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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 Feb 27. 2021

나의 부캐는 빨간 망토 할머니

뜨개질로 배우는 삶

"빨간 망토의 할머니가 우리 집에 나타났다!”


내가 코바늘 뜨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작은아들은 이렇게 놀리곤 했다.

어느새 흰머리도 희끗하게 올라오고, 가끔씩 돋보기도 사용해가며 실, 바늘과 씨름하는 내 모습이 사실 동화 속 할머니 같은 모습이기도 했고, 여태껏 보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이 좀 생뚱맞았을 것도 같다.


요즘은 웬만한 건 다 유튜브를 통해 배울 수 있을 만큼 온라인 상엔 실력 있고 친절한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한 번 해 본 적도 없고, 옆에서 누가 하는 걸 본 적도 없던 뜨개질을 사슬 뜨기, 짧은 뜨기, 빼뜨기. 긴뜨기, 팝콘 뜨기니 하는 용어부터 배워가며 온라인 독학을 하려니 그리 속도가 붙지는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어떤 친구들은 ‘뭘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사서 쓰지’ 했다가 실망스러운 내 눈빛을 보고는 ‘아니, 뭐 그래도 실이 예쁘기는 하다’며 그들의 실언을 애써 수습하기도 했다.


뜨개질을 한다 하면 대부분 조용하고 차분하며 여성스러운 성격일 거라고 짐작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국내외 뜨개쟁이들을 보면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활달해서 뭔가 동네 반장 아줌마 스타일 같은 사람들도 있고, 우락부락한 팔뚝에 문신까지 한 터프가이 니터들도 있어서 뜨개질이 꼭 내성적인 여자들이 좋아하는 취미라고만 말할 수는 없으며, 뜨개 시장의 규모는 생각하는 것보다 그 스펙트럼이 훨씬 크고 다양하다고 한마디 하고 싶기도 했지만 초보 뜨개쟁이인 나는 그냥 입을 다문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뜨개질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자랑할 별 다른 뜨개 완성품도 없는 내가 뜨개질 예찬론자가 되기에는 아직도, 그리고 아마도 계속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도 훌쩍 자라 엄마 손길보다는 오히려 엄마 지갑으로 더 기쁨을 줄 수 있던 때, 원래도 별 티 안 나던 집안일이 더 무의미한 것 같고 그래서 내 존재의 가벼움이 심하게 느껴지던 때 뜨개질을 처음 만났다.

처음부터 뜨개질이 유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뜨개질은 할머니들의 소일거리라는 인상이 있어서일까

뜨개질만 하는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 꼭 유튜브 강의나 오디오북 같은 것을 들으면서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뜨개질은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알록달록하고, 폭신폭신하고 어떤 것은 또 까슬까슬한 각양각색의 실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예뻐서 괜히 내 손으로 흠 내지 말고 그냥 가지고만 있고 싶기도 했으며, 바늘 또한 그 날렵한 선이 미인의 콧망울처럼 오뚝해서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나 뜨개질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뜨개질하면서 내가 행하는 실수들 때문이었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처음 서너 단은 삐뚤빼뚤, 들쑥날쑥해서 그 모양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내가 사진에 나와 있는 저 작품을 뜨고 있는지 진짜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 불투명함을 견뎌내면 서서히 모양이 잡히기 시작한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이것은 정녕 뜨개질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어떤 복잡하고 화려한 작품이라도 결국 첫 단은 가장 쉽고 간단한, 그래서 중요한 기본 뜨기로 시작되는 것이며, 그 기본 위에서 실을 몇 번 바늘에 감고, 어느 구멍으로 찔러 넣었다 빼고 하는 등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다채로워 지는 것이 인생과 참 비숫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 불안정한 한코 한코가 모여 오색 빛깔 담요가 되기도 하고, 햇빛 가려주는 모자가 되기도 하고, 나를 위한 가방도 된다.


나의 하루하루는 별거 아니고 지루하지만 이 하루의 반복과 노동들이 모여 결국 내 인생이 되는구나! 하고 마음을 바꾸자 코바늘 쥔 손뿐 아니라 늘어지는 내 일상에도 힘이 들어갔다. 

책도 좀 더 읽게 되고 이것저것 소소한 계획들도 더 세웠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뜨개 코를 빠트리고, 실을 쥐는 손의 힘 조절을 잘못하고, 색상 배합이 좀 우스꽝스럽기도 한 시행착오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뜨개실의 좋은 점은 질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몇 번이나 떴다 풀었다 해도 실뭉치는 똑같은 양 그대로 내 손에 남아있다.

그것이 내게는 꽤 안심이 되었다.

물론 시간과 공을 들여 떠 놓은 뜨개를 한 두코 잘못 떴다고 내 손으로 주르륵 풀어 버리려니 한숨이 절로 날만큼 아쉽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음엔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나만의 요령을 터득해 내기도 하고, 한번 해봤던 것이니 속도도 빨라진다.

결국 나만 지치지 않으면 비록 좀 늦을지언정 다시 또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슬슬 눈 침침해지는 나이에 우연찮게 시작한 취미, 뜨개질에서 나는 모자 뜨고, 담요 뜨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같은 식상한 인생 교훈이 내 손 끝에서 검증되는 것을 봤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불안할 때, 우울할 때, 머리가 복잡할 때 안정제를 찾듯 뜨개바늘을 찾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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