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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회고 16

휴식의 용기와 균형

by 반나무

화요일 아침, 알람이 울렸지만 가볍게 확인 버튼을 누르고는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오늘은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하기로 한 날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월요일병을 안고 산다면,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저는 화요일병이 있습니다. 평소엔 외국어 공부와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화요일만은 예외. 일주일을 살아갈 제게 미리 주는 작은 보상입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이제는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라는 알람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회사로 향하는 길 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스스로에게 이렇게 너그러워졌을까 하고요. 조금씩 변화하고 스며들어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얼굴을 내밀곤 합니다.


ESTJ인 저는 계획 세우고, 완료한 일에 체크하는 순간을 즐깁니다. 늘 To-do-list를 가까이하는 저를 보고는 한 친구는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니?"하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오해는 없으시기를) 계획은 제게 든든한 동력이지만 때로는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저는 잘 쉬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피곤해도 오늘 하기로 한 일들은 해야지 마음이 편했죠. 그거 하나 안 한다고 삶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도 아니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던 저에게 유연함의 즐거움을 알려 준 것은 여행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떠난 첫 해외여행. 도쿄와 오사카 2주일! 첫 해외여행이니 얼마나 들뜨고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을까요. 심지어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니 여행 책자 한 권을 백과사전 삼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계획표대로 흘러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날씨나 체력 이슈가 등장하기도 했고,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서 마음에 쏙 드는 가게를 발견하는 일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 이후로는 여행을 갈 때 빽빽한 일정표를 만들지 않습니다. 큰 그림만 그려두고, 나머지는 우연에 맡깁니다. 그 편히 훨씬 즐겁다는 걸 이제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행에서 배운 태도가 조금씩 생활에도 녹여지고 있습니다. 금요일, 퇴근 1시간 전부터 눈이 감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에 헬스를 갈 생각이었지만, 밥을 먹고 나니 침대가 그립고 그렇게 스르륵 잠에 들었습니다. 토요일, 어제 못한 공부를 해야 한다며 피곤한 눈을 부릅뜨고는 노트북을 켰지만 결국 10분 만에 닫았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 했을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책보다는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체력이 전보다 못하기 때문에 찾아온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전 이런 변화가 좋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계획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말이죠. 이제는 계획을 지키는 힘만큼,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 덕분에 점점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초록채집가 반나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기록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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