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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Nov 12. 2021

3. 거문돌이

이어도 설화 동화 _여돗할망 이야기

탐라총관부가 들어서자 제주에는 원나라의 목마장이 생겨났어요.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은 사위인 고려왕 충렬왕에게 말했어요.

“우리 원나라는 반드시 일본을 정벌할 것이다. 탐라는 예부터 바닷길을 이용해 동남아시아는 물론 남송, 일본과도 교역했다고 들었다. 탐라는 일본 정벌을 위해 꼭 필요한 땅이다.”

원나라는 제주에 160필의 말을 보내고 말들을 관리할 목호들도 보냈어요. 제주 지배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하여 제주를 고려와 다른 국가로 인정하여 탐라라는 이름을 부활시켰어요.

 “그간 우리 몽골은 말들에게 먹일 풀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야만 했지. 그런데 탐라는 한겨울인데도 푸른 목초들이 드넓은 들판에 맘껏 자라고 있군. 들판 곳곳에 연못까지 있으니 말들이 마실 물을 구하기도 어렵지 않아. 말들을 키우기에 이만한 땅이 없어.”

목호들은 제주의 따뜻한 날씨에 감탄했어요.     

목호들은 제주에서 그들 방식대로 말을 기르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정작 말을 돌보는 사람은 제주의 말테우리였어요. 말테우리들은 말들의 먹이를 찾아 잘 자란 목초와 마실 물이 있는 곳으로 말들을 몰고 다녔어요. 여러 마리의 말들을 몰고 가다 보면 목이 마른 말들은 물을 찾아 달아났어요. 넓은 초원을 만나면 말들은 거침없이 내달리기도 했지요. 비가 오는 날에는 한라산 허리에 거센 바람이 불었어요. 말테우리들은 바람을 피해 돌담 아래 몸을 웅크린 채 말들이 달아날까 노심초사해야 했어요.        



       원나라에서 온 목호들은 제주 사람들이 힘들여 키운 말을 배에 싣고 떠났어요. 좋은 말을 원나라에 진상하고 큰 벼슬을 얻어 중국으로 돌아가는 목호들이 생겨났어요.

어느 날 목호 석다시만이 고동지를 찾아왔어요. 석다시만은 다른 목호들과는 달리 성품이 고약하지 않고 이유 없이 횡포를 부리는 일도 없었어요. 석다시만은 중국말을 할 줄 아는 고동지와 벗처럼 지냈어요.

“석다시만, 여기까지 웬일이요?”

“고동지! 지난가을 당신이 키운 말을 황제에게 진상하고 돌아왔소. 그 말이 황제의 마음에 쏙 들었다오. 덕분에 나도 큰 벼슬을 얻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소.”

“그게 정말이오? 참 잘했소.”

“모두 고동지 덕분이오.”

“당신은 다른 목호들과 달리 성품이 온화하여 벗처럼 지내왔는데 이제 헤어져야 한다니 섭섭하기 그지없구려.”

 “낯선 이곳 탐라에서 고동지 당신을 만난 것은 내게 큰 힘이 되었소.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 말을 선물로 주고 가려 하오.”

“아니, 이 말은 당신이 가장 아끼는 말이 아니오? 어찌 이리 귀한 말을 내게 준단 말이오?”

“당신은 정말 훌륭한 목동이오. 당신처럼 진심으로 말을 사랑하고 잘 보살피는 사람은 보지 못했소.”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런데 이 귀한 말을 중국으로 데려가지 않고 왜 나에게 주고 가려 하오?”

“중국으로 가는 뱃길은 너무나 험하다오. 내가 국마진상(國馬進上)을 떠날 때는 배에 말을 싣고 이곳 조천포에서 전라도 해남 관두량으로 갔다오. 해남에 도착해서는 육로로 국경을 넘었다오. 우리 몽골인은 푸른 초원에서만 살아서 뱃길을 알 턱이 없지 않소. 더구나 배에 말을 싣고 가는 일은 탐라인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소. 고려에 국마 진상을 다녀온 탐라인을 여러 명 데리고 간 이유도 그 때문이라오.”

“그건 그렇지요. 우리 탐라인들은 뱃길을 훤히 꿰뚫고 있지.”

오.”

석다시만은 국마 진상하러 가면서 겪었던 일을 고동지에게 들려주었어요.

“조천포에서 출발한 배가 해남까지 가는 동안에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오.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이 일 때는 말들이 놀라서 사정없이 널뛰고 난리가 나오. 그러면 사람들은 말부터 바다에 빠트린다고 하더군. 용왕님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말이오. 다행히 풍랑이 가라앉아 말들을 태운 배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지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오.”

석다시만이 중국으로 돌아갈 때는 바닷길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어요. 목숨처럼 아끼는 말을 험난한 바다에서 잃게 될까 봐 걱정이었던 것이죠.

“원나라에서 온 목호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큰일이오. 탐라사람들 눈치를 살피던 목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셈이오. 그런데 당신은 나에 대한 대접이 남달랐소. 나를 친구처럼 여겨주어 고마웠소.”

 “제주에서는 농사짓는 데 말이 큰 힘이 되지 않소? 이 말을 주고 갈 테니 살림을 늘려 장가드는데 밑천이 되길 바라오.”

고동지는 좋은 말을 주고 간 석다시만이 몹시 고마웠어요.  

           

몽골인 목호가 고동지에게 선물로 주고 간 말은 털이 검은 흑마였어요. 갈기가 바람에 휘날리면 기품이 좔좔 흘렀어요. 고동지는 거문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틈나는 대로 거문돌이의 갈기를 쓸어 주고 등을 긁어주었어요. 비가 오는 날에는 말발굽에 묻은 흙을 씻어주고 편자를 갈아주었어요. 고동지와 거문돌이는 한 몸이 되어 움직였어요. 이웃 사람의 밭을 갈아주기도 하고 씨를 뿌리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흙을 밟아 주었어요. 

“고동지야, 우리 집 방아를 찧어다오.”

선흘곶에 사는 부 서방이 메밀 한 자루를 들고 와서 부탁했어요.

“고동지야, 우리 집 무밭을 좀 갈아다오.”

진드르에 사는 양 씨 아주머니는 물을 한 허벅 길어다 물팡에 올려놓았어요.

“고동지야, 우리 집 조 밧을 밟아다오.”

송당리 진 서방이 좁쌀 한 되를 들고 왔어요.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도와주는 고동지와 거문돌이를 극진히 대접했어요. 하루 일을 마치고 거문돌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노을로 물든 하늘이 드넓게 펼쳐졌어요.          

“고동지야, 우리 집 보리 방아를 찧어다오.”

  

 “고동지야, 우리 집 무밭을 좀 갈아다오.”

 

“고동지야, 우리 집 조 밧을 밟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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