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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나무 May 08. 2024

발리에서 쇼핑을 해보았습니다.

여행을 수집하는 방법

이번 발리 여행은 놀멍쉬멍을 위한 발걸음이었지만, 오랜만에 길게 떠나는 여행이니 재미난 프로젝트를 더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오픈한 [보부상 반나무 발리편]!


‘보부상 반나무’는 여행지에서 사 온 물건을 소소하게 판매하는 나만의 사이드프로젝트로 2016년 태국 치앙마이가 시작이었다. 여행을 할 때면 엽서와 자석은 필수, 그 외에는 마음에 드는 패턴이 담긴 가방 또는 손수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텀블러 등 일상에서 사용하기 좋은 물건을 기념으로 구입하는 편이다. 아주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 물건을 꺼내어 쓸 때마다 잠깐 추억 여행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 ‘이건 동생이랑 오사카 갔을 때 산 가방이지.’, ‘이건 몰타에 갔을 때 산 티셔츠! 그 푸르고도 시원한 바다 색 다시 보고 싶다.’하며.


일상에 녹아 있는 물건을 보고는 이건 어디서 산거냐며, 마음에 든다며, 왜 자기 것은 없냐 타박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치앙마이편은 내 취향이 담긴 물건을 구입해 판매하는 형식이었다면 발리편은 사전 신청을 받았다. 평소 좋아하는 색깔, 여행지에서 주로 무슨 기념품을 사는지, 어떤 느낌을 선물 받고 싶은지 등 꼼꼼히 적어준 신청자의 답변을 마음에 잘 담아 발리로 함께 날아갔다. 첫날부터 길가에 나와있는 물건을 유심히 살피며 지냈다. '발리는 이런 걸 주로 기념품으로 파는군', '저거 예쁘다', '저거 괜찮다' 하며. 그리고 우붓에서 지내는 3주간 본격 쇼핑을 했다.


종종 사이드프로젝트로 [보부상 반나무] 영업 개시를 하곤 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골목으로 들어가 이 가게, 저 가게를 구경했다. 이렇게나 많은 가게를 들어가 본 적이 있었던가! 사실 나는 쇼핑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커다란 쇼핑몰에 들어가면 행복지수가 오르는 이도 있다는데 나는 1시간만 지나면 당이 급격히 떨어져 쉴 곳을 찾아야 하고, 가격비교를 위해 여러 가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군가를 위한 물건을 사는 것이었으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에는 여행 사진보다 물건 사진이 점점 더 늘어갔다.


제일 많이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사롱과 라탄제품이었다. 사롱도, 라탄도 색깔이나 무늬가 얼마나 다양한지 그중에서 신청자에게 딱 맞는 하나를 고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그 외에도 나무로 만든 주방용품, 코코넛으로 만든 비누, 요가제품, 악기 등 다니면 다닐수록 좋은 물건이 눈에 더 들어왔다. 예산 범위 안에서 신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그가 잘 사용할 것 같은 또는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고르고 골라 하나씩 담았다. 사람들이 내가 구입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이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나의 취향을 믿어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친구들의 애정을 느끼는 날이 더 많았다.


누군가를 이토록 생각하며 찬찬히 물건을 고른 적이 언제였던가. 검색하면 최저가를 바로 알 수 있는 세상, 오늘 주문하면 내일, 아니 오늘 밤 문 앞에 도착하는 초고속 배송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물건을 직접 만져보고 사기보다 인터넷에서 쓱 보고 결정하는데 익숙하다. 때문에 이 낯선 과정이 즐거웠다. 각기 다른 신청자와의 관계의 거리를 느끼는 것도 재미났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구나 싶어 흐뭇한 순간도 있었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에 비해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구나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감각을 믿고 어떤 물건을 받을지 모르는 묘미를 기꺼이 감수한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리 큰 물건을 사지 않았음에도 생각보다 짐이 많아져 어마한 수화물 초과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나의 추억까지 담아 전한 물건이 신청자의 일상에 녹아든 순간을 마주할 때 느낀 뿌듯함이 마이너스를 이겼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정성스레 물건을 고르는 기쁨을 알게 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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