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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나무 Oct 09. 2023

비록 타이어 바람은 빠졌지만

불편했지만 불편하지 않았던 2박3일

얼마 전 지인을 통해 한 유튜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항 직원의 실수로 여권이 찢겨 출국을 하지 못했다는 정말 상상해 본 적 없는,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출국을 하지 못했다니!! 듣는 제 얼굴이 공기를 다 빼내어 압축한 페트병 마냥 찌그러졌습니다. 여행의 설렘과 출국 준비를 하느라 바빴던 마음이 어떠한 모양이 되었을지 경험해 보지 않은 저로서는 쉬이 가늠이 되지 않더군요.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테지요- 대신 저는 언젠가 제주도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해외여행을 앞두고 비행기를 타지 못한 유튜버의 일화와 비교하자면 작은 해프닝이지만, 여행하는 3일 내내 렌터카에 문제가 있어 불편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며 저렴한 업체를 고른 저를 비웃듯이 말이죠. 제주공항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사무실에 도착해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 둔 아담한 모닝을 건네받고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계기판을 본 동생이 타이어 공기압을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했습니다. 직원에게 문의를 해서 공기압을 채운 다음 계기판 위 주홍색 점등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목적지인 서귀포시 운진항 방면으로 액셀레이터를 밟았습니다.


첫날 여행을 잘 마치고 2층 침대가 있는 아담한 방에서 숙면을 한 후 이튿날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시동을 켜자마자 다시 공기압을 확인하라는 불빛을 만났습니다. 공기압을 채운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만약 계기판이 자아가 있었다면 알람을 띄워 보내면서 스스로도 이상하다 생각했을 겁니다. 이 정도면 타이어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일요일이라 문을 연 정비소도 없고 타이어가 푹하고 꺼질 정도의 이상이 있는 상태는 아니니 조심조심 움직여 보기로 했습니다. 계기판이 오류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말이죠. 하지만 반나절이 지나도 주홍빛은 사라지지 않았고, 때마침 눈에 띈 노란색의 키 큰 타이어뱅크에 들어가 문의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 직원들은 4개의 타이어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문제의 원인을 금방 밝혀내었습니다. 타이어가 아니라 휠이 휘어서 바람이 새고 있는 것으로, 자신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렌터카 회사에 전화해 다른 차를 가져다 달라 요청하라며 취해야 할 행동까지 알려주고는 오는데 한참 걸릴 테니 사무실에 들어와 편히 쉬라며 자리도 마련해 주고, 믹스커피도 한 잔씩 타주셨습니다.


타이어뱅크에 들어간지 5분도 안되어서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독특한 건물모양과 화려한 현수막으로 눈길을 끄는 타이어뱅크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건물이 왜 저렇게 생겼을까 궁금했지만 들어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제주도여행에 와서 느닷없이 타이어뱅크 투어를 하게 된 것이죠.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부분에는 다양한 타이어가 종류별로 정리되어 천장까지 진열되어 있었고 도르래 형식으로 위, 아래를 전환해 필요한 타이어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항상 이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는 저의 말을 들은 직원분이 도르래를 작동시켜 주시기까지 했죠. 다른 분은 여자친구와 갔을 때 반응이 좋았던 카페, 디저트가게 등 맛집 리스트를 읊어주셨습니다. 덕분에 2시간 넘는 기다림의 시간이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채워졌습니다.


여행 와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게 되어 어쩌냐는 걱정과 꼭 렌터카 회사에 말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돌려받으라는 신신당부까지 듣고 나서 첫 차였던 모닝보다 조금 커진 자동차에 올라탔습니다. 이미 날이 어두워진지라 근처 맛집이라는 식당에 가서 고기국수와 돔베고기를 배불리 먹고, 오늘 많이 다니지 못한 대신 내일 부지런히 움직이자 합의를 하고 자동차 시동을 켰는데 이번에는 확신의 빨간색 경고등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헐. 아무래도 엔진 쪽 문제인 것 같아 다시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량을 교체한 지 3시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기에 화보다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식당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주차장에 차를 두고 가도 되겠냐 여쭈었고, 어렵게 택시를 잡아 타고 숙소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숙소 주차장에는 이튿날 보다 더 커진 자동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크기를 본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차를 타고, 날마다 자동차가 업그레이드되는 나름 신선한 경험을 하는 중이라며 말이죠. 제발 이번 차만큼은 여행 끝까지 문제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일정을 시작했고, 다행히 렌터카 사무실까지 무사귀환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지만요.


문제투성이 렌터카 소동으로 골치가 아팠던 것도 사실이지만 덕분에 몰랐던 제주 맛집을 알았고,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상태를 점검해 주고 기다림의 시간을 배려해 준 타이어뱅크 사람들, 주차장 한 칸을 기꺼이 내어준 식당 사람들, 우리의 귀가를 걱정해 준 숙소 주인장들. 무엇보다 여행메이트가 동생이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계획이 없다시피 한 여행이라 틀어질 계획이 없어 서로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고, 무던한 성격인지라 서로에게 짜증 내는 일 없이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불편한 기색을 깊이 내어 보인다면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마음이 어려웠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남매사이라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누나가 잘못 택한 렌터카 회사 뒤 처리는 동생이 도맡아 했습니다. 누나는 전화통화를 좋아하지 않고, 렌터카 회사에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건 더더욱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오히려 매일 1시간 넘게 다른 차를 끌고 온 직원이 고생이라며 그를 걱정하는 누나 대신 동생이 조용히 렌터카 회사 사장님과 결판을 보았다는 소식을 비행기 안에서 전해 들었습니다.


추천 받은 덕분에 umu의 푸딩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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