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런 날이 있다.
시간이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부유하는 먼지처럼 빙글빙글 내 주위를 도는 거 같은 날.
유속 빠른 강물 같지 않고 노곤한 호수처럼 정체된 거 같은 날.
딱히 어디가 아픈 건 아닌데도 머리는 무겁고 뒷목도 당기고 무릎까지 끽끽거리고, 그러면서 마음이 한없이 작아지는 하루가 시작된다.
광고 문구처럼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 시간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강물 같던, 호수 같던 어쨌든 노를 저어야 배는 움직이기에 나도 하루를 운행하기 위해 삐걱대는 몸을 어기적어기적 움직여 본다.
사무엘 울만 선생님이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 한 것을 메모장에 적어가며 감탄했던 것처럼, 늙음 또한 몸이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스스로에게 일러두었건만 마음이 작아지는 날엔 그런 다짐은 온 데 간데 없이 몸도 굼뜨고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쭈굴 해진다.
아침마다 챙겨 먹던 영양제도 거추장스럽고, 거울을 보니 염색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삐죽 고개를 쳐들고 있는 흰머리들도 짜증스럽다.
아니, 흰머리 자라나는 속도로 내 키가 컸으면 슈퍼모델이 됐겠네, 쳇.
나는 어째 이런 날 어디 갈 데도 없는 것 인가.
단출하다 못해 희박해져 가는 인간관계에 슬쩍 불안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보겠다고 옷깃 스치러 다니기에는 그 피로함이 더 걱정스럽기도 하다.
동네 마트라도 가야겠다 싶어 나섰다가 아들 학교 같은 학부형이었던 ㅇㅇ엄마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났다.
거의 몇 년 만의 조우다.
애들도, 엄마도 동갑이라 절친하게 지냈었는데 애들이 크면서 소원해진 이후로 오랜만에 봐서인지 그 녀도 꽤 많이 변해있었다.
머리칼도 푸석해 보였고, 살집도 좀 붙은 거 같았다.
너무 쨍한 햇볕 아래에서 얼굴을 마주 대해서인지 눈가 주름은 더 적나라하게 티가 났다.
성격도 잘 맞았지만 예쁘장한 얼굴이 맘에 들어 더 쉽게 친해진 것도 있었는데 몇 년 새 세월이 묻어있는 동갑내기 그녀의 얼굴은 나에게 서글픔을 끼얹었다.
거울을 통해 인식하는 자신의 모습은 본래 모습보다 미화되어 보인다고 하니 내가 가진 나이의 절대값은 내가 보는 착각 속 거울의 얼굴이 아니고 동갑내기 그녀의 얼굴이겠구나 싶다.
그녀 또한 뒤돌아서 가는 길에 세월은 어쩔 수가 없구나 하며 내 얼굴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겠지.
직사광선이란 것은 참으로 무섭고도 잔인하게 노골적이구나 싶어 앞으로는 늘 태양을 등지고 서야겠다 싶은 실없는 생각을 했다.
전문성도, 생산성도 없는 것 같은 전업주부의 일상을 자책하며 시작한 책 읽기, 글쓰기도 이런 날엔 무용지물이다.
어제 읽던 책을 펼쳐 보지만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내 어린 시절도 어느새 아득하기만 한데 한번 가보지도 못할 나라들의 기원은 알아서 뭐하냐 싶고, 뉴스만 틀어도 세상은 여전히 전쟁 중인데 그 옛날 역사 속 전쟁의 의의를 짚어보는 게 내게 뭔 의미랴 싶어 읽던 세계사 책을 밀쳐 버린다.
글쓰기 수업 학우들의 글들은 또 왜 이리 휘황찬란하고 그들의 삶은 어찌 이리 풍성한지.
아마도 그들은 벌써 유명 작가님들인데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 것이 말로만 듣던 갱년기라는 것일까.
갱년기라는 말을 볼 때마다 고민스럽다. 저 '갱'이라는 글자는 ‘다시’라는 뜻인데 나는 무엇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오십이나 먹었지만 하늘의 명은 고사하고 아직 내 속도 모르는 갈팡질팡하는 날들이 많은데
왜 인생은 여기서 한 단락을 지으라고 하는지,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고 이름 붙이며 흔들리지도 말고, 뭐 좀 아는 사람이 되어보라고 채근하는 거 같아 당황스럽다.
인생을 위해 새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저녁 준비는 해야겠기에 냉장고 속 삼겹살을 찾아내 밥상을 차려 같이 먹는다.
맛있다고 밥 두 공기나 비우는 아들을 보니 헛헛했던 내 하루가 조금 의미를 갖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래서 나이 들수록 밥심이며, 당 충전이 중요하다 했구나.
부른 배로 앉아 아들에게 대답 없는 공허한 잔소리를 늘어놓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가고 있다.
아, 갱년기를 위해 필요한 것은 대단한 각오나 철저한 준비가 아니라 그저 이렇게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문득 든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찾아오고 매일매일이 활기차지 않더라도, 그래서 마음이 좀 삐끗 대더라도 이제까지 행해왔던 내 일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마음.
그것이 내가 ‘다시’ 챙겨야 할 것인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최영미 시인의 ‘행복론’이라는 시에 이런 말이 있다.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 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래 정말로 그렇게 믿어보자.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런 지난 십 년을 보상도 하고, 앞으로의 십 년에 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최면을 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