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관계에 관한 관(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다. 생각해 보면 유치원을 다니면서 첫 조직생활(?)을 시작할 때부터인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떤 모임을 가던 늘 좋은 사람, 좋은 인상으로 남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있는 부탁도 제대로 거절을 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감정까지 내가 다 떠안으려 했다. 그렇게 하면 나를 좋아해 줄 줄 알았고, 어딜 가나 환영받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조직, 모임들을 거치게 되면서 이전보다는 대인관계가 넓어졌다.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나름의 대인관계를 잘 해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관계는 더 힘들어졌고, 나 자신은 점점 지쳐갔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를 지워가며 맞춰주었던 것들이, 언젠가부터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서운함은 쌓이고, 말하지 못한 감정은 오해가 되었다.
오해를 풀기에는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소모를 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오해가 생길 때마다 늘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것을 보면 오해를 풀기 위한 방법조차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오해를 풀기 위해 시도했던 것들이 핑계로, 자기 면피 책으로 비치는 경우가 있었고 다소 억울함을 느꼈을 때도 있지만 관계 개선과 유지를 위해서 일부러 자세를 낮추는 행동까지 했었다. 그러나 때로는 오해를 풀기 위해 다가섰던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더 화나게 하고 자극하게 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하니, 정말 오해로서 빚어진 상황을 풀어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모든 오해를 회피하거나 방관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꼭 해결해야 할 오해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다만, 굳이 풀지 않아도 되는 오해나 상대방이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본인 스스로 민망해하거나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있다면, 그에 쏟는 노력과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풀 수 있는 오해는 풀어야 한다.
건강한 관계란 선을 긋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지키는 선, 감정의 한계, 책임의 범위. 그 선들이 분명해질수록 오히려 관계는 더 단단해진 것 같다. “나는 이건 좀 어려워”라고 말했을 때, 누군가는 등을 돌렸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때 알았다. 바운더리는 벽이 아니라 창이 아닐까 싶다. 나를 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창.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투명한 경계. 흡사 삼투압을 일으키는 얇은 세포막 같은 그런, 투과성 좋지만 절대 찢어지거나 손상되지 않은 어떤 막 같은 것 아닐까 싶다. 너무 단단하고 불투명하면 다른 사람과의 상호 교류가 어렵지 않겠는가.
모든 관계를 다 가져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며, 그렇게 된다면 내가 먼저 지칠 것이다. 그 안에서 선택적 관계를 이어나가야겠고,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나를 버리는 대신 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함께하려 한다. 관계란 결국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그 안에서 따뜻하게 머무는 일이라는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