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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티로스 Oct 30. 2023

"선생님, 그 말이 확인되면 학폭으로 신고하려고요"

언어폭력

오늘 오후 수업 중에, 초3 여학생이 잠깐 나를 불러서 잠깐 수업하던 중에 복도로 나와 봤다. 그 친구는 바로 앞 수업 시간에 수업을 마친 아이였다. 그 아이의 얼굴은 심각해 보였다. 나가면서 떠오른 장면이, 수업 마치고 나서 바로, 복도에서 전화하는 모습을 얼핏 봤었는데, 벌써 자기 엄마와도 통화가 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응, 왜?" 


"선생님, 혹시 아까 수업 중에 A 하고 B가 얘기하는 내용 중에, 제 얘기하는 것 같던데, 혹시 들으셨어요?"


"응, 무슨 얘기지?"


"아까 수업 중에, 독해책에 동물 나오는 사진 있었거든요. 오랑우탄 사진이 있었는데, A가 그 사진 보고 내 얼굴 닮았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요. B한테 그 얘기를 A한테 들었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만약, 그 말이 맞다면, 그 A라는 애가 학교에서도 저 때리고, 놀리고 해서, 한번 엄마가 주의를 주었는데, 다시 한번 더 드러면, 학교 학폭위원회에 신고한다고 했거든요. 저희 엄마가 학폭 위원회라서 한번 선생님께 확인해 보래요."


학폭위원회.... 솔직히 드라마에서나 들었지. 라이브로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순간 심각한 상황임을 감지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서, 그런 학폭에 대해서는 민감하지 않았는데, 이 여학생의 표정과 말의 무게감을 보니, 자기한테는 엄청 중요한 일이고,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이걸 그냥 넘어가지는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확인을 원했던, B라는 친구가 내 아들이었기 때문에, 저녁 조금 한가한 시간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확인해 보니, 그 A라는 친구가 아들한테 속삭이듯 얘기했다고 한다. 이 오랑우탄 사진이 그 여학생 닮았다고 얘기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아들은 수업 중이라 다른 말은 못 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였다고 한다. 


'아차, 내 실수구나!' 


내 수업 중에 일어난 일이라, 내가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수업은 내가 있었음에도, 일대 일 개별 코칭으로 수업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이 나와서, 뭔가를 검사 맡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이건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내가 관리만 더 잘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이 더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과오를 여학생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이 일을 제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낮에 영희한테서 얘기는 들었습니다. 학교에서도 한 번씩 그런 일이 있었나 봐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들한테 물어보니, 그런 말 했는지는 확인이 되었고요. 물론, 그 말을 진짜 했는지는 내일 그 학생한테 한 번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우선 그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서, 제 수업이었기 때문에, 제가 먼저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외모로 비하하는 것인데, 제가 직접 들었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주의를 주고 했었을 건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내일 그 친구한테서 사실을 확인해 보고, 그 사실이 맞다면, 제가 그 학생에게 따님에게 사과를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전화로 어머님께 이해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어머님께서도 딸에게, 먼저 "원장 샘께서 확인해 보시고, 조치를 취해주실 거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 딸은 괜찮아진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래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물론, 내일 그 남학생에게도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확인해 봐야 한다. 



하지만,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말의 무게'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의해서 '그 사람의 사람다움'이 보일 수 있다. '뭐, 초등학생들 말장난인데요.'라고 단정 짓기에는 이미 한쪽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되어 있고 어느 한쪽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 일 수 있다. 내일 그 초등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말은 정말 가려서 해야 한다. 비하해서도 비아냥거려서도 안 된다. 그 어떠한 말이라도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온다고 믿고 있다. 


언어도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글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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