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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Nov 12. 2021

4. 해상상인의 딸 강심

이어도 설화 동화 _여돗할망 이야기

겨우내 한라산에 하얗게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고 천지가 푸르른 봄이 왔어요. 울긋불긋 돋아나는 새순이 돋아난 나무들로 한라산은 꽃 대궐을 이뤘어요. 향기로운 감귤꽃 향기가 그윽하게 퍼져나갔어요.

추운 겨울을 나느라 힘겨웠던 말들은 푸른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었어요. 고 동지도 피리를 불며 따뜻한 봄볕을 쬐었어요. 

“거문돌이야. 네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살림이 늘었단다. 나도 이제는 장가를 가야 할 텐데. 나한테 시집와줄 착한 각시가 어디에 없을까?”

거문돌이는 알았다는 듯이 큰 눈을 껌벅거리며 앞발로 땅바닥을 긁었어요.

며칠이 지난 어느 봄날, 짙은 안개가 몰려와 내려앉았어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말들도 길을 잃고 헤매었어요. 고동지는 잃어버린 말을 찾아 거문돌이의 등에 타고 한라산 등허리로 내달렸어요. 힘차게 달리던 거문돌이가 왕이메오름 입구에서 갑자기 멈추어 섰어요. 

한 여인이 가시덩굴 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사리를 꺾고 있었어요. 여인은 고사리 꺾는데 눈이 팔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어요. 피부는 산 목련처럼 희고, 뺨은 진달래꽃처럼 붉었어요. 붉은 뺨에 검은 머리카락 한 올이 흘러내렸어요. 여인의 자태가 선녀 같았어요. 고동지는 넋을 잃고 여인을 훔쳐보았어요. 그때 거문돌이가 히히힝 울음소리를 내며 목을 치켜들었어요.               


여인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어요.

“어머나! 누구세요?”

“나는 산 넘어 조천리에 사는 고동지라 합니다. 처자는 어디 사는 누구신지요?”

“저는 대정에 사는 강심이라 합니다.”

“어찌하여 여인네 혼자 이 깊은 산 속까지 오시었소?”

“저는 해상상인의 딸로 말을 타고 이곳에 와서 고사리를 꺾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몸으로 어찌 말을 탈 수가 있단 말이오?”

“대정은 송나라 때부터 중국으로 향하는 무역선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 아비는 해상무역으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대단히 귀한 댁의 따님이시군요. 저는 말을 키우는 말테우리랍니다. 안개 속에서 산속으로 달아난 말을 찾아 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봄날, 산속 짙은 안개는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여기 앉아 잠시 기다리시지요.”

 고동지는 여인의 말을 따라 피리를 한 소절 불며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어요. 피리 소리가 안개 속에서 길게 퍼졌어요. 여인은 고사리를 꺾던 손을 멈추고 고동지를 바라보았어요. 짙은 안개가 삽시간에 바람에 날리더니 어디선가 희미하게 말방울 소리가 들려왔어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고동지는 거문돌이와 함께 한라산을 넘어갔어요. 강심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강심도 그 자리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었어요. 강심은 해상무역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바람 방향과 별자리 위치를 보고 안전한 뱃길을 알아낼 수 있었어요. 키는 작았지만, 눈은 총명하게 빛났고 뜸 돌을 번쩍번쩍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셌어요. 고동지는 강심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어요.

“강심! 당신은 해상상인의 딸로 부잣집에서 태어나 글까지 아는 현명한 여인이오. 내가 아내로 삼기엔 분에 넘치는 여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당신의 지혜에 미치지 못할 것이 없다오. 비록 내게는 늙은 아비와 말 한 필뿐이지만 이 말을 밑천 삼아 당신을 먹여 살리겠소. 내 아내가 되어주시오.”

강심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어요.

“부지런하고 늠름한 당신은 저의 낭군으로 부족함이 없는 분입니다. 당신의 아내가 되어 아들딸 낳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강심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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