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7]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7]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 분갈이 ②
올여름, 3년 차 물경력 중고 신입은 화원 방문을 계기로 식집사 권태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권태에서 벗어났다 한들 그럼 뭐하나?
식집사의 세계에 발을 딛자마자 신경 써야 하는 게 당최 한두 개가 아닌데. 겨울이 오기 전에 분갈이도 얼른 끝내야 했고 이것저것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이거 혹시 농부의 마음인가?
총 두 번의 분갈이를 통해 몇몇 식물들은 척박한 흙에서 벗어나 새 출발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고, 몇몇 식물들은 비좁아진 화분으로부터 자구들을 분리해주어 서로 독립된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곧 따뜻한 실내로 옮겨줘야 하는 애들을 위해서는 아주 지극정성을 다해 현질... 아니 장비까지 구매했다. 역시 취미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 마음이 가기 시작하면 장비가 필요해지고 장비를 사고 나면 기분이….
11월 말까지도 기온이 영상권을 맴돌며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최근 예고도 없이 갑자기 겨울이 덜컥 찾아왔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자 이때다 싶어 후다닥 추위를 싫어하는 식물들을 실내로 들여왔다. 미리 사놓았던 식물 등과 가습기를 본격 개시하여 아주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으며, 반신반의하던 식물 등 효과 또한 꽤 볼 수 있어서 정말 신이 났다.
그렇다. 어쩌다 보니 반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벌였다.
월동 준비한답시고 4층짜리 선반도 사서 실내에 들여놓았고 혹여 햇빛이 부족하고 겨울철 난방으로 인해 방 안이 건조할까 봐 식물 등과 가습기까지 설치 완료했다. (온실을 설치한 게 아니다) 통풍을 위해 서큘레이터도 사려다가 그냥 올해는 손풍기로 대체하기로 마음먹고 결국 사진 않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아주 유난을 떨었다.
게다가 까탈스러운 두 녀석들(오나타 군, 소포라 양) 때문에 머리 쥐어짜며 쩔쩔매고 있었으니 올해 신입생은 더 이상 안 받겠노라 다짐했는데, 무려 ‘다섯 녀석’이나 추가 입학을 허용해주고야 말았다. 이 이야기들은 차츰 풀어나갈 예정이고, 그중 두 녀석을 제일 먼저 소개해주고자 한다. 올해 마지막 분갈이를 통해 친구에게서 분양받은 두 녀석들.
이번 분갈이는 빠른 식물 트레이드(trade)를 위해 친구와 함께 진행하기로 했고 계획은 이러했다.
자구가 여러 개 난 ‘산세베리아 허니’를 화분 두 개에 각각 분리해주기.
‘산세베리아 허니’ 자구 하나를 친구에게 분양해주기.
친구에게 두 식물을 분양받기.
이보다 키우기 쉬운 아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산세베리아 허니는 지금까지 제일 별 탈 없이 아주 조용히 무럭무럭 건강하게 커 준 착한 아이였다. 마치 반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조용한 학생과도 같았다. 이 또한 처음에는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엄마에게서 데려온 녀석 중 하나였고, 시작은 자구 하나로 소소히 시작해서 3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들여다보니 그 옆으로 여러 개의 자구를 열심히 펼쳐내며 화려한 왕관 모양의 자태를 잔뜩 뽐내고 있었다.
이 녀석 자체가 다른 식물들처럼 위로 쭉쭉 뻗으면서 자라는 애가 아니고, 오히려 개체수가 옆으로 자꾸 복제되는 식물이었다. 아담한 키를 유지하는 이 녀석을 아기 같다고 마냥 귀여워해 주다 보면, 어느 날 옆으로 길게 늘어나 있는 녀석의 신기한 분신술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나처럼.
