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을 만나고 온 후 매주 수요일마다 알코올 중독 가족의 자조 모임인 ‘알아 넌’에 참석했다. 알아넌은 알코올 중독자 가족의 친목 자조 모임이다. 알아 넌 프로그램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계들을 실천하고 생활 속에 적용하는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한다. 알코올에 무력하다는 걸 깨닫고 위대하신 신께 맡기고 그 신의 보살피신 대로 우리의 의지와 생명을 완전히 맡기기로 해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의 약점을 없애주시기를 간청하며 기도와 명상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게 된 대로의 신과 의식적인 접촉을 증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지침에 따라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로부터 분리하여 건강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훈련과정이었다. 꼭 알코올 중독자뿐 아니라 도박에 중독된 청년의 어머니도 있었고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의 어머니도 있었다.
매주 2시간씩 짬을 내서 상담을 다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어도연구회에는 모든 면에서 나에게 혹독했다. 반면 이 상담시간을 내주는 데는 후했던 편이다. 연구회에서 일하기 전 인터넷 신문사에서 잠깐 일했다. 그 신문사의 대표와 주주들이 이어도연구회의 이사들이었다. 그리고 이어도연구회의 이사장님이 제대 총장에서 물러나 연구회로 돌아와 있던 참이었다.
총장님은 나를 연구회 사무국을 운영할 사무국장으로 발탁했다. 박사과정에 있던 총장님 제자들이 사무국장을 맡겼지만 행정과 연구업무를 보좌하는 역할은 물론 각종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 하는 사단법인의 사무국장이란 자리를 박차고 떠나갔기 대문이었다. 면접이라면 면접이랄 수 있는 면담 시간을 가졌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남편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때였다.
"총장님. 제가 연구회의 사무국장이 된다면 못해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모자라면 채우고 모르면 배워갈 것이고 또 뭐든 열심히 할 거니까요. 그런데 저에게는 사실 밝히지 않은 결격사유가 있습니다."
이사장님은 빈틈없이 냉정해 보이고 아무런 티 없이 맑은 얼굴로 심각한 얘기를 하려는 나에게 좀 놀라셔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씀하셨다.
"그게 뭐요?"
"사실은 제 남편이 알코올 중독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헛기침을 한번 하시더니 태연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결혼할 때부터 남편이 알코올 중독은 아니었을 거 아닙니까? 그동안은 남편이 최 선생을 부양했다면 이제는 최 선생이 부양하면 되겠네요. 꼭 남자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선수 교체해서 이제 최 선생이 선수로 뛰면 되지 뭐 문제 될 거 있습니까?"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그 대답에서 대학 총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로구나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남편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실은 내게 주홍글씨의 캐서린이 가진 수치심보다 더 강력한 것이었다. 혹시 내 남편이 알코올 중독인 걸 알면 어쩌지? 정말 그걸 숨기기에 정신이 없던 때였다. 눈물이 한 방울 똑 떨어져 손등을 적셨다.
"인생 살다 보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깁디다. 100 미터 경주야 혼자 거침없이 달려야 하겠지만, 400m, 800m, 장거리를 뛸 때는 선수 교체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제 최 선생이 선수가 되면 되겠네요. 남편이 최 선생에게 기회를 주려고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죠.".
나는 어쩌면 이날 처음으로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했던 것 같다. 그렇게 부끄럽고 수치스럽던 사실이 '그래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내가 열심히 살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날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이 말이 갖는 힘은 웅크려진 가슴을 잠시 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날의 대화는 어쩌면 첫 만남에서 차려야 할 격식과 위선에 잘 포장된 대화의 한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내가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쉽게 회사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로 소위 지성인이라는 집단에서 내가 겪은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 설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기 싫을 정도이다. 어떻든 그래도 이 모임에 가는 일만큼은 이사장님인 총장님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빠짐없이 참석했었다.
알아 넌 멤버로 등록된 인원은 15명 정도였지만 매주 안 빠지고 참석하는 멤버는 7~8명 정도였고 그중에서 나는 제일 어렸다. 그때가 마흔이 갓 넘었을 때였으니 나는 젊은 나이에 알코올 중독자 아내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한껏 대우를 받고 위로를 받았다.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
하느님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도 주소서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를 올리고 간사님이 알아 넌 십계명을 낭독하고 나면 수녀님이 말씀하셨다.
"지난 일주일간 있었던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알코올 중독자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내담자인 여러분의 성장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처음 한 달은 한마디 말도 못 떼고 울고 또 울었다. 다른 분들도 안타까워서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우리 친정어머니 또래의 크리스티나 정, 할머니가 내 어깨를 안아주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 나는 거의 두 달간은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입을 떼려고 하면 격정적인 슬픔이 복받쳐 올라서 넘쳐흐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바쁜 시간을 틈타 이곳에 와서 눈물만 흘리고 가는 것이 전부여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 내서 입을 한번 떼 보기로 했다. 자조 모임 모서리에 앉아 눈물만 흘리던 나는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수녀님의 가르침에 따르고 멤버들의 응원을 받았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착잡해질 때가 많았다. 남편이 술에 취해 사고를 치면 어쩌지? 남편이 쓰러지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은 부정적인 사고가 내 몸을 마비시키고 그런 걱정이 내 삶을 정체시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나갔다가 거의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운 뭉게구름에 얹혀서 집으로 돌아온다.’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나는 알아넌에 갈 때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비련의 주인공으로 갔다고 올 때는 일주일을 살아낸 곡식 한 자루를 얻어 어깨에 짊어지고 오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하루하루에 살자’는 성경이고 불경이었다. 나는 핸드백에 늘 이 책을 들고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서 읽고 밤에 잠들기 전에 읽었다. 실타래같이 얽혀 있던 마음이 가닥을 잡는듯한 느낌이 왔다. 어제는 내일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건강하게 잘 살아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