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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유랑경음악단 Jun 10. 2019

0회 Prologue

시베리아 황당열차

1. 우리


"같이 음악을 만들어 볼래?

 근데 무슨 음악을 어떻게 만들지? "


우리는 살짝 보태서 20년 지기 친구이자 동료이다.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너무 명확하게도 서로가 어렸을 때였다.

같은 연습실에서 얼굴을 익히고 대화를 나누다 의기투합해 함께 밴드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각자의 밴드나 프로젝트로 음악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서로 이사한 집이 너무 가까워 베개를 들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되어 있었다. 늦은 밤 캔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이 많아졌고, 여러 얘기들이 오갔지만 역시 우리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건 음악이었고, 음악 얘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언제나 든든하고 좋았다.


동네 친구가 된 후에는 늦은 밤 캔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이 많아졌다


"같이 음악을 한다면 어떤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음악을 같이 해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온 건 한참 나중이었다. 음악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만 가던 시기였다.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꿈꾸기에는 많은 시간들이 소박하게 흘러가 있었고, 사실 좀 더 어릴 적에는 의도적으로 그런 것들을 거부했던 거 같다. 요즘 홍대병이라 불리는 것일 수도 있고 비주류 성향일 수도 있지만,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우리의 애정은 줄지 않았으며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서로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음악을 만들 거라는 단단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만드는 음악은 창작과정 자체가 즐겁고 지속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 순위로 자리 잡았다. 그것이 서로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2. 방유랑 경음악단


새봄: 너는 여행할 때 가장 좋아하는 게 뭐니?

미옹: 술 마시는 거요. 낮술도 좋고 밤술도 좋고 안 마셔본 술 마시는 것도 좋고.

새봄: 하핫. 나는 여행을 좋아한 적도 없었지만, 지금은 더 관심이 없는 거 같아.



우리의 경우, 한 사람은 항상 여행을 다니려 하고, 또 한 사람은 좀처럼 집을 비우지 않는다. 한 사람은 어딜 가든 음식을 잘 소화하고, 또 한 사람은 음식을 가려 먹는 편이다. 한 사람은 돌봐야 할 반려동물이 없고, 다른 사람은 손이 많이 가는 고양이들을 모신다.

서로가 이렇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은 늘 선택이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단어 안에는 늘 다양한 형태의 선택들이 있기에, 상이한 취향과 상황은 각자의 몫으로 두고 존중하며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새봄이 모시는 김방순(앞)과 최금동(뒤) 고양님들


어느 날 우리는 맥주 한 캔씩을 앞에 두고 유튜브로 요즘 유행한다는 기차 실시간 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찌 보면 지루할 24시간 기차 실시간 영상이 요즘 같은 세상에 인기라니 참 신기하다 싶었는데, 영상을 보는 동안 좋아하는 그 마음이 이해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선물로 받는 기분.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졌다.

기차의 덜컹이는 소리를 들으며, 창밖의(정확히는 영상 속의) 단조로운 풍경을 보며 우리 각자가 기차 안에서 어떤 음악을 듣고 있을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거다. 실제로 떠나진 않지만 가상으로 가보는 여행, 거기에 우리의 음악을 더한다면? 바로 그 상상을 시작으로 우리는 "방에서 유랑하는 방유랑 여행자"가 되었고 이 음악여행 프로젝트명을 "방유랑 경음악단"으로 결정했다.



24시간 실시간 트레인 뷰 출처: https://youtu.be/2_3jxGirW4I


우리는 방에서 유랑하는 "방유랑 여행자"가 되었다


3. 시베리아 횡단열차


첫 여행으로 방유랑 경음악단은 과감하게 세계 최장거리 노선을 자랑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기로 했다.


둘 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 본 적도 없지만,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였다. 가상으로 떠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이것이 아닐까? 평소에는 엄두도 내보지 못한 곳을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니. 게다가 무려 9288Km라는 긴 거리를 달리며,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얘기만큼 많은 음악도 만들 수 있겠지.

