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리고, 흘려보내기
사람에게는 시기마다 마음에 오래 머무는 단어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변화'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관계'일 수 있겠죠. 요즘 제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단어는 '감정'입니다. 특히 감정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일. 연애를 통해 잘 알지 못했던 감정을 만났다면, 이별을 통해서는 떠오르는 감정들을 흘려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어오면 전 늘 이렇게 답했습니다.
희로애락을 적절히 느끼며 사는 것.
그런데 돌아보니, 희로애락을 온전히 느끼며 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라 늘 중간에 서서 큰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그냥 그런가 보다'하며 흘려보내는 편이었고 그리하여 저의 감정의 파동은 늘 잔잔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인생의 아주 기쁘거나 슬펐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힘든 일을 겪은 것도 돌이켜보니 몇 번이고 있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기대하며 방송부에 들어갔는데 사소한 이유로 군기를 잡는 선배들이 무서워 매일 울며 전학 가고 싶다던 날들이 있었고, 체육시간에 넘어져 다리를 다친 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인생의 멘토라 여겼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감정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복잡한 감정이 차오르면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무작정 걸었습니다. 동네 골목을, 불광천에서부터 한강까지를, 아무 목적 없이 걸었습니다. 걷다 보면 머릿속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감정이 서서히 풀려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떤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빨리 떠나보내려 하기보다 그냥 가만히 두었습니다. 마치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듯 가만히 두다 보면 마음이 저 바닥 어딘가를 치고 다시 두둥실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조금 다른 방식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언어화하고, 표현하고 그리고 휴식하는 것. 그냥 두고 사라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 감정을 이리저리 찬찬히 살펴보고, 내 말로 꺼내어 글로도 남겨보고, 몸을 움직여 내 안을 잘 통과하도록 길을 만들어 주고, 그 후에는 쉬는 시간까지 챙기는 것. 덕분에 요즘은 전보다 많이 울고, 자주 화내고, 크게 웃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징징거리기도 하고요. 친구들도 이런 저의 변화를 기쁘게 받아주어 참 감사한 요즘입니다.
이 연습의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나면, 저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때쯤이면, 희로애락을 적절히 느끼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알게 될 테니까요.
요즘 여러분의 마음에 오래 머무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초록채집가 반나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기록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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