산세베리아 허니를 키우기 좋은 최적 온도는 16~24도가 적당하다고 하는데, 나의 경험상 웬만한 겨울 영하권 추위에도 탈 없이 튼튼하게 잘 버텨내는 것 같았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우리 집 소포라 양처럼 잎을 우수수 떨어뜨리며 식집사 멘탈 또한 우수수 털어버리는 반항적인 행동 따윈 하지 않았고, 제 딴에 묵묵히 버티다가 이제는 목말라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지면 잎 전체를 안쪽으로 살짝씩 말아 소심한 신호를 보내왔다.
진한 초록색 잎에 가로줄무늬가 심플하면서도 묘하게 화려한 매력을 지닌 산세베리아 허니는 ‘식물 킬러’들에게 정말 강력히 추천하는 식물이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그늘의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잘 자라 주며, 한결같은 초록 초록한 싱그러움을 오랫동안 쭉 뿜어내 주는 착한 아이다. 너무 급하지 않으면서 식물을 키우는 재미에 천천히 스며들고 싶을 땐, 무던한 매력의 산세베리아 허니가 최고다.
(까다로운 녀석들을 키우다 보면 뭔가 나 자신이 정말 노예가 된 것 같고,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키우기 쉬운 식물이 최고라는 걸 몸소 깨닫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녀석 인기가 영~ 없는 듯싶었다. 분리한 작은놈을 동네 식집사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당근 마켓에 글을 올려 보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격대가 싼 식물인 데다가 일회용 플라스틱 화분이라 좀 없어 보여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작은 자구라서 그런가?
내년 봄 지나 이 녀석 몸체가 좀 커지게 되면 다시 나눔 글을 올려볼까 하는데, 만약 그때도 인기가 없으면 그냥 나중에 다육이 테라리움을 만들어볼 때 함께 심어 예쁘게 꾸며볼까 생각 중이다.
(수박 페페로미아 Peperomia argyreia ‘watermelon peperomia’, watermelon begonia)
아주 귀여운 이름을 가진 이 녀석은 내 친구의 반려 식물이다. 학명으로 뭔가 그럴싸하고 멋진 반전 이름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다고, 도톰한 잎에 수박 줄무늬를 띄고 있는 이 녀석은 전 세계 그 어떤 누군가 본다고 해도 ‘수박 페페’는 ‘수박 페페’인가 보다.
수박 페페는 번식이 아주 쉽고 어딜 갖다 놓아도 쑥쑥 잘 크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줄기를 잘라 물꽂이를 해도 한 두 달 뒤면 건강한 뿌리를 내려 삽목 할 수 있고, 잎을 싹둑 잘라 절단면이 흙에 박히도록 심어주면 또 금세 뿌리가 생겨나서 새로 키워내기 쉽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수박 페페는 물꽂이도 가능, 잎꽂이도 가능, 토경 재배도 가능, 수경 재배도 가능.
이 녀석 또한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 초보 식집사들에게 추천하는 식물이고, 특히 잎에 수박 줄무늬가 이 녀석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에 귀엽게 생긴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추천하는 바이다.
마치 우주선이 고장 나서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같았다. 사진처럼 저렇게 두 개로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사실 잎꽂이해두었던 잎에 붙어 생겨난 새싹이었고 저 둘은 원래 하나였다. 그런데 분갈이하는 도중에 친구를 돕겠다고 나섰던 나의 실수로 인해 잎에 붙은 새싹이 그만 뚝 하고 분리되고 말았다. 즉, 친구가 수태에서 애지중지 잎꽂이해서 겨우 키워낸 꼬꼬마 새싹을 내가 실수로 망가트려 버린 것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 털 손”라고 말했다.
(자주 떨어뜨리고 자주 사고를 쳐서, 친구가 내 손은 사람 손이 아니라 ‘털 손’이라며 내게 붙여준 별명)
혹시 모르니 일단 심어보자. 이 녀석의 강한 생명력을 믿어보자. 일단 무작정 심고 보자. 반드시 살려야 한다!
