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프로젝트 연수 지상중계(2차)
>> 편집부 정리(담당에디터 이재호)
(1) 강의하고 있는 나? 비정상일까?.....
‘강의’ 하고 있는 나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강의’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 할까요? ‘강의’에 대한 각자의 철학은 다를 것이며, ‘강의’에 대한 시대적 요구도 변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강의’를 하고 있고, 그 사실이 늘 마음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혹자에겐 씻지 못한 부정의 관성으로 혹자에겐 강한 자기보존의 항력으로. 윤종배 선생님은 불안의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합니다.
‘역사는 강의할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왜 하는가?
모둠 활동을 통해 불안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강의에 대한 각자의 경험이 공유되고, 각자가 생각하는 강의에 대한 철학이 공유됩니다. 그것은 불안의 교류이기도 합니다. ‘잘 구성된 강의 보다 활동중심의 수업이 배움에 더 효과적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서부터, ‘강의를 줄이고 활동중심의 모둠수업을 확대하고 싶은데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 중’이라는 현실적 문제, ‘역사라는 과목의 특성상 학생의 자율적 활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강의로 해결해야하는데, 강의와 활동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어렵다’는 실천적 문제, 그리고 소소한 성공의 경험과 다다한 실패의 경험, 그로인한 강렬한 트라우마들. 진지함과 소소한 웃음이 교류되며, 많은 것들이 해소됩니다. 자신의 불안이 어느 정도 명료해지고, 모두가 비슷한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을 때 쯤, 우리는 윤종배 선생님과 함께 보다 명료한 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강의’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강의’란 무엇이고, 왜 ‘강의’는 의미 있는 것이며,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 ‘강의’는 지양되어야 하는 것인가? 윤종배 선생님과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선배 교사들의 성찰의 계보를 따라 우리는 우리의 고민을 녹여 갑니다. 성찰의 계보를 살핀 우리는 ‘강의’는 필요하지만, 강의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공감을 가지며 대화는 깊어갑니다.
우리는 왜 강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중요한 하나의 질문이 던져집니다. 강의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살피는 것에서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생애주기별 교사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우스갯소리는 몇 가지 시사점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학생이 꼭 배워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과장되어 있고, 그 기준이 얼마 나 교사 주관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꼭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는 논리는 그럼에도 ‘강의’하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어기재는 아니었을까요? 두 번째 시사점은 ‘가르친다.’는 것이 모두라 여기는 관성이 ‘강의’를 방법으로 맹목하게 하는 이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늘어날수록 가르침의 여백이 보일 것입니다. 교사의 가르침의 시간은 일부이며, 타인과 조우하고 지식과 감성을 교류하며 함께 배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교육활동이라면, 어쩌면 가르침의 여백이 더 중요한 시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0대는 가르침의 시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세대는 가르침의 여백을 충분히 살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강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강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 쉬운 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강의식의 장점을 소개합니다. 많은 학습자를 동시에, 많은 량의 수업내용을 처리해야 하며, 특별한 학습도구가 불필요하고, 학생들의 불만이 가장 적게 표출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들이었습니다. 통치 및 통제의 효율성, 시간적·물리적 경제성, 대상의 수동성과 형식적 균등성, 그로인한 불만 통제의 편이성 등이었습니다. 모두 통치자의 시각에서의 장점이었습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철저히 교사의 편이성에 입각한 장점입니다. 새삼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고, 너무도 진부한 레퍼토리이지만 이 순간 우리가 멈추었고,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소소히 묵인하며, 아닌 척 편이를 누리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학생의 관점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우수한 한명의 학생, 평균의 표본, 가상의 대상체가 아닌 우리가 흔히 만나는 학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분을 집중하지 못하는 고등학생, 15분을 집중하지 못하는 중학생 아니 그보다 더 다양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예측하기 힘든 다양다종의 학생들, 그들과의 만남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매력 있는 교사의 강의라도 이들 앞에선 무력해집니다. 