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기설기 오사카 지하철에서 길을 잃다
인생 첫 해외여행은 다른 여행보다도 추억이 진하게 남는 거 같습니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는 아니고 진한 코코아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첫 여권에 처음으로 받은 입국 심사 스탬프는 일본이었습니다. 일 년간 알바를 하며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오사카에 도착해 야간버스를 타고 도쿄에 갔다 오사카로 돌아오는 2주간의 일정이었는데 해외 첫 여행이라 그런지 긴장도 되고, 길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로밍을 하거나 SIM 변경만 하면 해외에서도 데이터 사용을 바로 할 수 있고, 구글지도 사용도 편하고, 인터넷에 검색어만 치면 수백, 수천 개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여행 간다 하면 가이드북 먼저 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저 또한 일본 여행 가이드북을 바이블 마냥 품에 꼭 쥐고 다니며 책에 그려진 지도를 참고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이제 운전 못한다는 말처럼, 종이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다녔던 예전의 제 모습이 낯설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도쿄에서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오사카 난바역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거였습니다. 지금은 전혀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데 그때는 여러 회사의 라인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일본의 지하철이 어찌나 혼란스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아케이드 사이로 나있는 수없이 많은 출구 중 어디로 나가야 숙소에 닿을 수 있는지 프린트해 온 숙소지도와 출구 안내판을 번갈아 열심히 보아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케이드에 갇힌 듯한 기분마저 들어 일단 아무 출구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어디선가 숙소로 향하는 표지판이 ‘또로롱~’하며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긴 이동으로 지친 몸은 눕고 싶다 아우성이었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은 가망이 없어 보여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서툰 일본어라도 길을 물어야겠다 먹은 순간 기다란 빗자루로 길을 슬슬 쓸고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 아래 모두 베이지색 옷을 입으신 흰머리의 할아버지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고, 지도를 들고 그를 향해 조심스레 걸어가 길을 여쭸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지도를 살피시더니 따라오라 손짓하시며 성큼성큼 걸어가 작은 파출소의 문을 여셨습니다. 잘 아는 사이인지 반갑게 경찰들과 인사를 나누시고는 직선과 네모로 그려진 허술한 지도를 그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여기가 어디인 것 같냐 물으시는 듯했습니다. 경찰이 길을 알려주면 잘 받아 적어야지 생각하며 핸드폰 메모장을 켜 대기 중이었는데 위치 확인을 끝내자마자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쿨하게 따라오라 손짓하셨습니다. 조금 있다 찾으러 오겠다며 빗자루를 파출소에 맡겨둔 채 말이죠. 생각지 못한 전개에 얼떨떨하며 그 뒤를 쫓았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짧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가 잘 기억나지는 대략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인 것 같은데 여행 왔나요?>
<네. 첫 해외여행인데 도쿄 여행하고 지금 오사카에 왔습니다.>
<나는 도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거긴 어땠나요?>
<좋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마디를 더 건네셨지만 알아들을 수 없어 멋쩍게 웃어 보였습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 질문하셨지만 잘 모르겠다 말하니 “ばか”라며 핀잔을 주셨습니다. 바보라니… 다행히 숙소는 가까이 있었고 할아버지는 숙소 주인장에게 우리를 인수인계 하시고는 왔던 길로 빠르게 돌아가셨습니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 대고 감사하단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후 할아버지를 따라왔던 길을 더듬어 매일 지하철과 숙소를 안전히 오갔습니다. 오며 가며 할아버지를 다시 뵐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비록 바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것이 전혀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옆나라에서 놀러 온 젊은이들과 더듬 더듬이더라도 더 많은 말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투정 같이 느껴졌거든요. 덕분에 밍밍한 오사카 여행에 후추향이 가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