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8]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8]
아무래도 제 팔자엔 돈복이 없나 봅니다 - 금전수
영하권 추위를 뚫고 우리 집 현관에 막 들어서는 롱 패딩 차림의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해”
안경에 서린 김이 다 빠지기도 전에, 다짜고짜 영문 모를 사과의 말부터 들어야만 했던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온 그녀에게 나는 작은 화분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금전수가 죽어가는 것 같아.”
(상황 설정에는 약간의 각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고민이 생겼다. 죽어가던 식물들도 턱턱 잘만 살린다는 터 좋은(?) 명당, 우리 집에서 소리 소문 없이 쓸쓸히 죽어가고 있던 식물 하나를 이제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싱그럽던 초록색 잎은 온데간데없어져서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고 심지어 요즘은 잎끝에 갈색빛이 돌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아마 이렇게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 듯싶었다.
한때 ‘식물 킬러’였던 과거 전적이 있어 이 상황을 처음 겪는 건 아니었다. 이 상황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키우다 보면 이유 불문 어쩌다 식물 하나 정돈 죽을 수도 있지.
하지만 죽어가는 이 식물을 바라볼수록 괜스레 자꾸 죄책감부터 드는 이유는 금전수는 올여름 친한 친구가 내게 선물해주었던 식물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만약 내게
어떤 식물이 가장 키우기 어렵냐고 묻는다면,
첫째가 ‘마오리 소포라’, 둘째가 ‘안개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금전수'다.
앞서 말했던 ‘롱 패딩 차림으로 나타난 그녀’이자 ‘내게 금전수를 선물해 준 친한 친구’인 J는 가끔은 소름돋을 정도로 나와 취향과 관심사가 꽤 비슷한 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유명 과자 CM송이 절로 나올 만큼 우리 사이 티키타카가 아주 좋은 편이어서, 평소 관심 있어하던 분야의 이벤트나 꿀 정보가 있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얼른 공유하거나 함께 방문할 날짜를 잡아보곤 했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맛있다고 느끼는 ‘입맛’ 포인트가 정말 잘 통해서, 서로가 추천하는 맛집 정보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일단 엄지 척 들어 믿고 보는 편이었다.
사실 올여름 화원을 방문하게 된 이유도 J 덕분이었다. 나의 온 관심이 식물 키우는 데에 잔뜩 쏠려있을 무렵, 정말 신기하게도 J도 식물 키우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사실 친구인 나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J의 사무실 대표님과 이 정도면 너네 회사 혹시 농장 아니냐고 물어볼 만큼, 원예 활동에 진심인 직원들 분위기에 휩쓸려 J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 듯싶었다. 그런데 때마침 ‘식물 키우기’라는 관심사가 생긴 그 타이밍이 우연히 나랑 겹친 것이었다.
어? 너도?…. 나도!
이 또한 우연한 타이밍에서 운명(?)의 티키타카를 느끼며, 우리는 새로 생겨난 취미 활동인 ‘식물 키우기’를 함께 즐기기 시작했다. 네가 남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아마도 우린…(생략)
그러던 어느 날, 나한테 줄 게 있다며 갑자기 우리 집에 들른 J는 짠! 하고 작은 화분을 내밀었다.
“얘 이름은 금전수이고, 집에 두면 돈이 들어온다니까 잘 키워서 꼭 대박 나라. 꼭! 부자 돼라.”
J는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는 금전수의 잎을 물꽂이 해서 이만큼 키워냈다고 했다. 죽어가는 애들도 물꽂이로 어떻게든 반드시 새끼를 치게(?) 만드는 의지의 장인 J였다. 참고로 수태에 수박 페페 잎꽂이해서 나온 새싹을 내게 나눠준 것도 J였다. 이제야 밝혀지는 나의 홈가드닝 세계의 든든한 조력자 J.
처음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작은 잎이 이미 조금 노래진 상태였다. J에게 물어보니, 사무실 금전수를 분갈이하면서 겸사겸사 잎꽂이도 해본 건데 아마 그때 금전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사무실 여기저기 잎꽂이로 퍼져 있는 금전수들 모두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게다가 여름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뜨거웠던 9월 초, 금전수 생육 환경을 전혀 모르고 일단 우리 집 발코니 명당자리에 놓아주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가뜩이나 상태 안 좋았던 작은 잎이 훨씬 더 노래지면서 맥없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두툼하고 촉촉해 보이는 잎도 뭔가 바삭할 것처럼 변하면서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휘어진 금전수를 황급히 실내로 대피시키고 나서 찾아보니 금전수는 온도 차 변화가 크지 않은 실내에서 키우는 게 좋다고 했다.
일단 실내에는 들여서 간신히 살려는 놨는데.
금전수 키우기 한 달 차, 시작되었다. 나의 고통.
대체 누가 금전수 키우기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하였는가.
“J,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SOS.”
J의 조치는 이러했다. 본체는 글렀으니 그냥 흙에서 분리해서 그대로 물꽂이 해보라는 것이었다. 물꽂이 해서 살릴 수 있으면 살리고, 안되면 잎을 다 잘라서 물꽂이로 어떻게든 새끼를 쳐(?) 보자는 것이었다. 금전수가 생명력이 워낙 강해서 삽목 하기도 쉬우니 일단 물꽂이 해서 앞으로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무실 금전수 분갈이할 때 너무 스트레스받았나 보다,라고 말하면서 사무실 금전수들의 근황을 알려주었는데, 결국 모체와 번식한 새끼들 전부 다 노래져서 마찬가지로 해롱거리고 있다고 했다.
