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5]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5]
우리 괜찮은 걸까?
정말 할많하않이다.
우리 집에서 걱정을 가장 많이 끼치는 녀석.
그 악명 높은 이름은 ‘마오리 소포라’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포라 양은 살아있다.
아직은.
따뜻한 화원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보살핌 많이 받고 자라다가, 올여름 나 같은 어설픈 주인에게 납치당한 것이 못내 억울하기라도 한 건지. 아주 눈물 콧물 쏙 빼도록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듯, 녀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아이처럼 내 멘탈을 아주 우수수 털기 시작했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비유였지만, 소포라 양은 마치 내 주식 계좌 같았다. 폭락보다 무섭다는 계단식 하락, 여기가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가 있었고 거기가 진짜 바닥인 줄 알았더니 그 아래 해저 터널이 있었다. 최적의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동안 노랗게 변해버린 소포라 잎들이 하나둘 힘없이 떨어져 버리자 그때 나는 바닥을 맛보았다. 이후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바둥거리던 중, 녀석에게는 ‘통풍’이 가장 중요하다는 정보를 입수. 햇빛 잘 드는 발코니 창가 코앞에다가 냉큼! 놓아주니 그제야 고사리 같은 새순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아 여기구나!
연둣빛 새잎이 ‘만세’를 하는 귀여운 모습에 그간의 걱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제는 잘살아 보자! 희망 회로를 돌리며 일희일비하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주식 계좌는 폭망의 길을 걷고 있었고, 지그재그로 뻗어있던 소포라 양의 가지들은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앙증맞은 잎들로 빼곡하게 차 있던 녀석의 머리숱은 우수수 빠져버리더니 이젠 영락없는 대머리가 되어있었다.
같은 날 함께 데려온 오나타 군은 나보다 정수리가 빽빽할 정도로 아주 폭풍 성장 중인데, 반대로 앙상하게 말라가며 점점 더 수형이 짧아지고 있는 소포라 양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리숱도 함께 후드득 빠져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거슬러 올여름 8월, 처음 맞이하게 된 신입생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어서 이리저리 인터넷을 찾아보고 있었다. 미리 찜해놨던 식물들도 아니고 그냥 화원 갔다가 맘에 들어 덥석 데려와 버린,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일단 일부터 저질렀던 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도 아는 애였다. 실내 인테리어로도 좋은 감성 식물이라고 여기저기서 떠들길래 사진 몇 개를 찾아봤었는데, 걔가 얘였다. 가지가 너무 얇아 톡 건드렸다간 뚝 하고 부러질 것 같았고 잎도 조그마한데 이게 웬걸, 가격은 꽤 비쌌다. 근데 어쩌다 보니 우연히 만난 이 녀석의 여리여리한 감성에 나도 모르게 그만 반해버렸나 보다. 그런데 사람들 후기를 읽어보니 그중에는 물론 잘 키우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까다로운 녀석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 다들 고군분투 중인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을 잘 키우는 방법들에는 전부 ‘적당히’라는 부사가 붙어 있었다. 물을 줄 때도 다른 식물들과는 달리 ‘적당히’ 물을 잘 조절해서 주어야 하고, 빛도 너무 과하지 않게 잘 줘야만 한다. 그렇다고 아예 그늘에 두면 통풍과 양분 흡수를 할 수 없으니 햇빛이 ‘적당히’ 들어오는 반그늘에 놓아주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게다가 녀석은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10~25도의 ‘적당히’ 선선하면서 따뜻한 온도를 좋아했다.
이러한 조건 중에 단 하나라도 틀어져 영 자기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가차 없이 잎을 노랗게 변화시켜 바짝 겁을 주더니 곧 우수수 잎을 잔뜩 떨어뜨리면서 식집사 멘탈도 우수수 털어버리는 녀석이었다.
제발 한 번만 너그러이 봐달라고 싹싹 빌고 영양제까지 갖다 바쳐도 소포라 양의 마음은 쉽사리 잘 풀어지지 않았고, 그녀가 원하는 완벽한 자리를 내어주고 나서야 그녀의 분노가 차츰 진정되면서 겨우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시켜) 찾아낸 우리 집 발코니 창가 바로 맞은편 위치가 식물들이 잘 크기에 굉장히 좋은 위치였나 보다. 통풍이 잘되고 햇빛이 오랫동안 머무는 그 위치로 선반을 옮겨두고 우리 집 화분들을 죄다 옮겨주니 갑자기 모두 폭풍 성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 동선에도 방해되지 않아서 왔다 갔다 하는데 불편하지도 않았고 딱 좋은 위치였다. 나는 왜 3년 동안 이 위치를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고 몇몇 식물들을 초록별로 떠나보내고 말았는가….
