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를 바꾸어 가기
앞 전 일주일회고를 함께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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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영화로 시작한 사랑이 막장 드라마로 끝났습니다. 가히 '첫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던 만남이었기에 성급히 미래를 그리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의 손을 더 이상 붙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별을 말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중입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했던 마음이, 이토록 다양한 감정을 느껴 본 것이 처음이라 특별했고 그로 인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믿음이 그를 더 사랑스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진심을 다했던 만큼 이별의 아픔과 상처가 깊게 심장에 박혔습니다.
이별에도 단계가 있다고 하더군요.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 - 재생. 1단계를 지나온 것은 분명한데, 아직 6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2단계와 5단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매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괜찮았다, 어느 날은 괜찮지 않았다 하면서요. 이제는 그만 울 때도 된 것 같은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무더운 날씨 탓에 깨어난 새벽은 답답한 가슴으로 다시 잠들 길을 찾지 못한 채 뜬 눈으로 지새우기를 수차례 반복 중입니다. 어느 날은 그를 향한 분노가 피어오르다가 또 어느 날은 그래도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고 고맙다 생각하는 제 모습이 지킬 앤 하이드가 따로 없어 웃기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그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것 없이 여러 감정과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러다 이 터널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2단계와 5단계를 오고 가는 날들이 지난하게만 느껴집니다.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고 있다는 허탈함도 들고요. 하지만 이별에는 상처 없는 튼튼한 항아리보다는 깨진 항아리가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온전한 항아리 앞에서 운다면 감정이 넘쳐흐를 수밖에 없을 터인데, 항아리에 틈이 있는 탓에 울고 나면 감정이 스르륵 어디론가 새어나가 조금은 차분해지니까요.
이별은 끝도 없이 떠오르는 질문들과 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는 날 정말 사랑했을까?
그도 나처럼 행복했을까?
그는 나랑 헤어지고 나서 정말 괜찮나?
후회하지 않을까?...
이제는 물을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는- 아니 답을 듣는다고 해서 그것을 오롯이 믿을 수도 없고, 달라질 것이 없는데도 질문들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다닙니다.
이쯤 되니 이별에서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어’를 바꿔야겠다 싶습니다. 그가 아니라 나로 말이죠.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나는 그를 만나 행복했고,
덕분에 나는 성장했다고 말이죠.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잘 살아갈거라고요.
이렇게 계속해서 주어를 바꾸어 나가다 보면 다시 반짝이는 제 자신과 웃으며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복잡한 감정들은 아마 겨울 끝자락 눈처럼 서서히, 아주 서서히 녹아내리겠죠. 어느 날은 안 아픈 줄 알았다가 다시 쓰라리고,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작은 계기로 다시 덜컥 무너지기를 반복하겠죠. 하지만 이 진심도, 이 아픔도 반드시 옅어지는 날이 올 겁니다. 지금은 끝도 없는 감정처럼 느껴져도 조금씩, 조금씩 녹아 언젠가는 정말 눈 녹듯이 사라지고 봄이 올 거예요. 그렇죠...? 그때가 되면 사라져 버려 쓸쓸한 커플링 자리의 허전함도 사라지고, 반지 없이도 반짝일 수 있을 거예요.
초록채집가 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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