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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나무 May 01. 2024

발리에서 발리문화 일일 체험을 해보았습니다.

'함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간들

어디로 여행을 가든 첫날은 천천히 동네를 둘러본다. 숙소 주변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바라 볼만한 풍경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살피며 다음에 가보면 좋겠다 싶은 곳을 골라 마음속에 나만의 동네지도를 그려본다. 이렇게 걷다 보면 의외로 재미난 장면을 만나기도 한다. 발리 사누르에 도착한 날도 호텔에 짐을 풀어놓고는 눈앞에 나있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사누르는 바다를 따라 길이 쭉 나 있어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좋았다. 선베드에 누워 책 읽는 사람,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사람. 바다를 즐기는 다양한 모습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 작은 사원에 도달했는데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대나무의 두꺼운 부분으로 쌓아 올린 직사각형의 무언가가 두 개 놓여 있었고, 두 명의 남성이 각각 하나씩 맡아 안에 있는 무언가를 태우는 중이었다. 그 뒤로는 화려한 가마 같은 게 쓰러져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무리에는 나와 같은 외국인 여행자가 듬성듬성 섞여 있었고, 주위에는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슨 축제인가 싶어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죽은 이의 몸을 불태우는 중이라 했다. 한 명은 젊은이였고, 한 명은 나이 든 사람이었다며 저길 자세히 보면 얼굴이 보일 거라 말해주었다. 궁금한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검게 변한 누군가의 얼굴과 마주쳤고,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누군가의 사진을 가슴팍에 꽉 껴안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화장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는 짧게나마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의 안녕을 기도하고 그 자리를 떠나왔다.


우연히 만난 발리의 화장식 (cremation)



이후 다른 이에게 물어보니 이는 발리 힌두교 방식의 화장이라 했다. 화장식을 진행하는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대부분은 땅에 시신을 매장해두었다가 마을에서 3년 또는 5년 주기로 함께 화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라고도 알려주었다. 돈이 있는 집의 경우에는 3일에서 7일 정도 집에서 장례식을 진행한 후 바로 화장식을 하기도 한다 했다. 예전에는 장례식을 한 달 가까이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생업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점차 간소화되어 가는 중이고, 우리나라처럼 장례 서비스 업체도 하나씩 생기는 추세라고 했다. 잠깐이었지만 이들의 장례식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며 지내던 마을사람들이 다 함께 배웅을 해준다는 것이 '그래, 이런 게 진정한 마지막 인사지' 싶었고, 죽음을 윤회의 과정으로 바라봐서 그런지 장례식이 축제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발리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모습을 늘 만날 수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발리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비단 장례식뿐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전통의상을 입었다. 결혼식을 갈 때도, 기도드리러 절에 갈 때도, 마을 행사가 있을 때도. 우연한 만남으로 친해진 친구의 초대로 마을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는데, 친구 어머니, 옆집에 사는 고모 등 여러 집에서 전통의상 커바야를 빌려 입었다. 발리에서 마을행사란 힌두교 행사라 볼 수 있는데, 발리를 가 본 사람이라면 긴 행렬을 마주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발리는 전 세계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양력) 뿐 아니라 자신들의 고유한 달력(발리력)을 사용하는데, 이에는 이들이 지켜야 하는 절기가 꼼꼼히 적혀 있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이런 행사를 하냐 물었더니 셀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참여한 날은 마을 사원에서부터 바다까지 걸어가 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무려 새벽 4시부터 시작하였다. 5-6살로 보이는 어린이부터 연세가 있는 어르신까지 줄지어 1시간이 넘는 길을 함께 걸었다. 걷는 중에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명절 같은 풍경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한편 발리의 도로정체 주범인 이 행렬을 모두가 견디고 넉넉히 이해해 주는 것이 신기했다. 인도네시아는 신분증에 '종교'란이 있을 정도로 종교를 중요시 여기는 국가다. 모두 저마다의 종교가 있기 때문인지 서로를 미워하기보다는 당연하다 여기는 느낌이었다. 다른 이들이 힌두교의 긴 행렬을 견디듯, 또 다른 이들은 무슬림의 기도소리를 견디며 그렇게 매일을 보내는 중이었다.


발리에서는 힌두교, 마나도에서는 기독교, 롬복에서는 무슬림의 일상을 옅보는 여행이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이토록 비효율적인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매일 짜낭사리를 사서 기도를 올리고, 뻰쪼르(대나무로 만든 기다란 장식)를 세우고, 밤을 새워가며 도깨비상을 만들고..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이것이 모두 삶의 일부다. 이번 여행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며, 서로를 따스하게 품어내는 모습을 만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우리에게도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잃어버린 정겹고도 끈끈한 이들의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더라.



blog_ 발리에서 마나도까지 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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