그래도 1평 남짓한 좁은 발코니에 드디어 나의 작은 숲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내 신경과 관심은 소포로 양에게 몽땅 쏠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다른 애들은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잘 커 주고 있어서 마음이 좀 놓이는데, 예민하고 까다로운 우리 공주님은 언제 갑자기 변덕을 부릴지 몰라 쇤네는 항상 긴장 상태였다. 새잎을 잘 내는가 싶다가도 가지 껍질이 하얗게 벗겨지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 ‘혹시 또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또다시 밤새 폭풍 검색한 뒤에야 이내 안심하고 한시름 놓았다. 알고 보니 가지 껍질이 벗겨지고 있다는 건 우리 소포라 양이 아주 건강히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예민한 공주님을 열심히 지키다 보니 나 자신이 개복치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처음에는 노랗게 변한 잎들이 하나둘 떨어질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며 거의 울기 직전이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옆에서 새잎들이 태연하게 슝슝 새로 나고 있었다. 그냥 오래 묵은 잎들이 새로이 교체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걸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 글을 시작했던 맨 처음, 소포라 양을 점차 계단식 하락했던 내 주식 계좌에 비유했는데 그 비유가 꽤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잎이 슬슬 빠지고 서서히 말라가면서 경고 신호를 내게 미리 보냈던 게 아니라, 정말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쭉쭉 뻗어있던 예쁜 수형도 짧아져 있었고 잎이 듬성듬성 빠지더니 갑자기 대머리가 되어있었다.
탱탱하게 수분 가득하던 가지가 갑자기 쪼그라들며 주름지더니 그대로 검게 변해 말라죽어 버렸다. 게다가 그 가지에 매달려있던 잎들도 축 늘어지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가지에 새로 나고 있던 새순들까지도 전부 바짝 마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녀석의 경고 신호를 내가 못 알아챈 걸 수도 있겠지만, 그때도 새잎은 열심히 나고 있었고 딱히 환경의 변화를 새롭게 준 것이 없었기에 이러한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확인해봤는데 병충해 피해를 당한 것 같진 않아 보였다. 물도 적당히 주고 통풍이며 햇빛이며 똑같이 주었는데 왜 갑자기 말라버린 건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죽은 가지를 쳐줘야 한다길래 열심히 잘라주었더니 결국 수형이 점점 짧아져 아주 못생겨졌다. 이 와중에도 새잎들이 계속 나고 있어 이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인 건지, 소포라 양이 어디 안 아프고 건강한 건지, 명쾌한 정답 없는 나날들 속에서 식집사도 티 안 나게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내 주식이 처음 계단식 하락세를 보였을 때 정신 바짝 차리고 빠른 대응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평단가의 지하의 지하의 지하에서 ‘여기에도 사람 있어요! 사람 살려!’를 간절히 외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소포라 양도 그렇다. 지금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고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뭔가 조치해야만 했다. 죽어가는 소포라 양을 살려야 했다.
토분이 몇 개 필요해서 평소 눈 여겨봤던 식물 마켓에 혼자 구경을 갔다. (토분만 사고 오려다가 꽂혀버린 한 녀석을 또 집으로 데려와 버리고 말았지만) 그곳 직원분과 우연히 말을 트게 된 김에 소포라 양에 대한 고민을 냅다 털어놓았다. 직원분은 내가 보여준 소포라 양 사진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주 건강한데요? 사진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키우는 애들보다 목대도 훨씬 두꺼운 것 같고 새잎들도 많이 나는 걸 보니 건강해 보여요. 얘네들 가끔 한쪽으로 쏠려 자라기도 해서 가위로 잘라 수형 관리만 해주면 예쁘게 잘 클 거예요.”
우리 집 소포라가 아주 건강하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며칠 후, 데려온 첫날부터 혼자 폭풍 성장하며 제일 길쭉하게 잘 자라고 있던, 마이웨이하던 가지 하나가 갑자기 말라버렸다. 어째서?
날씨가 점점 추워지길래, 공주님을 따뜻한 실내 창가로 옮겨주려다가 후다닥 원래 위치에 다시 놓아주었다. 소포라가 의외로 생명력도 강하고 추위에도 강하다고 해서, 이번 겨울은 우리 집 발코니에서 강하게 키워볼까 생각 중이다. 당최 가지가 자꾸 마르는 원인이 뭔지를 모르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영양제 하나 꼽아주고 내년 봄까지 제발 건강하게 잘 버텨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을까? 우리 괜찮은 거지?
[ 마오리 소포라를 키우고 있는 우리 집 환경 ]
- 햇빛 : 햇볕 잘 드는 반양지.
(* 남서향 집 : 특히 오후 햇살이 발코니부터 집안 깊숙이까지 따뜻하게 잘 들어옵니다. 여름에 가장 뜨거울 때는 얇은 속 커튼으로 빛을 걸러서 주기도 했습니다)
- 물 주기 : 주 2회 (겉흙이 마르는 기준 4일 간격으로), 상온에 미리 받아놓았던 물 사용.
- 통풍 : 창문 바로 앞 (발코니 창문 바로 맞은편)
- 공중 습도 : 일 1~3회. 생각날 때마다 자주 분무
- 특이사항 : 토분 화분 사용 중. (토분에 대한 정보는 이전 화 참고)
'마오리 소포라' 키울 때 참고하면 좋은 사이트 - 꽃페라님의 네이버 블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