뿌리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까지는 습한 환경에서 키워주는 게 좋다고 하길래, 생각날 때마다 잔뜩 분무해주고 플라스틱 커피잔을 덮어줘서 습도를 유지해주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녀석이 아주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어느 날 들여다보니 조그마했던 잎의 크기가 점점 넓어지면서 키도 쑥쑥 커진 듯싶었다. 페페의 우주선에서 새순이 돋아날 낌새는 아직 감감무소식이지만, 작은 새싹이었던 외계인 페페가 눈에 띄게 성장하는 걸 보니 이 또한 식집사에게는 아주 기쁜 일이었다.
그동안 자리가 잘 잡혀있는 식물들을 엄마에게서 업어오거나 화원에서 데려와 키웠기 때문에, 우리 집 식물들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커 주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새싹부터 차근차근 키워 본 경험은 부족하지만, 무엇보다 친구의 페페를 죽이지 않고 잘 키워내고 싶어서 이런저런 걱정과 욕심이 한가득하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페페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최근 줄기에서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실내가 건조해서 그런가, 새싹 페페의 잎 꼬랑지가 까맣게 변해버리긴 했지만, 아직 꼬꼬마라서 이렇다 저렇다 할 만한 큰 우여곡절은 딱히 없었다. 그저 이렇게 쭉 건강하게만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었다.
늘 그렇다. 생각보다 식물들은 우리 집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요즘 우리 집 식물들을 보면서 ‘엄마, 사람도 건강히 잘 크는 것 같고 식물들도 무럭무럭 잘 크는 걸 보니, 우리 집터가 정말 좋은가보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실없이 늘어놓은 후 엄마와 둘이 허허하고 웃는다.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본가에서 시들시들하던 애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오면, 걔들은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폭풍 성장하는 반전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요즘은 그냥 해 본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터 좋은 집에서도 변수는 발생한다. 이런 예쁜 이미지에 꽂혀 식집사는 잠시 달콤한 꿈을 꾸었다.
식물 좀 키워봤으니 이제는 이런 안개꽃 화분도 예쁘게 잘 키워낼 수 있다고.
만개한 안개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후에는 드라이플라워로 만들어서 예쁜 화병에 꽂아놔야지.
하지만 그건 꿈이었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친구가 작은 새싹까지 겨우 키워낸, 안개꽃 여러 개를 분양받아왔다. 겨울철이라 페페보다도 작은 새싹이었던 안개꽃을 분양받아 잘 키워낼 자신이 없었지만, 분갈이하면서 어쩌다 보니 겸사겸사 안개꽃도 업어왔다. 친구도 아직 새싹까지만 키워봐서 별다른 노하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안개꽃은 생명력이 질기고 물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흙이 마르지 않도록 물만 자주 주기만 해도 아주 손쉽게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분갈이를 했던 11월 초부터 영상 기온을 맴돌던 11월 말까지, 안개꽃을 우리 집 발코니에 두었는데 역시 그곳은 우리 집 명당이었다. 그늘진 친구의 사무실에서는 몇 달째 변함없는 작은 새싹 신세였는데, 우리 집 명당에 있는 동안 옆자리 페페와 함께 쑥쑥 잘 커 주며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또 사고를 치고 만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다가 그만…. 안개꽃 새싹을 정통으로 맞추고 말았다. 튼튼하던 새싹이 정말… 갑자기 ‘꾀꼬닥’ 하고 바로 그 즉시 죽어버렸다. 제법 꽤 되는 많은 양의 새싹들을 친구에게서 얻어 왔지만, 그중에서 제일 튼튼하게 잘 버텨낸 아주 기특했던, 정예 멤버(?) 중 하나였다. 근데 너무 허무하게 죽'어'버렸고, 죽'여' 버렸다. 그래도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나 주길 바랐으나 며칠 후 아주 흔적도 없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현재 남은 새싹은 셋뿐이고, 따뜻한 실내 식물 등 아래에서 거의 심폐소생술(?) 수준으로 겨우겨우 키워내는 중이다.
누군가가 만약 내게
어떤 식물이 가장 키우기 어렵냐고 묻는다면,
첫째가 ‘마오리 소포라’, 둘째가 ‘안개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