질주하듯 달려가지만 다수를 잃어버리는 질주의 우회로. 그와 대별되는 더디지만 돌아가는 지름길, 다양다종의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최대한 배움을 함께 하기 위해 택해야 할 길은 어느 길이어야 하는가를 윤종배 선생님은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강의는 혼자만 속도감을 느끼는 쾌속질주는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강의는 버려야하는 것일까요? 윤종배 선생님은 강의 속에서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옛날 분들은 가르치는 것을 ‘깨우친다’고 했습니다. 모르던 것을 이야기만 듣고 알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신영복, 담론 p13~14 -
윤종배 선생님은 담론의 문장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소크라테스가 역설한 산파와 같은 교사의 역할, 줄탁동시의 고사에서 시사했던 스승의 역할을 우리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의 실천은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을까요? 윤종배 선생님은 강의 하는 교사 자신의 지금을 직면하길 바라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교사는 학습자가 가진 지향과 역량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조력하고, 학습자가 살아온 역사를 인정하고 공유하며, 소통을 통해 삶을 구성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교사는 학습자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좋은 터전으로 길을 안내하고, 학습자가 부딪힐 불필요한 어려움을 해소해 주며, 함께 길을 가야 하는 길동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안내를 위해 학습자가 처한 곤란, 좋은 길로 안내하기 위한 방향설정, 함께 가기 위해 요구하는 학습자에 대한 잡다한 정보 등에 대해 교사가 얼마나 거리두기를 잘 할 것인가 입니다. 부족하면 무관심이 될 것이며, 지나치면 간섭이 될 것입니다. 교사에겐 부족해서도, 지나쳐서도 안되는 적절한 중용의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강의가 그렇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이 두어야 할 적절한 거리, 부족해서도 지나쳐서도 안되는 정도의 필요성이 강의의 필요성이라 말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 학생을 바라보며, 강의의 필요성을 내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여 전지적 작가시점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봐야 할 것입니다.
「저마다 자기 안에 발휘되지 않고 잠들어 있는 지능에 다음과 같이 말하기만 하면 될 것 이다. Age quid agis, 즉 니가 하는 것을 계속하라」 -자트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p35 -
윤종배 선생님은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 담긴 자코토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다시 강의를 이어갑니다. 유능한 교사란 무엇인가? 짧은 질문에 여러 단상이 공간을 채우며 흘러갑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랑시에르는 유능한 스승 밑에서 배운 제자는 유능함에 가까워지고, 무지한 스승 밑에서 배운 제자는 무지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며, 오히려 무지한 스승이 유능한 스승보다 덜 위험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무지한 스승은 스스로 무지함을 알기에 학생이 알고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알기 위해 더 소통하고 공감하며, 앎의 길을 열어간다고 합니다. 네델란드어를 모르는 프랑스 교사가 프랑스어를 모르는 네델란드 학생들과 「텔레시마코스의 모험」의 고전의 의미를 해득해가는 사례는 그의 주장을 가장 잘 뒷받침해줍니다. 교사는 자신의 유능함과 무지함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능한 부분은 나누고, 무지한 부분은 함께 성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그 성찰의 방향은 학생들이 알고자 하는, 가고자 하는 것과 같아야 하겠죠. 학생을 위해 스승이 무지함을 인정하는 행위 그러한 확신과 자신감은 학습자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기 안에 발휘되지 않고 잠들어 있는 지능에 다음과 같이 말하기만 하면 될 것 이다. Age quid agis, 즉 니가 하는 것을 계속하라’는 것은 그 신뢰의 표현입니다. 학생의 가능성과 능력을 신뢰하고 자신의 무지함과 유능함의 경계를 명확히 아는 스승이야 말로 지혜로운 스승일 것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지혜로운 스승의 전형을 히말라야 등반을 조력하는 세르파에서 찾고 있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강의 역시 무지한 스승의 전략, 세르파의 전략과 같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교사 스스로의 유능함과 무지함의 경계를 인지하는 것, 즉 학생이 알고자 하는 것, 가고자 하는 방향을 위해 아는 만큼 안내하고, 모르는 부분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공감하며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아는 바, 즉 유능함의 영역인 강의는 필요하지만 그 필요성은 교사의 유능함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요구하는 만큼의 필요성이어야 할 것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학생들이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강의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앎의 필요성을 깨우치고, 그 길을 찾아가는 최소한의 안내는 필요하니까요.
