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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 Mar 21. 2021

내 새끼보다 잘난 것들은 다 미워

 “내 새끼보다 잘난 것들은 다 미워. 내 새끼 기죽을 거 아냐”
드라마 <나의 아저씨>  동훈의 어머니(고두심) 대사 중



K pop이 세계적 열풍을 끌면서 몇 년 전부터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수많은 연습생 참가자들을 시청자 투표로 선발해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프로젝트 프로그램은 많은 호응을 얻었는데 갈수록 선의의 경쟁이 변질되고 투표 조작이라는 의혹까지 일어 수사 결과 실제 조작 정황이 드러나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주었다.


출연자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볼 때,  요즘 아이들은 어찌 그리 재능도 많은 데다 외모도 수려하고, 키까지 큰지 감탄하며 또 부러워하고 어떤 때는 탈락자들이 내 자식이라도 되는 냥 안타까워하며 몇 번  시청을 했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늘씬하고 훤칠한 참가자들을 보면서 나를 닮아 키가 작은 아들에게 드는 미안함이 자꾸 커져만 갔다.

 ‘뭐 뒤늦게 크는 아이도 있으니까 , 어느 집 아들은 군대 가서도 키가 컸다잖아’ 하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노력도 했었지만 성장기를 슬슬 벗어나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에 돌이 하나씩 쌓이는 기분이었다.


작은 키가 무색하게 축구부 활동은 제일 열성적이고, 보통 남자아이답지 않게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내 눈에는 어휴- 하고 고개를 젓게 만드는 옷들도 스스럼없이 입고 그야말로 똥폼 잡으며 돌아다니는 아들.

그런 아들을 지켜보면서

'겉으로는 저래도 속으로 엄마를 엄청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런 행동들이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허세인 건 아닐까' 하고 아들의 자존감을 의심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내 마음을 아들에게 들킬까 조심스러워 일부러 키에 대한 짓궂은 농담을 해가며 아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엄마인 내가 다른 아이들과 아들을 자꾸 비교해 가면서 미안해하다가 때론 억울해하다가 의기소침해지는 감정을 추스를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드라마 속 저 대사를 듣자  내 마음을 들킨 거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속이 후련했다.

누군가를 겨냥해 증오하고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불쑥 나와버린 푸념의 한마디.

"내 새끼보다 잘난 것들은 다 미워. 내 새끼 기죽을 거 아냐"


‘아. 그런 거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엄마들은 그럴 수 있구나’하며 안심했고,

아들보다 훤칠한 아이들을 보며 가졌었던 나의 편치 않던 마음에 당위성을 부여받는 거 같아

드라마 속 동훈 어머니가 무척 고마웠다.

내 마음을 공감받았다고 느껴지자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시선이 조금 편해지기도 했다.


30대에 처음 엄마가 되어 40대를 거치며 정신없이 아이들을 키워왔다.

아이들이 커가면 줄어들 줄 알았던 걱정은 반 백세의 나이로 접어든 지금도 색깔만 달라졌을 뿐 그 부피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후회와 자책의 무게가 더해졌다.

드라마 속 70-80대 노인인 동훈 어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이 걱정은 나이가 든다고 절대 줄어드는 것이 아님을 알겠다. 기왕 없어지는 걱정이 아니라면 자식 것까지 대신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인 거 같다.



이젠 대학생이 되어 외국에서 홀로 씩씩하게 지내고 있는 아이.

공항에서 개표구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원했다.

"너보다 키 크고 잘난 사람들에 대한 질투는 이 엄마가 다 할게.

 너는 사람의 크기는 체격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꼭 보여주며

사랑하는 이들과 늘 즐거운 인생을 살아라,  아가야"





Photo by Chromatograp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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