우리는 마치 진짜로 여행하는 것처럼 준비했다. 여행 동선을 짜고, 숙박, 차비, 식대 같은 경비들을 체크하고, 이런저런 여행지 정보를 검색했다. 욕심 낸 부분이 있다면 풍성하고 여유 있는 여행을 위해 일정은 넉넉하게 잡았고, 기차표도 1등석으로 끊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3등석의 낭만을 꿈꾸기에는... 본능적으로 몸을 먼저 챙기는 나이에 들어섰다) 이왕이면 비행기도 비즈니스석으로 탈까, 숙소도 좋은 곳으로 하자 등등의 계획을 세우며 실질적인 경비도 염두에 두었다. 혹시 또 모를 일이다. 나중에 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진짜 여행의 기회를 줄지. 그땐... 계획을 조금씩만 수정하면 된다.

 


첫 여행은 과감하게 지구에서 가장 긴 노선을 자랑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탑승하기로 했다.


4. 시베리아 황당열차?


방유랑의 첫 음악/여행 프로젝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아니라 시베리아 황당열차다.

 

여행 자체가 가상이기도 하지만, 가상을 넘어 실제 여행지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에 가거나 체험을 해보는 ‘황당’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인제를 방문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 마주하게 되는 자작나무 숲을 떠올려보는 식이다. 그곳에 가는 길에는 기차 안에서 ‘팔도 도시락’(러시아 기차여행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한국의 바로 그 라면!)도 먹을 것이다.


우리가 짠 여행 계획을 바탕으로 방 안에서 또는 방 밖에서 진행되는 ‘시베리아 황당여행’을 소개하려 한다.


-여행지 정보

-글로 배운 역사, 문화

-방구석 여행 팁

-아님 말고 키워드 황당 여행


기본적인 여행지 정보들을 찾아보고, 그 과정에서 흥미가 생기는 키워드들을 꼽아 관련된 서적이나 동영상, 음악 등을 찾아서 읽고, 보고, 들었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인 여행의 정보수집이 되었고, 여기에 황당 열차의 황당력을 높여주는 '방구석 여행 팁'과 ‘아님 말고 키워드 황당 여행'을 더했다.

 


여행지 정보들을 서칭 하고, 그 과정에서 흥미가 생기는 키워드들을 꼽아 관련된 서적이나 동영상, 음악 등을 찾아본다.


'방구석 여행 팁'은 방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을 제안한다. 때로는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놀 수도 있고, 때로는 러시아 보드카를 마실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인터넷에서 판다는 바이칼 생수를 마셔보자고  계획을 세웠다.


'아님 말고 키워드 황당 여행'은 방 밖으로 나가 우리가 꼽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간접 체험한다. 때로는 서울 안에서 러시아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때로는 인천의 러시아 거리에 가보기도 하고, 때로는 국내 열차를 타고 자작나무를 보러 가기도 할 계획이다.


자, 이제 계획은 끝났다. 우리는 이 계획을 가지고 '그곳'과 우리를 연결하는 첫 발걸음을 떼려 한다.

 


때로는 방에서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놀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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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방유랑 경음악단의 <시베리아 황당열차>는 2주에 한 번 업데이트 됩니다.

다음 1회부터는 가상여행과 함께 창작된 음악도 함께 소개됩니다. 기대해 주세요!

브런치에 연재된 글은 낭독 버전으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사운드클라우드, 네이버 오디오캐스트, 유튜브, 애플 팟캐스트)


[방유랑 경음악단] 사운드 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bangyurang/bwjvguxuyovm

[방유랑 경음악단] 네이버 오디오캐스트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431/clips/1

[방유랑 경음악단] 유튜브: https://youtu.be/6is4u3f31v8

[방유랑 경음악단] 애플 팟캐스트 : 추후 업데이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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