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산업에 부는 변화의 바람!
오늘날 금융 산업에서는 물리학이나 전기공학 못지않게 수학적 방법론이 널리 쓰인다. 각종 경제·금융 데이터를 통계학을 이용해 가공하고, 여기에 근거해서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한다. 또 정교한 수학적 방법론을 이용해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분야의 응용학문을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이라고 부르며, 금융공학 전문가를 ‘퀀트(quant)’라 부른다. 보다 정확히 퀀트의 의미는 정량적 금융이라는 뜻의 신조어로 수학적 공식을 활용하거나 물리학에서 차용한 모델을 활용해 증권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려고 시도하는 금융전문가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퀀트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수리적인 역량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그리고 금융 관련 지식이 다 같이 요구된다. 이러한 이유로 퀀트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 중에는 경제학 내지 금융을 전공한 사람 못지않게 물리학이나 수학,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 분야에서 고도의 수리적인 역량을 요구하는 이유는 금융 환경의 변화가 특정 금융상품 내지 지표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는지를 정확히 계측하기 위함이다. 또한 경제 상황의 변화 속에서 위험 부담을 가장 낮추기 위해서는 어떤 투자 대상에 얼마만큼 투자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계측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리학자나 수학자였던 이들이 퀀트가 되어서도 수학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과 같은 기초학문 분야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보다 엄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당 문제에 대해 반복해서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수학자들의 경우에는 증명 하나를 규명하는 데 적게는 1년 많게는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여하기도 한다. 일례로 300년 간 그 누구도 풀지 못한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는 데, 영국 옥스퍼드 대학 앤드류 와일즈 교수는 무려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하였다. 수학자가 되고 나서 7년간 자신의 연구실에서 페르마의 정리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다, 1993년 8월 케임브리지의 학회에서 증명을 발표하였지만, 증명 과정에 오류가 발견되어 다시 1년을 투자해 1994년 9월 완성된 증명을 학회에 발표한 바 있다.
수학의 세계에서는 학문성 성과를 위해 이처럼 장기간 시간을 투여할 수 있지만, 급변하는 금융시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특정 경제 상황 내지 환경에 적합한 적정 매수가 내지 투자 포트폴리오를 도출하기 위해 긴 시간을 투여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 상황은 또 다른 상황으로 다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퀀트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리적인 분석 능력뿐만 아니라 이러한 내용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수리적으로 분석한 내용을 순간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역량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선 퀀트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수리적인 능력과 컴퓨터 프로그래밍보다도 순간적인 판단력이 더욱 중요하다. 자칫 수학과 컴퓨터를 활용해서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에 퀀트의 자의적인 판단은 필요치 않다고 오해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수리적인 접근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어느 정도 투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또한 요구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단 1%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여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적시성이 없는 결과는 무의미하다. 다소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제때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결국 퀀트는 고도의 수리적 능력과 빠른 정보처리능력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고도의 능력을 겸비해야 하는 퀀트는 금융업계에서 가장 비싼 연봉을 받는 직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금융전문지인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스 알파에 따르면, 2016년 헤지펀드메니저의 연봉 순위에서 퀀트형 펀드매니저가 상위권을 휩쓸었다고 한다.
각각 17억달러의 연봉을 받아 연봉 순위 공동 1위에 해당하는 시타델 설립자 케네스 그리핀과 르네상스테크놀로지스 설립자 제임스 시몬스 모두 전형적인 퀀트이다. 하버드대 2학년 재학중에 기숙사에서 매매를 시작한 그리핀은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운용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끌어모았고, 수학 교수 출신의 시몬스도 벤치마크 대비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등 퀀트의 대가로 꼽힌다.
퀀트의 연봉에 대해 정확히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업계에서는 대리급 퀀트의 경우 인센티브를 포함해 1억 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그 위 직급은 2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30대 초반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결코 적지 않은 연봉임이 틀림없다.
