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나요?
얼마 전, 김소영 작가님의 <어떤 어른>을 읽었습니다. 후루룩 넘어가는 글 사이사이로 고민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었는데 그중 제일 긴 고민을 하게 만든 것은 '어린 시절,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나요?'하고 물어오는 글이었습니다.
제목을 읽고 나서는 멍해졌는데, 선생님, 작가, 가수 등 직업이 아닌 진지하게 꿨던 첫 꿈이 '어른이 되기 전에 죽기'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시작점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는 바가 없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꺼내어 보면 두려움이라는 꼬리표만큼은 분명하게 따라옵니다. '세상이 이토록 변하지 않는 것은 어른이 되면 다 똑같아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른이 되기 전에 죽자'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단순한 도식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기 전에 죽기를 꿈꾸었던 어린이는 30대가 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이지요. 그렇다면 저는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과 달리 살아가고 있을까요? 물음표가 크게 그려지네요. 그래서 다시금 떠올려보았습니다. '내가 만났던 어른들의 모습이 그토록 별로였나?' 하고요. 더듬더듬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제 인생에는 좋은 어른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을 강화에서 보낸 저는 이웃하고 있는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제가 남의 집 딸기를 서리해도, 남의 집 감나무에 올라가 잘 익은 감을 따먹어도 집주인어른들께서는 언제든 와도 된다며, 덤을 얹어주시곤 하셨습니다. 전학 온 서울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늘 단정하면서도 편안한 옷을 입고는 학교 화단을 가꾸시며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중학교 때 가까이 지냈던 선생님은 늘 깊은 질문을 던지시며 제가 지금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늘 저의 롤모델로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할아버지입니다. 60이 넘어서 중국어 공부, 패러글라이딩 등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저는 나이 들어도 배움과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짐했습니다.
이토록 좋은 어른들에게 따스한 격려를 받으며 살아온 저인데, 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래서 마음의 방향을 돌려보고자 합니다.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붙잡아 흔들어 대기보다는 지금,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를 더 깊이, 더 자주 탐구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닮아가고 싶은 어른이 가까이 있고요.
전 직장 동료였던 A와 종종 만나 다이빙하는 사이인 B. 60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나이나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누구와도 허물없이 친구가 되는 어른이지요. 두 번째는 여전히 삶을 탐험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해 나가는 사람, 변화에 열려 있고, 삶을 살아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늘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좋은 모습을 자주 보고 생각하다 보면 저 또한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겠지요?
어린이는 끝이 있는데, 어른은 죽을 때까지 어른이니 갈 길이 참으로 멉니다. 그러니 욕심부리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