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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오 Feb 11. 2022

대선판에 가려진 김원웅의 민낯

사사건건 친일 반민족 프레임으로 역사를 정치에 이용해온 김원웅의 민낯이 까발려졌다. 바로 공금횡령 의혹이다. 김원웅은 최근 제기된 광복회 카페 수익금 횡령 논란 등에 대해 “제보자의 개인 비리”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국가보훈처 감사 결과 의혹의 상당 부분은 사실로 드러났다. 독립유공자 자녀들에게 돌아가야 할 수익이 ‘돈세탁’을 통해 김 회장 구린 입으로 구역 구역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김원웅의 비리 의혹에 경악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 공금 착복을 넘어 가족회사까지 만들어 광복회를 부의 축적에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김원웅의 행적은 마치 투사와 같았다. 느닷없이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과거사를 뒤집는가 하면 현실 정치 문제도 연좌제로 끌어들여 목청을 높였다. 가히 살아 있는 독립투사의 모습이라 할 만했다.      


     

가장 최근의 문제를 한번 짚어 보자. 바로 점령군 논쟁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논쟁은 아니다. 그저 상대의 말꼬리 잡기다. 첫 시작은 김원웅이다. 대한민국 광복회장이라는 자의 입은 새털 같았다. 그가 한 고등학교에 보낸 영상 메시지가 문제의 발단이 됐다. 광복 이후 북한에 진입한 소련은 해방군이고 남한에 들어온 미국은 점령군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시작은 김원웅이었지만 설전(舌戰)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김원웅의 발언을 가운데 두고 해석과 주석이 요란했지만, 핵심은 친미와 반미, 그리고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에 대선후보들을 가두겠다는 의도다.       


    

관망하던 윤석열과 영리한 이재명이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먼저 포문은 연 쪽은 이재명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 당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느냐”라고 외쳤다. 김원웅보다 한 발짝 더 나간 발언이다. 이재명의 발언을 두고 곱씹던 윤석열이 되받았다. “국정을 장악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다음 정권까지 노리고 있는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누구를 대표하느냐”라고 날을 세웠다.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해방 전후사의 역사 인식이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다. 이 장면이 바로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김원웅이 퍼 나른 점령군 발언은 해방과 함께 시작된 미 군정 맥아더 사령부의 포고문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의 내용은 이렇다.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맥아더 군이) 명심하고...(조선) 점령의 목적이 (일왕의)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는 문장이다. 점령의 주체는 미군이고 대상은 일왕이 지배한 조선이다.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정부 수립이 공식화된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간은 미군정이라는 비정상의 과도기가 존재했다.   


   

이후 1948년 12월 UN이 “한반도 내 공식적이고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라고 선포하면서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국호가 합법화됐다. 이러한 팩트를 두고 이런저런 해석과 주석을 갖다 붙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를 자신의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끼워 맞춰 편 가르기를 하겠다는 목적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딱 그 지점이 본심이다.      



단언컨대 우리 정치는 해방 전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의 그물망에 스스로를 가둔 것은 이 땅의 지식인들이었다. 식민지 치하에서 외눈박이 이념 공부에 열중한 지식인들은 제대로 된 절차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외세에 의한 정부 수립과 혼돈의 시간을 마주했다. 소련의 사주를 받아 일사불란하게 전선을 구축한 북쪽의 단일대오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 혼돈의 시기에 맞닥뜨린 한국전쟁은 좌우 대립과 빨갱이 논쟁으로 이어졌고 갈수록 극렬한 이분법 사회로 내몰렸다. 문제는 학습의 현실화였다. 


이 땅의 지식인 사회는 스스로 학습한 정치이념을 현실에 대입하는 절차를 밟지 못했다. 현실 적용이 안 된다면 앞선 경험 집단의 모범적 사례를 법과 제도로 적용하는 절차라도 필요했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유아독존이 앞길을 막았다. 극단은 결국 투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정치깡패의 주먹질과 암살, 권모술수와 테러로 이어진 시정잡배 수준에 머물렀다.      



지금의 여야, 진보와 보수 모두가 뿌리를 같이하는 부끄러운 과거다. 하지만 이를 보고 배우고 학습한 후배들의 정치는 달랐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정치에서 진보세력은 과거 해방 전후의 좌익세력이 보여준 선동적이고 투쟁적인 기질에다 30여 년 동안이나 이어진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실전 경험까지 쌓았다. 투쟁의 시대는 끝났지만, 전투력으로 전신을 무장한 진보는 10년간의 집권 신화까지 썼다. 한번 맛본 권력은 중독성이 강하다. 촛불로 세운 정권을 100년쯤 더 오래 누리겠다고 오만가지 내로남불로 무장했다.      



잇속만 챙기고 안방에서 문을 잠근 채 패악질을 일삼던 보수는 다른가. 마찬가지다. 이승만이 보여준 권력욕의 끝을 학습했지만 나와는 다른 문제라는 선긋기로 유신독재는 망했다. 독재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는 촛불이 횃불로 번지자 광장을 내주고 보수정권의 종말을 고했다.      



말이 나온 김에 점령군 문제는 정리해두고 넘어가자. 대선의 한 복판에선 우리는 좌우로 완전히 갈라졌다. 이제는 적폐 청산과 어디서 감히라는 멱살잡이 판까지 벌어졌다. 지금 이 나라가 둘로 갈라져 삿대질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의도는 사실 너무 뻔하다. 무결점 세력에 도전하지 마라는 경고와 내로남불을 무결점으로 포장하지 말라는 부라림의 결전이다.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모든 사람은 당신이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가는 알지만 실제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본질이다. 이미지로 얼버무려 퉁치겠다는 수작이 남발하고 있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 수준이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유용한 시기다.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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