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 분갈이 ①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6]

by 반년작가

1평 남짓, 작은 숲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6]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 분갈이 ①





흙이 다 똑같은 흙이지. 집에서 식물 키울 때 쓰는 흙이라고 뭐 다를 게 있나? 대충 중랑천에서 흙을 퍼오거나 아파트 화단에서 살짝 퍼오면 되는 거 아닌가?

- 3년 차 물경력 식집사의 과거 충격 발언





(지식인 캡처) 내가 쓴 줄 알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모를 수도 있지 ㅠㅠ



* 흙을 사서 써야 하는 이유

- 밖에서 퍼온 흙에 병해충이나 벌레 알이 딸려올 수 있어서 위험하다.
- 인공 배양토보다 퍼온 흙의 무게가 무거워 화분을 옮기기 어려워진다.

결론 : 되도록 소독 처리가 된 분갈이용 흙(원예용 상토 / 분갈이 배양토)을 구매해서 사용하기를 추천 (단, 밖에서 직접 흙을 퍼올 땐 별도의 조치 후 안전하게 사용하길 권장합니다)




올여름, 화원 방문과 신입생 콤보 공격으로 자신의 무식함과 무지함을 깨달은 3년 차 물경력 식집사는 충격과 공포 그리고 죄책감을 맛봤다. 화원의 분갈이 코너에서 본 흙은 우리 집 화분들에 담겨 있는 흙과는 엄연히 달랐다. 선명한 초콜릿색에 하얀 별사탕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고슬고슬한 흙이 아주 건강해 보였고 맛있어 보였다(?). 그래서 뭐랄까 3년 동안 군소리 없이 잘 커 주었던 우리 집 헌내기들에게 더욱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육이들의 질긴 생명력에 대한 감탄과 고마운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한편,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대체 어떻게 저 정도까지 무럭무럭 큰 건지 정말 미스테리했다. 어쨌든, 여태까지 물 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케어도 해주지 않아 서러웠을 녀석들에게 뒤늦은 보상을 해주고자, 드디어 미루고 미뤄왔던 우리 집 헌내기들의 분갈이를 하기로 했다.



라떼는 흙장난을 하면서 불렀던 그 노래.

일명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프로젝트.




제일 먼저 분갈이 혜택을 받을 주인공은 바로 ‘부용’과 ‘월동자’였다.









부용 (Echevria Harmsii)



‘부용’은 3년 전 내가 자취를 처음 시작했을 때 엄마가 나눠준 식물 중 하나였다. 사실 이 녀석의 이름이 ‘부용’이 맞는지 확실치 않아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금황성’이라는 애랑 외형이 아주 비슷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많이들 헷갈려했다. 두 식물을 구별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다리(줄기)에 솜털이 있으면 금황성이고 털 없이 매끈하면 부용이라고 한다. 또 잎끝이 둥글면 금황성이고, 뾰족하면 부용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구별 방법에 근거하여 들여다보면, 우리 집 녀석은 ‘부용’이 틀림없었다.



2022.05월, 부용이 모습


물론 키우는 동안에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용이 역시 갑자기 잎이 하나둘 마르더니 힘없이 뚝뚝 떨어져 버린 적이 많아 항상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다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었구나 싶었다. 솜털 가득한 아기 같은 처음 모습은 어디 가고 그동안 키가 쑥쑥 크고 다리가 쭉쭉 길어지더니 어느새 롱다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올해 내내 별 탈 없이 잘 커 주던 부용이가 어느 날 갑자기 옆으로 픽 고꾸라져있었다.



고꾸라진 부용이



옆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는 증조가 보였던 것도 아니었고, 사람에 비유하면 멀쩡하던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픽하고 옆으로 쓰러져버린 것과 같았다. 큰 키와 잎의 무게 때문에 줄기가 못 버티고 갑자기 부러졌나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뿌리가 흙 표면에 나와 있었다. 부용이 뿌리는 사실 처음 보는데, 뿌리마저도 솜털 같구나.







상황을 보아하니 뿌리가 너무 얕은 깊이에 심겨 있어서 쓰러진 것 같았다. (’그런데 3년 만에 갑자기?’라는 의문은 제쳐두고) 그래서 화분을 뒤엎은 후 좀 더 깊숙이 흙을 파서 다시 심어주었다. 흙에 잘 고정해서 심어주었지만 줄기가 곧게 서지를 못하길래 지지대를 옆에 세워 일으켜 주었다.



사실 이번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건 전부 부용이 때문이었다. 화원에 있는 분갈이 흙을 처음 보고 우리 집 헌내기들의 흙도 전부 새 흙으로 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잘 크고 있는데 괜한 일을 벌이는가 싶어서 그냥 말았다. 쓰러진 부용이에게 목발(?)을 쥐여주고나니 일단 사태는 잘 수습된 것 같아 한숨 돌렸지만, 화분을 뒤엎었을 때 척박하게 메말라 있던 부용이 녀석의 흙을 보고 난 후에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부용이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도록 헌 흙에서 새 흙으로 바꿔주기로. 집에서 직접 하는 첫 분갈이였기에, 아무런 도구와 장비 하나 없이 그냥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모종삽만큼이나 튼튼한 내 손에 열정을 듬뿍 담아 본격적으로 분갈이를 시작했다.




부용이 분갈이 타임랩스


그런데, 대형 사고 발생!!!





흙이 너무 메말라 딱딱했던 이유와 조심해서 꺼내 주지 못한 나의 실수가 합쳐져 그만 대형 사고가 발생해버렸다. 조심해서 꺼냈어야 하는데, 갑자기 퍽 하고 뭉텅이로 꺼내지는 바람에 작은 아이의 줄기가 뚝 하고 부러져버렸다.