강의법의 보완을 위한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시간은 무르익어 갑니다. 발문과 질문의 중요성은 소통하고 공감하는 강의의 핵심입니다. 모두 동의하지만,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한 고민이 늘 자리합니다. 짧은 토론은 이 부분에 대한 연구 필요성의 깊은 연대로 피어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주요한 강의법의 보완방법을 제시합니다. 발문의 방법은 학생들이 사고하는 방법을 환기하고,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잘못된 발문법과 올바른 발문 법을 예시로 들며, 교사의 발문을 성찰하게 합니다. 발문은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하고, 사고의 결과는 다시 질문으로 환원되는 과정이어야 하며, 교사는 생각하는 방법과 생각을 교류하는 방법을 안내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는 보다 현장적이고 사실적인 부분으로 이어집니다. 효과적인 강의는 잘 구조화된 강의여야 합니다. 잘 구조화 된다는 것은 내용지식, 교수내용지식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내용을 잘 구성하는 능력과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 그 노하우에 대한 토의가 진행됩니다. 무림의 고수들은 수줍은 듯 건내지만, 너무도 탁월한 방법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작은 공간은 열정으로 가득 찹니다.
역사의 본질은 ‘이야기’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이야기’로 주제를 이어갑니다. 이야기는 역사 수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강의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구성된 이야기와 이야기의 적절한 배치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이야기는 지나치면, 학습자의 영역을 함몰시킬 수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체가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윤종배 선생님의 견해는 울림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학생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강의법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와 연결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글쓰기로 그 전환을 모색합니다. 학생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건을 해석하고 구성하여 이야기로 표현하며,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방법이 제시됩니다. 학생 입장에서, 역사가가 되어, 당시 인물이 되어, 현실과 연결하여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이야기’는 교사의 재능이 아닌 학생의 성찰과 표현의 도구가 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강의와 글쓰기의 연결을 통해 교사와 학생의 소통과 공감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강의법의 말미는 동영상 활용의 사례와 방법, 연표, 지도 등의 보조 자료의 활용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첨언됩니다.
(1) 협력학습은 왜 필요한가?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집니다.
협력학습은 왜 필요한가? 나의 실천경험은?
성공과 실패의 요인은? 앞으로 나의 계획은?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기우는 가을 오후 하나의 질문은 다시 우리의 박동을 알레그로 알레그로로 바꿉니다. 협력학습은 꽤 지난한 과제였었나 봅니다. 많은 대화들이 이루어지고, 디테일한 곤혹감들이 공유됩니다. 실패의 연속인 모둠학습이 꼭 필요한 것인가? 전체 교육과정 중 모둠학습의 비중을 어떻게 두어야 할 것인가? 모둠 구성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모둠학습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 특히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무기력한 학생을 참여 시킬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이 있을까? 대화의 시간은 연장의 연장을 이어갑니다. 각자의 경험은 공유되고, 경험의 차이는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대화의 열기를 이어 다양하게 공유된 곤혹감들에 대한 해법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협력학습의 필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곤혹감의 출발점은 협력학습이 왜 필요한가? 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선생님은 협력학습의 중요성을 차근차근 설명하십니다. 어쩌면 각자에게 너무 익숙한 이야기들일 수 있지만, 다들 새로운 이야기 마냥 눈빛이 반짝입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익숙함을 다시 바라보는 것, 그만한 신선한 충격은 드물 것입니다. 협력학습에 대한 필요성을 스스로에게 묻는 것, ‘배움’을 위해 나는 함께 배우는 사람들과 협력하고 소통하고 있는가? 만약 하고 있다면,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임하고 있는가? 세밀하게 파고드는 생각의 고리들은 많은 것을 새롭게 합니다. 약간은 날카롭고, 약간은 아프지만, 통증이 주는 싸우고 있다는 실존감과 회복될 것이며, 건강해 질 것이라는 기대는 묘한 희열로 다가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패러다임이 지식교육에서 창의교육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지녀야 할 역량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배움의 과정이란 지식을 자기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표현이란 방식을 통해 타인과 교류하는 과정이며, 그것을 통해 공동체의 합의된 지식으로 지평을 확대해가는 총체적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의 주관을 형성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고력을 갖추어야 하며, 공동체의 합의 가능한 객관을 형성하기 위해 타인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협력적 태도와 의사소통의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따라서 협력학습은 배움의 가장 적확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협력학습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협력학습이 강의보다 효과적일까? 라는 의문을 갈파하며,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설득해갑니다. 