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도 은행은 변함이 없을까요? no, 은행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2019년 5월 3주차 고객님의 재무 보고서가 도착했습니다.
직장인 8년 차 김자산 씨는 매주 일요일 밤에 '재무 보고서'를 받아봅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마이너스 대출만 늘어나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김 씨. 돈이 언제 어디로 줄줄 새는지 알지 못해 답답하던 차에 A 인터넷전문은행에서 한다는 이 서비스를 받아보기 시작한 겁니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목표 설정' 기능입니다. 2년간 1000만 원의 마이너스 대출을 없애겠다는 계획을 세우면, 월급이 들어오는 즉시 마이너스 통장으로 보내야 하는 돈과 고정 생활비, 용돈이 나눠 표시됩니다. 통장에 들어오긴 했지만 사실상 '내 돈'이 아닌 돈을 구분해주는 겁니다.
커피를 마시면 이달에 커피값을 얼마나 내고 있는지 알려주고, 남은 용돈이 얼마인지도 알려줍니다. 용돈 쓰는 속도가 빠를 때는 경고를 하기도 합니다. 본인의 신용카드 중에서 커피숍에 맞게 할인받을 수 있는 카드도 알려주고요. 이런 정보들을 모아 분석한 것이 바로 '재무 보고서'입니다. 인건비를 들이지 않고 자동화한 시스템으로 하니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김 씨는 또 예금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매일 A 은행의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수를 확인합니다. '좋아요'가 많아지면 예금 금리가 오르는데, 조금 더 기다리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하네요.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이야기는 사실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등장한 서비스는 해외 인터넷은행들의 사례들을 참고로 재구성한 겁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선 실제 이와 같은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은 미래에 안 되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지난달 우리나라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출범했습니다. 일단 앞에 소개한 시나리오와 같은 '획기적인' 서비스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게 대부분의 분석입니다.
먼저 케이뱅크가 내놓은 서비스를 대략 살펴보겠습니다. 케이뱅크는 기존 은행보다 예금 금리는 높이고 대출 금리는 낮추는 것으로 고객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정기예금의 경우 시중은행 금리보다 0.5%가량 높은 연 2%의 금리를 주고, 금리를 현금 대신 음악감상 이용권으로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대출 상품 역시 시중은행 대출 평균 금리인 3% 중반보다 낮은 2% 중반의 상품을 내놨습니다.
국민 메신저라고 불리는 카카오톡을 앞세운 '카카오뱅크'도 이르면 오는 6월 말에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카카오뱅크가 예고한 서비스도 케이뱅크와 유사한 수준입니다. 영업 개시 시점에는 가격 경쟁력과 편의성을 앞세운 기본적인 예·적금 및 대출 상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여기에 더해 두 인터넷은행의 특징은 24시간 내내 메신저나 전화 상담 등을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인근 편의점 ATM을 통해 돈을 넣고 뺄 수 있도록 한 점 등이 다른 시중 은행들과의 차이점입니다. 기존 은행과 다르게 '빅데이터'를 통해 더 세밀한 신용등급 심사를 하겠다는 것도 차별점입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바일로 비교적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가격 경쟁력도 있으니 반응이 좋습니다. 케이뱅크는 출범 24일 차인 지난달 26일 기준으로 총 24만 명의 고객을 끌어모았다고 합니다. 서비스 개시 첫날과 둘째 날에 3만 명 이상씩 가입하다가 지금은 하루 6천 명 안팎의 고객 유입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미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층의 유입이 눈에 띕니다.
일단 가격 경쟁력을 통해 고객을 끌어모은 뒤 서비스 범위를 점차 확대한다는 게 두 인터넷은행의 구상입니다. 그러면 '미래' 인터넷은행은 어떻게 변할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카카오뱅크가 내놓은 '오픈플랫폼' 구상입니다. 카카오뱅크는 여러 핀테크 기업들을 모은 오픈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내놨습니다. 자산운용과 투자자문, 대출 등에 각각 특화한 벤처 기업들과 파트너로 함께 영업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은행은 이런 벤처 군단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겁니다.
인터넷 은행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자 은행들도 비대면 서비스를 강화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경우 카카오뱅크가 내놓은 '오픈플랫폼' 같은 형태는 만들기 어려울 가능성이 큽니다. 시중 은행들은 대부분 서비스를 이미 하고 있고, 관련 내부 인력들도 많으니까요.
인터넷은행과 시중은행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넷은행은 ICT기업의 '작은 조직'으로 '빠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수의 벤처기업들에 잠재한 역량을 감안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반면 기존 시중 은행들은 거대해진 조직 규모 탓에 변화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내놓았거나 혹은 내놓기로 한 서비스는 아직 '선진국'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격 경쟁력 외에는 시중은행과 크게 다른 것도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두 신생 인터넷은행이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은행'이 소비자들에게 줄 수많은 혜택을 기대해봅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핀테크 서비스 소비자 체험기] 어니스트펀드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의 살림상이는 좀 나아질까? ①
2017년 자산관리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금융제도 3가지
Written by 나원식
경제, 금융이라는 영역이 낯설기만 했던 사회과학도였습니다. 졸업 뒤 여러 언론사에 입사 원서를 넣다 보니 '어쩌다 경제지 기자'가 됐습니다. 경제지 이데일리에서 2년여 금융부 기자를 하다가, 지난해 온라인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워치로 옮겨 어느새 4년째 금융 영역만 취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많습니다. 기자는 전문가에게 질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과 독자 여러분이 모르는 걸 꼼꼼하게 질문해서 알기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질문 거리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주세요. setisoul@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