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나무 May 08. 2024

발리에서 쇼핑을 해보았습니다.

여행을 수집하는 방법

이번 발리 여행은 놀멍쉬멍을 위한 발걸음이었지만, 오랜만에 길게 떠나는 여행이니 재미난 프로젝트를 더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오픈한 [보부상 반나무 발리편]!


‘보부상 반나무’는 여행지에서 사 온 물건을 소소하게 판매하는 나만의 사이드프로젝트로 2016년 태국 치앙마이가 시작이었다. 여행을 할 때면 엽서와 자석은 필수, 그 외에는 마음에 드는 패턴이 담긴 가방 또는 손수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텀블러 등 일상에서 사용하기 좋은 물건을 기념으로 구입하는 편이다. 아주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 물건을 꺼내어 쓸 때마다 잠깐 추억 여행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 ‘이건 동생이랑 오사카 갔을 때 산 가방이지.’, ‘이건 몰타에 갔을 때 산 티셔츠! 그 푸르고도 시원한 바다 색 다시 보고 싶다.’하며.


일상에 녹아 있는 물건을 보고는 이건 어디서 산거냐며, 마음에 든다며, 왜 자기 것은 없냐 타박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치앙마이편은 내 취향이 담긴 물건을 구입해 판매하는 형식이었다면 발리편은 사전 신청을 받았다. 평소 좋아하는 색깔, 여행지에서 주로 무슨 기념품을 사는지, 어떤 느낌을 선물 받고 싶은지 등 꼼꼼히 적어준 신청자의 답변을 마음에 잘 담아 발리로 함께 날아갔다. 첫날부터 길가에 나와있는 물건을 유심히 살피며 지냈다. '발리는 이런 걸 주로 기념품으로 파는군', '저거 예쁘다', '저거 괜찮다' 하며. 그리고 우붓에서 지내는 3주간 본격 쇼핑을 했다.


종종 사이드프로젝트로 [보부상 반나무] 영업 개시를 하곤 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골목으로 들어가 이 가게, 저 가게를 구경했다. 이렇게나 많은 가게를 들어가 본 적이 있었던가! 사실 나는 쇼핑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커다란 쇼핑몰에 들어가면 행복지수가 오르는 이도 있다는데 나는 1시간만 지나면 당이 급격히 떨어져 쉴 곳을 찾아야 하고, 가격비교를 위해 여러 가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군가를 위한 물건을 사는 것이었으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에는 여행 사진보다 물건 사진이 점점 더 늘어갔다.


제일 많이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사롱과 라탄제품이었다. 사롱도, 라탄도 색깔이나 무늬가 얼마나 다양한지 그중에서 신청자에게 딱 맞는 하나를 고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그 외에도 나무로 만든 주방용품, 코코넛으로 만든 비누, 요가제품, 악기 등 다니면 다닐수록 좋은 물건이 눈에 더 들어왔다. 예산 범위 안에서 신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그가 잘 사용할 것 같은 또는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고르고 골라 하나씩 담았다. 사람들이 내가 구입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이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나의 취향을 믿어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친구들의 애정을 느끼는 날이 더 많았다.


누군가를 이토록 생각하며 찬찬히 물건을 고른 적이 언제였던가. 검색하면 최저가를 바로 알 수 있는 세상, 오늘 주문하면 내일, 아니 오늘 밤 문 앞에 도착하는 초고속 배송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물건을 직접 만져보고 사기보다 인터넷에서 쓱 보고 결정하는데 익숙하다. 때문에 이 낯선 과정이 즐거웠다. 각기 다른 신청자와의 관계의 거리를 느끼는 것도 재미났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구나 싶어 흐뭇한 순간도 있었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에 비해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구나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감각을 믿고 어떤 물건을 받을지 모르는 묘미를 기꺼이 감수한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리 큰 물건을 사지 않았음에도 생각보다 짐이 많아져 어마한 수화물 초과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나의 추억까지 담아 전한 물건이 신청자의 일상에 녹아든 순간을 마주할 때 느낀 뿌듯함이 마이너스를 이겼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정성스레 물건을 고르는 기쁨을 알게 된 여행이었다.



blog_ 우붓에서 기념품/선물 사기 좋은 가게들

insta_ 조용한 발리 여행 | 복잡하지 않은,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발리 풍경을 소개합니다


이전 09화 발리에서 발리문화 일일 체험을 해보았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