혼자 머리를 싸매는 고독한 경쟁과 4개의 뇌가 작동하는 역동성이 있는 교류, 무엇이 배움에 더 효과적인가를 이야기 합니다. 4개의 뇌가 작동하는 역동성은 개인이 가진 지적 한계를 넘어섭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참신한 발상들이 서로의 사고의 영역을 자극하고 확대해 나갑니다. 각자의 사고력은 서로의 조력을 통해 조금씩 확대되며, 지식에 대한 각자의 표현은 민주적 토론의 과정을 통해 합의 가능한 공통의 지식으로 확대됩니다. 검증되지 못한 체 개인의 세계에 갇힌 지식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합의된 공통의 지식으로 지평을 확대한 지식 무엇이 지식으로서의 효과를 가질까요? 답은 자명해 보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강의로만 움직이는 대화하지 않는 교실과 협력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교실의 차이를 이야기 합니다. 그 차이의 핵심은 교사가 중심이 되는 교실과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실입니다.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실은 학생의 표현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표현을 토의의 공간으로 가져와 협의하고, 협의를 통해 함께 지식을 만들어가는 민주적 과정, 그것이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실입니다. 학생이 말하는 교실, 말하는 학생이 자유로운 교실, 표현이 교류되고 공통의 지성으로 승화하는 교실 윤종배 선생님은 협력학습의 지향점을 여기서 찾고 있습니다.
(2) 협력학습은 어떻게?
이야기는 가장 곤혹스러운 협력학습의 방법으로 이어집니다. 모둠활동에서 협력학습에 대한 각자의 경험이 간헐적으로 오고 간 후 그 곤혹감이 더 깊어갈 때 쯤 윤종배 선생님은 오랜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실패의 경험은 성공을 위한 여정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학기 초의 정지작업, 효과적인 모둠구성의 방식, 학생들과의 협의과정, 평가의 방법과 피드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우선 협력학습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협력학습이란 모둠학습인가라는 질문은 신선한 충격입니다. 협력학습이 곧 모둠학습이라 생각한 것이 곤혹감의 큰 요소이지는 않았나 반추해봅니다. 협력학습은 교사 간 협력, 교사 학생 간 협의, 학생 간 협동의 과정을 모두 의미합니다.
협력학습을 잘 하려면, 교사들의 공동연구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과협의, 교과 간 소통을 통해 교육과정과 내용을 재구성하고, 학생에 적합한 효과적인 과제를 구안하고, 학습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는 교실 문화와 공간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모든 과정의 협력학습을 위한 공동연구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학생들과의 충분한 협의과정 또한 필요합니다. 협력학습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협력학습을 위해 필요한 준비들을 공유해야 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학기 초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협력학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배움의 가치를 설득하고, 그 방법에 대한 숙지 역시 반복적으로 경험케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협력학습을 위해 학생들이 준비해야 할 배움을 위한 기초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경험케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협력학습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개인적 지식습득의 과정,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단계적 훈련으로서의 짝 토론과 모둠 토론,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글쓰기와 생각을 고차원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발표와 토의의 과정. 이러한 과정의 필요성과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배움에 대한 신뢰성을 협의하는 과정, 윤종배 선생님은 이 과정들을 교사와 학생 간의 협력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학생들 간의 협력학습입니다. 우리가 흔히 모둠학습이라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몇 가지의 제언을 통해 이 공간을 넘어선 다양한 방식의 교류를 제안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협력학습을 위해서 필요한 6가지의 요소를 제안 합니다
1. 교사의 치밀한 모둠조직 2. 교과서를 적절히 재구성
3. 관찰과 개입을 통한 모둠 활성화 4. 부적응학생에 대한 대안 마련
5. 적용가능한 시기와 주제 안배 6. 수업과 평가의 연계성 고민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 고민해야 할 부분들입니다. 모둠구성의 어려움이 토로되고, 관찰과 개입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해야 할 것인가가 논의됩니다. 특히 부적응학생과 그로인해 상대적 박탈감으로 의욕을 상실해가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 평가와 연계된 모둠학습과 그렇지 않은 모둠학습간의 차이 등이 논의됩니다. 확실한 답은 없어 보입니다. 다만 교사가 얼마나 유연하고 치밀하게 그 상황을 살피며 준비하는가? 학생의 가능성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교사와 학생간의 공감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등이 답을 찾는 길의 등불이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다양한 협력학습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토론식, 하브루타, 거꾸로, 프로젝트 수업 등 다양한 방식의 특징과 주의점, 사례 등은 선생님의 책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길 바라며, 짧은 시간을 애석해하며 질문의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3. 질문 : 가슴 속 파문을 공유하며
질문 : 학생들의 사고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토론수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그런데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토론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토론수업을 잘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것을 주제로 해야 할지, 토론의 방법은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운영과정에서 무엇에 신경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지신 노하우를 듣고 싶습니다.
