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상처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몸에 난 작은 상처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진 말의 흔적까지. 어느 쪽이든 상처가 생기면 아프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때로는 흉터로 남기도 하지만, 새살이 돋아나면서 다시 회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는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일까. 더디고, 아물지 않기도 하고, 또다시 비슷한 자리에 다치기도 한다. 나는 마음의 상처 역시 흉터처럼 남는다고 생각하고 몸에 난 상처보다도 더 깊을 수도 있고 회복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친구가 오래된 별명을 듣고 표정을 굳혔던 일이 있다. 그 별명은 학창 시절 우리가 함께 깔깔거리며 웃던 농담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달라졌고, 그 별명은 이제 그 친구에게 웃음거리가 아니라 마음이 불편해지는 대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가깝다고 해서, 오래됐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던져도 되는 것은 아니란 걸. 오히려 가까운 사이에서 상처는 더 쉽게, 더 깊게 파고든다는 걸. 마음 놓고 던진 말 한마디, 무심코 지나친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는 오래된 흉터를 다시 찢는 칼날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상처는 의도와 상관없이 남는다.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아니, 어쩌면 상처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때그때 치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더 아프지만, 그만큼 더 빨리 치유할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존중하고, 거리를 유지한다면. 존중은 거리를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속에 당신을 소중히 여깁니다 라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최근 뉴스에서 보는 많은 잘못된 관계에서 오는 비극들이 보통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이라는 걸 알게 될 때마다, 가까울수록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처가 나면 덮지 말고 꼭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상처에도 ‘소독’이 필요하고, ‘치유’가 필요하다. 덧나지 않게, 흉 지지 않게.
“상처엔 솔솔~ O데카솔.”
어쩌면 우스갯소리 같지만, 상처 앞에서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나 자신도, 상처를 다정하게 돌보는 사람도, 그 모두가 필요하니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관계가 오히려 건강한 관계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