회분위기에 의해서 입학하게 된 거니? 지금이라도 학교를 그만두고 자유롭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안 되는 거니? 왜 고등학교는 반드시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니?” 라고 비유하면서 자발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해주고, 개인의 선택이면에 복잡한 상황, 맥락을 함께 볼 필요가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매매 여성들의 성장환경, 가정형편, 아비투스(실제로는 다른 말로 풀어냈다.)가 그들을 열악한 직업을 선택하도록 몰아가지 않았을까?”
통계자료, 교사의 권위(압박?)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의 고정된 인식을 유연하게 해주는데 꽤나 고생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까지 찾아오는 열의를 보이더군요. 결론은, 모든 학생들이 현대사회의 성매매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이를 통해 복잡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비판적 사고력과 안목이 길러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수업에서 얻은 것도 있습니다. 1차시 인터뷰에서 언쟁을 높였던 학생들 중에서 생각이 유연해지고 젠더 갈등 문제를 다시 한 번 고민해보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는 점입니다. 수업 이후 피드백과정에서도, 또 인포그래픽 모둠활동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모둠원간에 대화하는 과정에서 몇몇의 ‘변화하는 학생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결과물 중에는 영화를 패러디한 ‘18년생 곽혜숙’과 같은 의미 있는 인포그래픽도 있었습니다. ‘18년생 곽혜숙’을 만들었던 모둠은 1차시에 전업주부의 인터뷰를 발표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근대 여성의 직장·집안에서 이뤄지는 차별의 사례와 현대사회의 여성들이 겪는 차별 사례를 자연스럽게 연결 지어 토의하는 모습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저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떠올렸습니다. 생각이 유연해지고 안목이 길러진 몇몇의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또래도우미가 되고 제2의 교사가 되어서 또 다른 수업을 이끌어가고 영향력을 미치지 않을까. 모든 학생들에게 안목이 길러졌는가는 짐작할 수 없지만 몇몇의 그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이끔이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합니다.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엔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현대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는데 역사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치사회 이슈 등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하여 깊은 내용을 다루기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수업하다가 스스로 자체 검열하는 경우도 많고, 교사의 자체 검열과정이 수업 중 서로에게 ‘웃픈’ 해프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루기 힘든 내용을 재구성하고 수업 중에 녹여내려 노력하는 전국의 역사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들을 응원하며 제 고민을 마쳐볼까 합니다. 선생님들, 항상 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주] ‘고민보다Go!’는 ‘역사교육’ 2019 여름호(125호)부터 신설된 코너입니다. 그간 회보에 많은 수업 사례가 실렸었는데요, 많은 선생님들께서 ‘회보에는 화려하게 성공한 수업 사례 위주로 실리는 것 아닌가’라는 뼈아픈 의견을 주셨습니다. 사실 성공한 수업 이면에는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는 것. 우리 다 알고 있지 않나요?
보기만 해도 아프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하고 위로를 받고 싶으신 분들, 추후 수업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으신 분들 모두 모두 두 팔 벌려 격하게 환영합니다.*_*
‘고민보다Go’에 참여하신 분들에게는 소정의 원고료와 함께 다음 타자 선생님께 받으실 따뜻한 위로와 격려라는 작은 선물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수업, 업무, 담임에 지쳤을 때 동료들의 단단한 지지로 에너지를 회복해 보시면 어떨까요.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