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반백 수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닐라 Mar 19. 2021

아빠 ! 잘 지내시죠?

두 번의 독대

서늘했다. 밖은 30도를 웃도는 열기가 깔려 있었지만 그 방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졌다.

6개월 전 폐암 선고를 받았고, 한 달 여 전부터는 중환실에서 투병 중이었던 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네 시간을 날아서 오는 길이었다.

첫 모습이 아파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오히려 부끄러울 듯 보여 걱정스러웠다.

코와 입과 가슴에 줄줄이 달린 튜브 관들 때문인지 환자복이 거의 다 풀어헤쳐져 있었지만

손끝으로 뭐 하나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그 기계들이 삐-삐- 오류 소리를 낼까 봐 무서워서

앞섶을 여며줄 엄두는 못 냈다.

드라마 흉내를 내듯 중얼중얼 얘기를 건네보기에는 머쓱했다.

궁금했다, 아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아니 무슨 꿈을 꾸고 있을지.

그 마음을 헤아려 보기에는 우린 너무 소원했던 거 같다.

어쩌면 나만 그랬던 걸까.

오늘처럼 이렇게 이름도 참 진부한 중환자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게 내 인생에서 겨우 두 번째인 당신과의 독대라니..



첫 번째는 언제였지?

20여 년 하고도 몇 년이나 더 오래전 가을..

막 신혼여행을 다녀와 하룻밤을 친정에서 자고, 시집으로 가는 날.

시댁과 합가 해서 같이 살 것도 아니면서 일종의 형식쯤이었을까.

친정아버지가 나를 친히 시집으로 데려다주는 민망한 절차를 왜 행했는지 그 이유는 지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쨌든 집안엔 시부모님,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친척들, 적인지 동지인지 가늠할 수 없던 손윗 동서들.

많은 눈들이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술상 앞에 둘러앉아 어색한 대화와 애매한 웃음들을 주고받다가

이제 친정아버지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같이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먼저 일어서며, 아버지와 단둘이 잠시 얘기라도 나누라고 방문을 닫고 나가주었다.

그렇지만 내겐 불필요한 친절이었다.

어색하고 형식적인 두고 보자식 배려 같아 불편했다

현실은 드라마 같지 않아서 그 방에서 구구절절한 대사는 없었고 경상도 스타일 부녀답게 투박한 몇 마디만

빨개진 눈으로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애닯아야만 하는 이 장면을 예상대로 방 밖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들키기는 싫었다.

그리하여 빨개진 내 눈이 추스러지기 전에 일어서 나가려는 아버지에게 좀 기다리라며 애꿎게 짜증을 내고 말았던 거 같다.

이것이 참 어이없는 그와 나의 첫 번째 독대였다.


두 번 다 아버지가 나를 남겨두고 떠나야 할 때 나는 그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물론 살아오면서 잠시 잠깐씩 그와 단둘이 있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사진을 찍어 걸어두듯, 머리가 아닌 눈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기억은 이 두 장면이다.

많은 시간들을 어설픈 짐작과 답답한 암묵으로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대했고, 거기서 생긴 골 같은 것은 그냥 그때그때 무마하며 보냈다.

시간이 길 줄 알았는데, 두 번의 독대 모두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고맙다는 감사도 못하고 끝이 났다.


두 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두 번째는 하고 싶던 말도 다 못하고 떠났셨을 거다.

아버지가 퇴장하고 난 두 번의 경우 모두, 나는 또 그 나름의 인생을 계속 살아오고 있다.

잊은 듯 바쁘게, 때론 잊혀진 듯 무료하게.

그래도 가끔씩 내 이름 부르는 그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우리 세 번째 독대할 때까지 잘 지내고 계세요!!"



Photo by Thomas Kinto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시시한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