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름은 현정화.
18살에 함덕으로 시집을 갔는데
신랑은 서울에서 중앙중학교 나오고 제주 농고 다니다가
남 말 들어 산에 들어간
그때 먹물 든 사람들은 너나없이 산에 들어간.
그래서 열아홉에 조천리 신흥리 친정집에 가서 살아.
우리 아버지는 조천서 청진 왔다 갔다 한 무역선 선장이었어.
일본 고베서 나 노래 잘 부른 댄 축음기를 사다 주셨지.
아버지 나에게 큰 밭 하나 사준다고 약속했어.
10월 마당에서 조 수확하는 날 아버지가 집에 오셨다가 총 상당핸.
그날 신흥리에서 서른 명도 더 죽언.
그래서 친정이 망 해분 거라.
말 못 해.
나 우리 아버지가 제일 그리워.
신랑은 신랑인지 뭔지 말도 하기 싫어.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많던 밭 다 팔고 집안 망한 게 제일 원통해.
친정아버지 성함은 현찬규
나 이름은 현정화.
나 이름 안 잊어 불 잰 달력에 만날 이름 써봐.
나 이름은 현정화.
올해 92세라는 양 팀장님네 어머니
사실 양 팀장님은 자신의 아버지 양정하 옹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 채록을 원했지만
할머니의 기억은 사건 당시에 머물러 있었고
남편에 대한 기억은 원망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있을 뿐
오로지 친정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뿐이었다.
이후 살아온 세월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했지만
말도 하기 싫고
기억하기 싫어서
다 잊어버렸다고 했다.
오직 친정아버지에 대한 기억만 새록새록하고
1년에 한 번 오고
3년에 한 번 오는 아버지가
가족들 걱정되어 왔다고 배 못 타고
군인들 총에 맞아 돌아가신 것이
너무 원통하다 하셨다.
4.3 채록하다 보면 아무리 늙어도 기억이 그날에 머물러 있음을 느낀다.
할머니의 기억은 선주의 막내딸로
조천 신흥리 친정집에 해산하러 온 새댁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