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칼렛 Jul 25. 2022

3. 자기 파괴적 돌봄

알코올 중독자 아내의 심리치료 에세이

3. 자기 파괴적 돌봄     

공동의존자들은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다른 사람의 문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작 자신의 문제는 해결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각종 중독자, 나르시시스트 곁에서 희생자 역할을 자처한다. 상대방이 자립하고 회복하는 것을 원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오히려 우울하고 분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나에게 해준 사람은 마르타 수녀님이었다. 문우 박금주 선생님 소개로 마르타 수녀님을 만난 건 2010년 어느 늦가을이었다. 수녀님은  제주시가 중앙성당에 위탁한 ‘건강가정 지킴이 센터’에서 알코올 중독 가족 자조 모임을 운영했었다.

가끔 나는 어떤 장면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되곤 한다. 중앙성당에서 마르타 수녀님을 만난 날이 그런 날이다. 그날 내가 입었던 옷과 신발 가방까지도 다 기억난다. 그때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만큼 괴로워하던 때라 몸무게는 48kg 정도였다. 동생이 시집가면서 사준 Keith 브랜드의 감청색 니트 원피스를 입었다. 바람이 쌀쌀해서 스카프를 두르지 않은 걸 많이 아쉬워했다. 수녀님을 만나러 간다고 할 때 나는 왜 그렇게 기대가 컸는지 모르겠다. 마치 나를 구원해줄 구원자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절에 시부모님 위패를 모시고 마음이 답답할 때는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부처님을 뵙고 108배를 올렸다. 절집의 늙은 보살님은 불전에 있는 과일을 싸주며 위로해주었다. 하귀 교회 조온자 목사님은 고향이 순창이라는 이유로 집까지 오셔서 간절한 기도를 해주시기도 했다.

그래도 때때로 내 마음은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고 바람에 섞인 모래가 심장에 박혀 숨을 쉴 때마다 쓰라렸다.  운전대에 어깨를 파묻고 한참을 울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는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녔다. 어느 한구석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내 마음도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한 소원을 여기저기 빌 뿐이었다. 달이 뜨면 달님에게 빌었다.

"달님. 남편이 술을 끊게 해 주세요."

별이 반짝이면 별님에게 빌었다.

"별님. 남편이 술을 끊게 해 주세요."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까치가 놀러 오면 까치에게 빌었다.

"까치야. 그 감 다 따먹어도 좋으니 성현 아빠가 술을 끊게 해 줘.

까치는 날마다 찾아와 감을 쪼아 먹었지만 기쁜 소식을 갖다 주진 않았다


그러니 내가 수녀님에게 바라는 것도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수녀님 제발 우리 남편이 술을 끊게 해 주세요."

수녀님은 단호히 말했다.

"자매님 여기는 남편이 술을 끊게 해주는 곳이 아니에요. 저를 찾아온 사람은 자매님이세요. 저는 자매님이 남편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하여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하는지 그걸 훈련하는 사람이에요."

“훈련이라고요? 제가요? 제가 뭘 훈련받아야 하지요? 술을 마시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남편인데요.”

“자매님은 자매님이고 남편은 남편이에요. 그런데 자매님은 남편에게 너무 몰두해서 자매님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계시잖아요. 자매님은 남편분의 아내이지  어머니는 아니에요. 그런데 자매님은 마치 어머니처럼 남편을 돌보느라 자매님이 가진 꿈, 능력은 등한시하고 있으시네요. 저는 자매님이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과  분리해서 자매님 건강을 돌보고 또 자녀들을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도록 자매님을 돕는 사람이에요.”

나는 그 말에 더 절망스러워 눈물을 흘렸다. 나중엔 어깨를 들썩이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수녀님은 ‘이 내담자가 가야 할 길은 얼마나 먼 것일까’ 생각하며 한심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힘을 내야 해 하는 결심을 한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조용히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날처럼 절망스러웠던 날이 또 있었을까? 내가 바꾸고 내가 고치고 내가 훈련을 해야 한다니 대체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람. 삼만 원짜리 점을 봐도 뭔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주는데 수녀씩이나 되는 사람이 한다는 말이 뭐라고? 내가 변화해야 한다고.? 나는 몹시 실망스러웠고 너무 슬펐다. 그리고 절망스러웠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수녀님은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차에 타려는 나를 저만치 세워두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박 선생님과 3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가을 날씨의 쌀쌀함 때문인지 절망감 때문인지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나는 카디건을 챙기지 않고 온 것을 후회하며 울었다. 가을바람이 쌀쌀하게 불어 성당 마당에 떨어진 낙엽이 나뒹굴고 있었다.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작가의 이전글 2. 그 무엇도 나보다 우선할 순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