괘…. 괜찮아…. 다육이는 생명력이 강하니까 그대로 심어주면 곧 다시 뿌리를 내릴 거야….

근데 정말 미안해… ㅠ_ㅠ




난쟁이가 되어버린 작은 부용이



대형 사고가 있었지만, 부용이는 새 흙에서 잘 커 주는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후 원인이 뭔지 모르겠으나, 부용이 아래쪽 잎들이 갑자기 말라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인가 싶어서 마른 잎들을 전부 떼주었는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잎 표면이 갑자기 이상하게 변하면서 줄기와 맞닿아 있는 잎 가장 안쪽 부분도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분갈이 몸살인 걸까? 예전에 깍지벌레 때문에 다육이 몇 개가 죽어버린 적이 있어서, 혹시 또 깍지벌레의 습격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진드기나 깍지벌레 같은 벌레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부용이 주변 식물들을 찬찬히 둘러봐도 벌레는 딱히 없어 보였고 부용이를 뺀 다른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다. 내가 모르고 지나친 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왠지 병충해 피해를 입은 것 같아서 예전에 사두었던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간간이 뿌려주고는 있는데 아직은 별다른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식집사 생활은 해도 해도 정말 어렵다.


현재 부용이의 모습










월동자 (Haworthiopsis reinwardtii)



영화의 한 장면과 비슷한 모양이 되어버린 이 녀석의 이름은 ‘월동자’이다.


ㅇㅇ 좋군?



다육식물이고 얼핏 보면 ‘십이지권’과 ‘용 발톱’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외형이 엄연히 달라 구분하기가 쉽다. 이름이 월동자라서 왠지 둥글둥글한 인상의 동자 스님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나만 그런가요?) 실제 생긴 건 이리저리 삐죽하게 뻗쳐있는 까치머리를 닮았다. 아니면 키 작은 알로에처럼 생겼던가.


이 녀석 역시 부용이와 마찬가지로 엄마가 나눠준 식물 중 하나였다. 이 녀석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잘 큰다고 하더니 그 결과 정말로 쑥 커서 이제는 키도 제법 크고 옆에서 자구도 여러 개 슝슝 나는 바람에 화분이 비좁아 보였다. 그래서 멀찌감치 서로 거리를 두고 서 있었나 보다.


햇빛을 잘 들지 않는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지만, 내 경험상 적당한 햇볕을 쬐어주어야 튼튼한 잎이 나오는 것 같았다. 월동자는 햇빛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잎끝 쪽 색깔이 변하는데, 햇빛을 직접 받게 되면 붉은색에서부터 검붉은색, 보라색으로까지 색이 변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겨울에 녀석을 다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면, 얼마 후 원래 색상인 초록색으로 돌아와 있는 아주 신기한 녀석이었다.




(햇빛이 너무 세면 잎끝 쪽이 갈색으로 타버리기도 하니 그래도 주의하는 게 좋을 듯싶다. 또는 물이 부족하면 잎끝이 갈색으로 말라버리기도 한다.)




겨울에 실내에서 컸던 잎은 뭔가 삐쩍 말라 밖으로 뻗쳐 있다.



계획은 이러했다. 월동자 형제에게 각자의 독립된 방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작은 아이와 그 옆에서 나고 있는 새로운 자구까지 전부 다른 화분으로 옮겨주어 큰아이가 온전한 자기 방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기로 했다. 자세히 보면 큰아이 옆에도 새로운 자구가 나오고 있는데, 아마 더 넓어진 방에서 아무 눈치 안 보고 잘 자랄 수 있겠다.



처음에는 화분이 비좁아 보이는 만큼 월동자 형제의 뿌리가 화분 가득 차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3년 동안 폭풍 성장하며 몸집이 크게 커진 것에 비해 녀석들의 뿌리가 아주 아담했다.




월동자 형제에게 각자의 방이 생겼어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비좁은 화분에서 서로 거리를 두며 비스듬히 서 있던 월동자 형제는 드디어 굽었던 허리를 똑바로 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새로운 흙이 모자라서, 일단은 예전에 썼던 마른 흙으로 작은 아이의 분갈이를 마쳤다. 그리고 며칠 후 다있소에서 배양토를 사 와 흙을 새로 갈아주고 나서야 드디어 진짜 분갈이가 끝났다.




월동자 동생 새 흙으로 옮겨주기 타임랩스



월동자 동생 분갈이 완료



솔직히 말하자면 월동자 형제와 나와의 관계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른 건지 타버린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갈색으로 변한 잎들을 잘라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싶었다. 사실 이번에 살짝 정리해보려고 시도해봤는데, 잎이 다른 식물들과는 달라 이걸 어떤 방식으로 정리해주어야 할지를 몰라 엉망으로 잘라주고 나서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황급히 그만뒀다. 잎 정리는 나중에 좀 더 찾아본 후에 다시 시도해보기로 한다.



예쁜 화분에 새로 심어주면 좀 더 화사해 보이고 녀석들에게 더욱 관심이 갈까 고민하던 찰나, 예전에 인스타에서 눈여겨보았던 이끼 테라리움이 생각났다. 그 가게에서 테라리움 원데이 클래스도 하길래 언제 시간 나면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혹시 다육식물로도 만들 수 있나 찾아봤더니 가능했다. 이미 인터넷에는 테라리움 DIY 키트로도 출시되어 있었고, 손재주 좋은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만들어본 후기 사진들을 개인 블로그에 올려놨다. 세상 좋아졌고 금손들이 정말 많다! 비록 나는 손재주가 없는 똥손이지만, 언젠간 우리 귀여운 월동자 형제를 예쁜 전원주택(?)으로 이사시켜주겠다는 부푼 꿈을 꾸기 시작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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