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밥심

나는 알코올중독자의 아내였다

by 스칼렛

오래전 신혼여행을 온 막냇동생이 누추하지만 누나집이라고 들렀다. 동생도 이제는 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업어 키운 동생이라 남다른 애정이 있다. 저녁에 닭볶음탕을 해줬더니 동생이 말했다.

"누나. 닭볶음탕만 해도 밥은 안 굶고 살겠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했는가."

전라도 시골출신 여자들이 대게 그렇듯 나는 나름 손맛이 있는 편이었다.


성현아빠는 육개장, 멸치다시 우려낸 김치국, 콩나무 무침을 좋아했다.

성현이는 백김치, 소고기 뭇국, 오징어볶음을

수현이는 제육볶음, 두루치기, 된장찌개를

용하는 고등어 등에 칼집을 낸 후 굵은 소금을 뿌려 오븐에 굽고 김치치개에 두부를 야들야들 익혀주면 좋아했다.

난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비록 아빠가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있어도 엄마가 일때문에 늦게 와도 집에 오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주말엔 아이들이 식탁에서 공부를 할 동안 나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잡채를 하면 아이들은 한 사람씩 입을 벌리고 서있었다. 나는 돌돌 말아 아이들 입속에 쏙 넣어주었다.

그릇도 계절마다 바꿔 주었고 음식도 가능하면 예쁘게 담아주려 애썼다.

성현이 좋아하는 동치미와 백김치
수현이 좋아하는 부추 장떡
용하가 벚꽃가지를 꺽어와서 해달라던 계란말이

아이들이 문제집을 푸는 동안 묵은지를 씻어서 들기름에 들들 볶아 갓 구운 김에 싸주었다.


김연아가 아사다마오와 겨룰땐 김연아를 응원하기 위한 준비로 즉석 김밥을 쌌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부족한 점이 있을 거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남들보다 옷은 잘 못 입혀도,남들이 갖고 있는 태블릿은 못사줘도 음식만큼은 김 나는 음식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 아이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어느 날 육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성현이 내려왔다.

"엄마. 저는 김밥은 자기들 엄마만의 맛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사과도 맛도 그래요.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 맛이랑 다른 사람이 깎아주는 맛이 다르더라고요."

"네가 좀 입맛이 까다롭냐. 그런데 사과맛은 왜 다를까?"


출장 갈 때는 김치냉장고에 오겹살을 사다 두었다. 비록 엄마가 없어도 배는 고프지 않도록 밥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반찬도 같이 만들었다. 이렇게 동동그리며 최선을 다했어도 그들 나름대로 상처와 결핍이 있다는 걸 안 것은 나중의 일이다. 내가 알콜중독자의 아내였듯 내 딸들은 알콜중독자의 딸이었고 아들은 알콜중독자의 아들이었기에. 그 어떤 서러움도 엄마가 압력솥에서 김 이 막 빠진 뜨거운 밥을 따뜻하게 데운 밥그릇에 차려준 기억으로 극복해나가길 바랬다.


어느날 성현이가 말했다.

"엄마. 다른 집에서는 식혜나 수정과를 집에서 해 먹지 않나 봐요. 제가 엄마가 해준 식혜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그런 걸 정말로 엄마가 해주냐고 물어요."


나는 비가 오는 날엔 수제비를 만들고 눈이 오는 날에는 단팥죽을 쒔다. 여름엔 식혜를 만들고 겨울엔 수정과를 만들었다. 내가 다른 엄마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뿐이었다. 나는 성장기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애쓰고 또 애썼다. 파김치가 되어 누워 있는 엄마를 벌떡 일으키게 하는 말은 단 한마디면 족했다.

"엄마. 배고파요."

나는 배고프다는 말을 참지 못했다. 그 말에는 편두통으로 머리가 쪼개져도 남편이 사고를 쳐서 눈이 퉁퉁부은 얼굴로 자서 위.아래 눈꺼풀이 달라붙어도 일어나 밥을 했다. 압력솥에서 김이 빠지는 동안 나는 찌개를 긇이고 식탁에 밥상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