오늘날 금융계에서 수학적 방법론이 각광받게 된 계기가 구조적 실업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구조적 실업은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사양 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현상이다. 음악시장이 MP3 위주로 바뀌면서 LP나 CD를 제작하던 업체가 차츰 문을 닫고, LP와 CD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LP와 CD를 만들고 판매하던 사람들이 MP3 음원 관리업체에서 새로 일자리를 얻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금융 분야에서 수학의 도입은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시작됐다.20세기 중반 미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을 육성하고 이들에게 다양한 연구 과제를 맡겨왔다. 주로 군사적인 이유에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정부에 고용된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군수물자 관리·암호 해독·레이더와 원자폭탄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참여해 성과를 냈다.
미국 정부는 종전 이후에도 군사 및 우주 기술 개발을 위해 거액의 자금을 투입해 연구를 수행했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하면서 ‘스푸트니크 쇼크’라 일컬어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미국 정부는 예산 지원액을 늘렸다. 이 과정에서 대학과 연구소들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을 위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호시절은 끝이 났다. 1973년 군대를 철수할 때까지 10여년간 계속된 북베트남과의 전쟁으로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게다가 오일 쇼크 이후 미국 경제도 침체의 늪에 빠졌다. 소련과의 데탕트(화해) 분위기로 냉전 분위기까지 완화되자 미국 정부는 대학과 연구소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출을 줄이게 된다. 더 이상 대규모로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1950~1960년대 대학을 다니고 박사학위를 딴 많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을 받아준 곳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월스트리트 즉, 금융권이다.
1973년 오일 쇼크로 인해 석유 가격은 폭등하고 금리는 치솟았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으로 금값이 금세 온스당 8백달러를 넘었다. 금융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장 안정적인 금융 자산으로 간주되오던 채권이 하루아침에 위험천만한 금융자산으로 전락할 정도였다. 금리와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일의 중요성이 커지게 됐다. 또 위험 관리 및 분산이 새롭게 떠오르는 화두가 됐다.
사실 세계 금융시장은 오일쇼크 이전까지는 급변하는 변동성에 대비할 필요가 없었다. 먼저 환율만 하더라도 오일쇼크 이전까지는 전세계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무역이나 환거래 시 환율 변화에 대한 위험은 고려 대상이 아니였다. 하지만 오일쇼크 이후 각국은 자국 경제 여건에 따라 변동환율제를 비롯해서 다양한 환율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무역 내지 금융거래로 인해 실시간 변화하는 환율 변화를 측정하고 심지어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기 시작했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시장 부분의 변동성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국제석유시장은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엑슨, 모빌, 셸, BP, 걸프, 텍사코, 소칼등 미국과 유럽의 7대 메이저에 의해 장악됐다. 이러한 과점 상태가 국제석유시장의 혁신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원유 수급의 안정성을 가져다 주었고, 그로 인해 유가를 중심으로 한 많은 실물 원자재 시장도 완만한 흐름 속에서 변화하였다.
하지만 중동 산유국들이 자국 유전을 국유화하면서 원유 수급 상황에 엮인 경제적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오일 쇼크 이후 많은 금융기관들은 급변하는 원자재 시장의 변화를 확인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금융계의 이러한 과제에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적합한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물리학은 시간에 따라 사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방식, 즉 동학 내지 역학에 대한 학문이다. 이러한 물리학적 방법론은 그대로 금융시장에 적용돼 주가의 움직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예측하는 데 쓰였다.
수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확률론과 편미분방정식을 기반으로 상품개발과 위험관리에 크게 기여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금융 상품들이 얼마나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 또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 있는지 계산해냈다.
정교한 금융 기법이 절실했던 금융 회사들의 필요와, 다양한 물리학·수학 기술을 갖춘 이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게 된 시대 상황이 맞물리면서 금융 공학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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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으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을 KAIST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였다. 세종시 지역산업발전위원, 양성평등위원,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KBS1 〈아침마당〉, KBS2 〈여유만만〉, tvN 〈곽승준의 쿨까당>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경제 강의를 전개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1, 2』, 『경제학 입다/먹다/짓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