그땐 몰랐다. 우리 집 금전수의 미래를.
단지 사무실 금전수들보다 조금 늦게 죽을 뿐이란 걸.
막간을 이용해서, 이전화에서 보여 줬던 부용 분갈이와 월동자 형제들의 자구 분리, 수박 페페 분양, 등을 시간 순서에 맞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 9월 말 : 쓰러진 부용이 일단 다시 심기 + 월동자 형제 분리
- 10월 중순 : 금전수 분리. 잎 물꽂이.
- 10월 말 : 부용, 월동자 동생 새 흙으로 갈아주기.
- 11월 초 : 산세베리아 분리 + 수박 페페, 안개꽃 분양받기
작은 애는 그대로 흙에서 꺼내 물꽂이 했고, 큰 애의 잎 하나를 잘라 물꽂이 해주었다. 물꽂이 해 둔 금전수 뿌리의 감자 같은 데에서 새로운 뿌리가 돋아나면 일단 반은 성공이다. 그때 흙으로 옮겨주고서 경과를 지켜보려 한다. 부디 나의 어설픈 심폐소생술(?)에도 강인한 번식력으로 제발 살아나길 바라면서.
물은 상온에 며칠 둬서 염소 성분을 날린 물을 사용했으며 냄새를 맡았을 때 물비린내가 살짝 날 때쯤 갈아주었는데, 적어놓은 물 교체 주기를 확인해보니 대략 주 1~2회씩 갈아주었다.
그래도 효과는 있는 듯싶었다. 물꽂이 해 둔 금전수 감자에서 새로운 뿌리가 슬며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흙에 옮겨 심어주기에는 아직 안정적으로 튼튼해 보이지 않아서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금전수는 있는 듯 없는 듯 오히려 관심을 덜 가져주는 게 금전수를 가장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것 같다는 나의 조력자 J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나는 해줄 건 다 해주면서도 애써 관심 없는 척 금전수를 잊고 지냈다. 처음에 잎이 노래진 이유가 과습인 것 같아서, 흙 상태를 점검하면서 2주에 한 번씩 줬던 물 주기를 좀 더 길게 늘여서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주는 걸로 바꾸었다. 금전수 뿌리에는 알감자 같은 게 달려 있는데 평소 거기에 물을 저장해놓기 때문에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다른 식물에 비해 오래 잘 살아있을 수 있다고 했다. 가끔은 내가 맞게 주고 있나 싶어서 당장이라도 금전수의 마른 흙을 촉촉이 적셔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생육 환경을 참고했던 블로거의 말을 듣기로 한다.
‘이쯤 주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 바로 물을 주기보다 며칠 더 있다 주는 것이 오히려 좋은 정도로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는 대표 식물입니다. 이곳(뿌리에 알감자 같은 덩이)에 물을 저장해두며 통통한 잎에도 물을 품고 있으므로 한동안 화분 흙이 말라 있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 물 주기는 최대한 게을리하는 게 답입니다. - 출처 : ‘view 뷰’님의 블로그 <텃밭연구소> 본문 글 -
그렇게 시간은 지나 12월이 되었다. 물꽂이를 시작한 후 약 3달 차가 되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노랗게 변한 애를 흙에서 꺼내 물꽂이 해놓고, 기존에 물꽂이 해서 새 뿌리가 나온 알감자를 흙에 심어볼까 한다. 따뜻한 봄에 해주었으면 더 튼튼하게 자리를 잡았을 테지만, 따뜻한 우리 집의 좋은 기운과 이번에 장만한 식물 등의 효과를 막연히 믿어보기로 한다.
안경에 김이 서린 채 집 안으로 들어선 J는 사무실 금전수는 전부 다 죽었다고 했다. 마침내.
겨울이 가기 전, 금전수를 떠나보내야 할 듯싶다. 정말 오랜만에 식물이 죽어 나가는 거라 이 느낌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식물 킬러’이던 시절에는 무작정 엄마한테 달려가서 내 손에서 죽어가는 가엾은 이 식물을 제발 살려달라 외쳤다. 하지만 이미 다 죽은 애를 데려와 당장 살려놓으라 멱살잡이(?)하는 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나 응급실 앞에서 하는 짓이다. 나는 응급실 앞에서 의사의 멱살을 잡을 수 있는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우리 엄마는 신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식물의 마지막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이 이때까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손으로 직접 처리(?) 해야 할 듯싶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는 중이다. 키우기 어렵다는 마오리 소포라나 칼라데아 오나타 같은 다른 식물들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집에 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금전수가 우리 집에서 죽어 나가는지. 어쩐지 내 통장 잔액도 최근 금전수의 생사 흐름과 비슷하더라.
죽어가는 금전수, 죽어가는 내 통장 잔액.
아무래도 제 팔자에는 돈복이 없나 봅니다.
계속
그리고 J도 계속된다.
베트남 앙비까사 토분은 귀여운 모양에 색도 예쁜데 무게가 아주 가볍고 가격도 저렴하다. 그러나 큰 단점은 토분 특성상 유약 처리를 하지 않아, 물을 주면 줄수록 화분 바깥으로 물이 배어 나와 겉면이 점점 흙색으로 물든다는 점이다. 특히 밝은 색의 토분일 경우는… 더더욱.
나의 오나타 군의 토분은 어두운 초콜릿 색인 데다가 제법 빈티지스럽게 변했지만, 금전수 토분은 딱히 멋스럽게 변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심지어 금전수는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돼서 진짜 가끔 줬을 뿐인데도 결국은 토분 겉면이 얼룩덜룩 흙색으로 물들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