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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Nov 12. 2021

2. 해상왕국 탐라의 몰락

이어도 설화 동화 _여돗할망 이야기

제주가 탐라국이던 때에는 사람들은 해상무역을 하며 평화롭게 살았어요. 탐라는 바다 한가운데 있어 동아시아에 있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로 가려면 탐라를 거쳐 탐라의 바닷길을 이용해야만 했어요. 탐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과도 활발한 왕래를 하였지요.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도 탐라를 거점으로 하는 뱃길을 이용했다고 해요. 

탐라 사람들은 항해술이 뛰어났어요. 별자리를 보고 항로를 가늠해야 했기에 사람들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숭배했어요. 특히 밤하늘에서 늘 제자리를 지는 북극성을 숭배했어요. 북극성은 항해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도 수많은 별자리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자연환경이 척박한 환경에서 탐라 사람들은 싸우기보다는 서로 협동하며 지냈어요. 물을 저장할 수 없는 돌 땅에서 논농사는 지을 수가 없었어요. 밭농사도 바람이 세게 불면 씨앗이 날아가 버려 배고픔을 달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탐라 사람들은 일찍이 바닷길을 개척하여 다른 나라와 교역을 했어요. 척박한 자연을 탓하지 않고 자연지리를 이용하여 살아가는 법을 찾아냈던 것이죠. 탐라 사람들은 수눌음을 하여 필요한 물자를 공동으로 생산하고, 교역을 통해 부족한 물품을 조달했어요. 경제공동체를 이루어 불리한 자연조건을 이겨냈어요.

탐라 왕은 강압적으로 백성을 지배하지 않았어요. 왕은 백성들이 경제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풍랑을 만나 난파되거나 태풍과 가뭄으로 흉년이 들 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였어요. 그래서 탐라에서는 지도력이 뛰어나고 남을 도와주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왕이 되었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고(高). 양(梁). 부(夫), 세 부족에서 돌아가면서 왕의 자리에 앉게 되었어요. 능력에 관계없이 왕위를 맡게 되자 문제가 생겨났어요. 지도자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왕이 되자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어요. 해상왕국 탐라는 몰락하여 고려에 복속되었고, 곧 원의 지배를 받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어요.     

금방 끝날 것 같던 원나라의 지배가 계속되고 있었어요. 초원의 작은 부족에서 일어난 몽골군은 아시아와 유럽을 정복하더니 말머리를 동쪽 나라 고려로 돌렸어요. 말을 타고 전쟁터를 누비는 그들의 군사력은 막강했어요.

“몽골군은 고려 사람들을 보는 족족 잡아서 먹는다는군.”

“아이고, 어디 그뿐인가? 그놈들은 사람 몸에서 기름을 짜내어 불을 붙여 공격한다는군.”

고려 백성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어요. 고려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바다에 약한 몽골군의 침략을 막아냈어요. 하지만 내륙에 있는 백성들의 삶은 계속되는 침략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어요. 고려왕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와 화친을 맺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에 반발한 삼별초가 진도를 거쳐 탐라로 근거지를 옮겨왔어요. 

평화롭던 탐라국에 삼별초가 들어오자 탐라 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어요. 삼별초는 고려 관군이 바다로 쳐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제주 섬 해안가에 환해장성을 쌓았어요. 3백 리가 넘는 해안선을 돌로 둘러쌓는데 탐라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되었어요.

 그러잖아도 식량이 부족한 제주 섬에 수천 명이 넘는 삼별초 군이 들어오자 백성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어요. 탐라 사람들에게는 삼별초 군도 여몽 연합군도 그저 이방인들이었어요. 평화롭던 섬을 점령한 육지 것들 때문에 탐라인들의 삶은 갈수록 황폐해졌어요. 몽골과의 전쟁이 끝나고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되었어요. 원은 탐라총관부를 세워 탐라를 직접 지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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