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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크샐러드 Jan 08. 2017

오사카에서 시작된미래를 사고파는 시장?

파생상품, 그것의 역사가 궁금하다!

"파생상품"이란 무엇일까?


파생상품 시장이란, 미래의 일정 시점 또는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시장을 의미한다. 이러한 파생상품 시장은 때로는 과도한 투기거래와 대규모 손실 등을 초래하여 금융시스템 자체에 커다란 위험요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내의 경우 KIKO 사태 등이 바로 파생상품으로 인해 일어났다.


* KIKO 사태 : KIKO는 환율 변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파생상품. 일정 범위 내에서 환율이 변동할 경우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지만, 환율이 갑자기 급등해 일정 범위가 넘으면 큰 손실을 보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 계약을 맺었던 700개 이상의 기업들이 큰 손해를 본 사건.


하지만 파생상품시장의 원래 취지는 주가, 환율, 곡물 등의 가격변동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실물경제를 지원하고 금융시장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함이었다. 

대표적인 파생금융상품인 선물(future)거래와 선도(forward)거래 등의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미래, 앞날" 등을 의미하는 future, forward라는 단어를 사용해 각각 ‘미래에 대한 계약’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파생상품의 원리는 간단하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현재 쌀 한 가마 가격이 10만원인데, 앞으로 6개월 뒤에는 쌀 가격이 15만원으로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상인은 6개월 뒤에 쌀 한 가마를 11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계약을 누군가와 체결한다. 6개월 뒤에 쌀 가격이 14만원으로 4만원 올라도 이 상인은 자신이 구매한 선물 상품으로 인해 쌀을 시세보다 3만원 싼 11만원에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선물거래나 선도거래와 같은 ‘미래에 대한 계약’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 상황에 대한 계약은 상품 가격이 하락해 유발할 수 있는 손해를 막는 데 유용하다. 예를 들어 쌀 한 가마를 11만원에 6개월 뒤에 판매하는 내용의 선물계약을 체결할 경우, 6개월 뒤 한 가마당 가격이 6만원으로 하락했다 하더라도 시세보다 5만원 비싼 11만원에 판매할 수 있어 가격 하락에 대한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파생상품은 농산물 가격이 변함으로 인해 입게 될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등장했다. 19세기 미국 시카고는 중서부 지역에서 생산한 옥수수, 콩, 밀 등이 모여 거래되는 중심지였다. 수확기가 되면 한꺼번에 많은 곡물들이 시카고지역으로 몰려들게 되는데, 시카고 내부에는 이를 충분히 수용할 만한 창고가 없었다. 겨울철에는 운하가 얼어 아예 운송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운송되지 못한 곡물들은 헐값에 거래되지만, 운송만 되면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가격의 극심한 변동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 1948년 미국 시카고에서 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 CBOT)가 설립됐다. 운송 여부와 상관없이 곡물을 안정적으로 거래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셈이다. 















세계 최초의 선물거래시장은 시카고가 아니라 오사카였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시카고 상품거래소를 최초의 선물거래소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파생상품이란 개념을 통해서 가격 변화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은 17세기 일본 에도 시대에 오사카 지역 상인들이 최초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을 통일하고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거점으로 삼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고민은 지방 영주인 다이묘(大名)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이들이 독립해 군벌이 되면 또다시 전국시대의 혼란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을 통일한 이후 각 지역 다이묘들의 충성 서약을 받아 낸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러한 충성 서약만을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들이 언제든 모반을 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이묘들의 경제권을 박탈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 방법으로 주목받은 것이 바로 "쌀"이었다. 

당시 은 일종의 화폐처럼 쓰였다. 다이묘의 세력은 대개 영지에서 쌀이 몇 만석(가마) 생산되느냐로 측정되었으며, 다이묘가 쌀을 몇 만 석 생산하느냐는 해당 다이묘의 힘의 척도로 여겨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인 쌀을 도쿄와 오사카에 일단 모았다가 다시 분배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통제력을 갖고자 했던 것이다. 각 지방 성주들이 세금으로 거둔 쌀은 오사카 지역의 나카노지마에 있는 각 번의 창고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쌀이 모여들다보니 다양한 관리 방식을 모색하게 되었다. 선물거래도 이 과정에서 채택됐다. 당시 일본은 격년 주기로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쌀 공급이 일정하지 않아 상인들이 많은 혼란을 겪게 되었다. 결국 오사카 상인들은 미리 돈을 주고 필요한 쌀의 수요를 맞추기 시작했다. 오사카 상인들은 쌀이 갑자기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10석 단위로 현금과 같은 선납 수표를 주기 시작했다. 선납수표를 통한 거래 방식은 돈의 액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쌀을 언제, 어느 때라도 내주도록 되어 있었다. 즉, 선물 거래를 시작한 것이다. 쌀을 파는 입장에서는미리 일정한 값을 받고 쌀을 팔 수 있었기에 이러한 거래 방식을 선호하였고, 상인들 역시 언제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쌀을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거래를 좋아했다. 

이러한 거래 방식을 선호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쌀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비용들 때문이었다. 각 지역의 다이묘들은 자신들이 거둔 세금인 쌀을 오사카로 올려 보내는 과정에서 운반비용, 보관비용 등 여러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따라서 오사카로 보낸 쌀이 헐값에 팔리면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선납 수표를 통한 선물 거래 방식이 도입되면서 다이묘들은 이러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쌀의 선납수표는 쌀값이 오르내림에 상관없이 항상 예정된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방의 성주들은 바쿠후로부터 재산 몰수 등의 명을 받게 되거나 파산을 하더라도 재산 회수 품목에서 선납 수표는 제외되었기 때문에 지방 성주들의 선물거래의 참여도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쌀의 선납수표가 활발히 거래되면서 쌀의 유통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화폐로서의 기능도 갖게 되어 당시로서는 유용한 자산 보유 형태로 부각됐다. 쌀을 취급하지 않는 상인들도 이러한 선납수표를 빈번히 사고 팔게 됐다. 결국 오사카에는 선납 수표만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전문 환전상인까지 등장했다. 즉 오사카는 세계 최초의 선물거래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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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정호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 저자이자 KDI 전문연구원. “배워서 남 주자!”라는 자신의 신조에 따라 EBS,  연합뉴스, KBS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 경제 강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현대, SK, 롯데 등 주요  기업들에 출강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나누고 현장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보다 쉽게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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