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사람은 해석의 왜곡성이 높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듣기 전에는 알랭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순간 시작된다는 말을 알고 있었고, 불행하게 느끼는 여러가지 요인 중에서 '남과의 비교'라는 그 한 문장만 마음에 품으며 지내 왔었다.
어느 날은 공평하게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아야 할 양이 적거나,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는 기분이 안좋았다. 불행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남들과 비교했을 때 동등하게 받지를 않아서인지 기분이 꽤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기분의 불편함? 아무튼 비교를 하는 순간 그런 감정들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게 된 것 같다.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으면 될 것을 마음에 담아둔 것 같다. 내가 아는 불행은 그정도였다.
불행한 사람은 해석의 왜곡성이 높다는 말.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이 상대의 호의나 인사에 대한 해석을 잘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가령, 한적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차에 타라며 시내까지 데려다 준다는 친절을 베풀었는데, 어떤 사람은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왜 그러지?' '이유가 뭐야?' '나한테 뭘 원하는거야?'라는 등의 해석의 왜곡을 할 수가 있다.
또 다른 예로는 '밥 한번 먹죠'에 대한 해석의 왜곡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었기 때문에 누구랑 나가서 밥을 사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듣게되는 말은 '언제 밥한번 먹자'였다. 정말 나는 순수했을까? 학교 선배님의 '언제 밥한번 먹자'에 대해서 그 '언제'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게 되었다. '도대체 언제지? 연락해 볼까? 한없이 기다려야만 하나?' 결국 망설이다가 선배님에게 연락을 했다.
"선배님, 지난번 밥 한번 먹자고 하셨는데 그게 언제인가요?"
"아. 그거~ 기회될때 먹자는 거였지. 뭐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하하 자식. 그래그래. 다음기회될 때 먹자" 결국에는 그냥 넘어갔다.
그 뒤로 누군가 '밥'한먼 먹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신경 쓰며 들은 것 같다. 내 마음속에는 이미 '만나지도 않을 꺼면서 뭘 계속 밥을 먹자고 하는가'라는 해석의 왜곡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모두가 빈말을 하는것 처럼 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사람들이 흔히 인사말로 하는 '식사하셨어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을, '빈말 할거면 뭐하러 하냐' 식의 왜곡된 감정이 인입되기 시작했다.
매번 나를 만날 때 마다 '언제 한번 보시죠', '언제 한번 식사하시죠'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말들이 한번, 두번, 세번, 네번 쌓여갈 때마다 빈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빈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을 때는 직접 말하였다.
'우리, 언제 만나자'
빈말하는 여러번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날짜를 잡아버렸더니 상대방이 당황을 한다. 자기는 가볍게 밥한번 먹자고 했던 것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날짜를 고정하는 사람은 나를 만날 의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빈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만나자고 제안했을 때 '아, 내가 일정 좀 보고 알려줄게'
이런 태도를 상대방이 보인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답변이 없거나 자연히 넘어간다면 상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러차례 빈말이 반복되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해석의 왜곡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한두번의 상황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다.
결국, 불행한 사람은 해석의 왜곡성이 있는 사람인데, 해석의 왜곡성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태도가 섞인다고 '불행한 관계, 형식적인 관계' 형성이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이 통하는 관계는 굳이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있다. 굳이 밥 한번 먹고, 소주한잔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 본다. 관계에 있어 해석을 왜곡하지 않도록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밥 한번 먹자고 뱉는다면 진짜 약속 지켜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