대답 : 저도 토론수업을 진행하면서 실패의 경험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답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저의 경험에 근거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선 주제가 토의 토론의 적합한가 하는 부분입니다. 토론 주제를 어떻게 설정하는가는 매우 중요한데요. 저는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결론을 모르는, 팽팽한 쟁점이 되는 주제를 택합니다. 결론을 알게 되면 결과론적인 시각이 압도하고, 쟁점이 하나의 편으로 기울 경우 토론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리고 토론의 주제는 수업의 목적과 학습의 내용에 부합하는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취기준에 적합한 주제와 내용구성을 토대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토론을 어느 시점에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는 평가와 연계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닿아있는데요. 평가와 연계될 경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평가와 연계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이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토론에 임할 수 있는 시간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듯합니다. 팀을 구성하는 문제도 고려대상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주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인데, 찬반토론의 경우 임의로 찬반을 택하게 할지, 자신의 입장을 토대로 정하게 할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운영과정에서 토론진행을 교사가 할 것인지 학생에게 진행을 맞길 것인지도 생각해볼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평가부분인데, 배심원과 평가단을 장치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판결문 쓰기 방식으로 토론자 뿐 아니라 배심원 평가단을 통해서 모두가 토론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하고, 판결문 형식으로 토론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식 또한 고려해볼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 저희 학교는 성적의 양극화가 심한 학교입니다. 협동학습을 했을 때, 소위 일개미라 하는 열심히 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무임승차 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명확히 구분이 되어 서로가 불만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협동수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협동수업의 필요성에 대해 아이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성적양극화가 심한 학교에서 모둠학습을 잘 할 수 있는 팁, 혹은 학생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답: 아마도 많은 선생님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중 하나일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둠활동을 하다보면, 모든 과제를 혼자서 수행하는 일개미 같은 학생이 있죠. 그리고 무임승차하는 아이들도 있을 겁니다.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일 수도 있고, 만사가 귀찮아서 일수도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과제 같습니다.
저의 경험을 이야기 드리면, 저는 학기 초 정지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모둠학습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것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일상처럼 익숙하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둠을 구성하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좀 더 디테일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위권 학생들에게 모둠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것에 대한 유·무형의 보상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학생들의 특징을 살려주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반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있고, 자신이 도움을 줌으로써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 성향을 보이는 학생이 있습니다. 저는 이 학생들에게 학기 초에 모둠 장으로서의 역할을 부탁하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경험상 이 친구들의 경우 모둠학습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란 생각 보다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학생들에게 그러한 의미를 명백히 알려주는 과정과 분위기가 중요해 보입니다.
모둠을 구성하고, 과제를 부여하고, 역할을 분담할 때 그 과정을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익숙해 질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생들의 능력에 맞게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게 하고, 자존감을 지켜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학기 초에 많이 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아이들의 관계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무엇이 답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학생들과 수업을 통해서 관계하는 것을 업이라 여기고, 좋은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수업의 길이 조금은 더 밝아지진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