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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Nov 12. 2021

5. 곤밥을 나눠주는 강심

이어도 설화 동화 _여돗할망 이야기

고동지와 강심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아낙네들은 허벅을 지어서 물을 길어왔고 남정네들은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어요. 돼지 뼈를 푹 고운 물에 모자반을 삶아 몸국을 끓여내고 한쪽에서는 솥뚜껑을 뒤집어 빙 떡을 지져냈어요.

“신부는 언제나 도착하려나.”

“한라산을 넘어와야 하니 며칠이 걸리겠지요.”

“웬걸요. 색시가 말을 타고 시집을 온다고 하던걸요.”

“그래요? 말을 타고 시집오는 색시는 처음 보오.”

“그러게 말이에요. 나는 옆 동네서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어요.”

“나는 바로 뒷집에서 앞집으로 시집을 와서 가마는커녕 지게도 타지 못했어요.”

말을 타고 시집온 신부를 구경하려고 동네 사람들은 물론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고동지의 집으로 모여들었어요.

강심은 쌀 한 말이 든 궤짝을 말에 매달고 왔어요. 신부상에는 빙떡 세 개, 잘 달여진 몸국 한 그릇, 삶은 달걀 세 알이 올라왔어요. 새색시 강심은 손을 걷어붙이고 궤짝에서 쌀을 꺼내 검은 가마솥에 밥을 지었어요. 동네 사람들은 처음 맡아보는 구수한 밥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가마솥에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흰 쌀밥을 퍼내자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렀어요.

“어머나! 세상에 말로만 듣던 쌀밥이에요!”

“참말로 곱다 고와. 어찌 이리 고운 밥이 있단 말인고. 평생토록 이리 고운 밥은 보지도 못했소.”

강심은 가마솥에서 한 바가지 가득 밥을 퍼냈어요. 사람들은 쌀밥을 구경하려고 긴 줄을 늘어섰어요. 강심은 밥을 한 숟가락씩 떠서 나눠주었어요. 동네 사람들은 손에 받아든 고운 쌀밥을 한풀씩 떼어먹었어요.

“세상에 이렇게나 고운 밥을 먹게 된다니. 이렇게 맛있는 밥을 날마다 먹으면 얼마나 좋겠소.”

“이어도에나 가면 모를까 어찌 곤밥을 매일 먹을 수 있겠어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오.”

“맞아요. 맞아. 이렇게 살아생전에 곤밥 구경을 한 것도 고동지가 장가를 잘 간 덕분이지.”

“암. 그렇고말고.”

동네 사람들은 모두 기쁨에 들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답니다.   


고동지가 사는 집은 방이 두 개밖에 없는 두 칸으로 된 돌집이었어요. 초가집 지붕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새끼줄을 얼기설기 엮어놓았어요. 마당 옆에는 사철 내내 채소들이 자라는 작은 우영팟이 있었죠. 마당과 우영팟을 가르는 돌담으로는 세기가 약해진 바람이 들락날락했어요. 이웃집 밭을 갈아주거나 보리를 밟아 주며 밭 한 뙈기 없이 살고 있던 고동지에게는 초가집과 우영팟 그리고 석다시만이 주고 간 말 한 필뿐이었어요.

강심이 시집을 오고 난 후 고동지의 살림은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강심은 친정에서 가져온 돈으로 밭을 한 뙈기 마련하고 집을 고치기 시작했어요. 바람이 송송 드나들었던 바람벽을 뜯어내고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벽을 다시 세우고 흙을 두껍게 발랐어요.

강심이 집을 고친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이 구경을 왔어요. 산에서 흙을 지어오는 장정들, 바닷가에서 물을 길어오는 아낙네들로 고동지 집 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강심은 수확하고 나서 밭에 버려진 메밀대를 작두로 썰어 흙에 넣고 비볐어요.

“아니 이 메밀대는 뭐에 쓰려고 그러오?”

“메밀대는 억새보다 접착력이 강해 더 벽을 견고하게 할 수 있어요.”

 비록 두 칸짜리 방이지만 고동지의 집은 기와집 못지않았어요. 고급 문풍지를 발라 찬 바람을 막고, 주렴을 달아서 바람이 부는 날에는 아름다운 소리가 났어요.               

 강심은 새벽에 용천수가 나는 바닷가로 가서 제일 먼저 첫물을 길어왔어요. 물을 길어오는 일은 고단한 하루의 시작이었어요. 물허벅이 든 구덕을 지고 오다 보면 땀 범벅 물 범벅으로 옷이 다 젖었어요. 강심은 부엌 입구 물팡에 맑은 물이 가득 찬 물허벅을 내려놓았어요. 젖은 옷을 훌훌 털어 돌담에 널어놓기 무섭게 밭으로 나가 밭을 일궜어요. 물때에 맞춰 바닷가로 나가 보말을 줍고 해초를 캤어요.

“고동지가 장가를 가더니 살림이 확 폈구먼.”

“아무렴 강심이 시집오고 난 후에는 우리 마을에도 생기가 넘치고 인심이 후해지지 않았나.”

“그러게 말이에요. 어쩜 저렇게 부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진 색시가 있을까요?”

“누가 아니래요. 시집온 지 일 년도 안 되어 밭을 두 뙈기나 샀다지 뭐에요.”

“윗마을 밭은 시집올 때 친정에서 받아온 재산이라고 하던데요. 강심의 친정이 시집가는 딸에게 밭을 사줄 정도로 부잣집이래요.”

“정말 고동지가 부럽소. 나는 메밀 세 가마니를 처가에 주고 마누라를 데려왔는데 말이오.”

동네 사람들은 강심을 칭찬하는 말로 아침을 열고 고동지를 부러워하는 말로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렇게 평화롭게 몇 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고동지는 부지런한 강심을 아내로 맞이하여 늙은 아버지를 잘 봉양하며 살고 있었어요. 똑똑하고 부지런한 아내 덕분에 햇볕에 반짝이는 동백 잎처럼 반짝반짝 살림이 빛났어요. 강심은 힘이 참으로 셌어요.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일을 해결했어요. 

 동네 어부들은 강심이 바람의 방향을 보고 파도의 세기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고기잡이를 나갈 때마다 강심을 찾아와 바다에 나가도 되는지를 물었어요. 동네 사람들은 점점 강심을 믿고 의지하면서 강심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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