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4]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4]
엄마, 대체 친자식이 누구야?
황당한 얘기지만 어느 날 갑자기 화분에 괜한 질투가 나는 것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 아침, 발코니에 걸터앉아 애지중지 이파리를 소중히 매만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뭔가 요상한 기분이 들었고, 엄마의 관심을 듬뿍 받는 화분들에 질투와 시샘이 치솟았다. 꾀죄죄한 몰골로 침대에서 뒹굴던 나는 서운한 감정을 차마 숨기지 못한 채 입을 삐쭉 내밀었고 큰소리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화분한테 하는 것만큼 엄마 딸한테도 관심 좀 줘봐 봐. 엄마 진짜 자식은 난데, 나한테는 관심이 하나도 없으면서 화분이 나보다 더 소중한가 봐? 대체 누가 엄마 친자식인지를 모르겠네.”
엄마는 호로록 소리를 내며 믹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뜻밖의 봉변이라도 당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콧방귀를 흥 뀌더니 이내 비웃었다.
“너 웃긴다? 왜 화분에 질투해?”
황당하다는 엄마의 반응은 당연했다. 엄마의 표정을 보고 살짝 움찔했지만 나는 지지 않고 질투심을 활활 뿜어냈다.
“아니, 아침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화분에 가서는 이리 쓰다듬고 저리 쓰다듬으면서 예뻐 죽겠다고 하잖아. 나한테도 좀 해줘 봐. 예쁘다고 쓰다듬고 물도 자주 주는 것처럼, 나한테도 관심을 좀 쏟아보라고.”
엄마는 말없이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사실 화분에 질투가 솟은 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이 내 진심이었고 서운한 감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엄마가 드디어 한 마디 뱉었다.
“얘네는 말대꾸를 안 하잖아.”
짧고 굵은 엄마의 대답을 듣자마자 묵직한 무언가가 날아와 나를 관통했고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제대로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한테 ‘팩트 폭행’을 당했다.
말대꾸할 줄 모르는 화분들은 엄마가 만지면 만지는 대로, 만져지면 만져지는 대로 가만히 엄마의 손결을 느꼈다. 엄마가 물을 주면 주는 대로 냠냠 잘 받아먹고는 보란 듯이 더욱 파릇파릇해졌다. 그래, 그러니까 얼마나 예뻐,라고 덧붙이는 엄마의 말이 반박할 수도 없는 전부 맞는 말이라 뭐라 받아칠 말도 없었다. 말대꾸하는 친자식은 화분에 완패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엄마의 큰 한 방이 순간 너무 웃겨서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깔깔대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몇 년 후 자취를 시작한 나는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그때가 떠올라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우리 모녀는 그때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꺼내 계속 우려먹어도 바로 그 자리에서 배꼽 잡고 깔깔 웃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맞는 말 했지 뭘. 너는 내가 관심을 좀 주려고 하면, 왜 관심 주냐면서 날 좀 내버려 두라고 말대꾸하면서 도망가잖아. 근데 걔넨 말대꾸를 안 하잖아. 관심을 주면 주는 대로 잘 받아주고 얼마나 예뻐.”
아무래도 2차전이 시작된 것 같았다. 엄마의 말을 시작 신호로 받아들인 나는 다시 말을 받아쳤다.
“엄마, 화분들도 여러 가지 성격들이 있잖아. 물을 좀 덜 줘야 건강한 애들이 있는 것처럼. 관심을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는 애들이 있다면, 나라는 화분은 적당한 관심만 주고 어느 정도는 내버려 둬야 쑥쑥 크는 성격을 가진 화분인 거야. 엄마는 엄마가 ‘화분 전문가’인데 그것도 모르나? 엄마, 나도 엄마 화분이여. 내가 잘 클 수 있도록 엄마가 협조를 잘해줘야 쑥쑥 크지. 엄마가 환경을 잘 조성해줘야 내가 무럭무럭 클 수 있는 거야. 잘 좀 키워봐.”
내 말을 들은 엄마는 황당하다는 듯 허허 웃었고, 드디어 말대꾸를 성공한 나도 허허 웃었다.
엄마의 화분들을 몇 개 가져와 자취방에 놓았더니, 녀석들이 초록빛 존재감을 잔뜩 뿜어내며 우리 집 빈 곳 사이사이를 메꿔주어서 방 안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화분을 직접 키우기 시작하니까, 엄마가 왜 화분을 키웠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요즘에 나는 자고 일어난 부스스한 몰골을 하고 커튼을 걷으러 발코니로 나갔다가, 간밤에 내 화분들에 별일이 없었는지 한참을 들여다보며 확인하곤 한다.
이놈은 이런 모양이라 예쁘고 저놈은 저런 모양이라 예쁘다. 내가 물을 주면 보란 듯이 더욱 쌩쌩해져서 파릇파릇해졌다. 고작 물만 줬을 뿐인데, 어느 순간 키가 쑥 커져 있거나 줄기 군데군데에 귀여운 새순이 돋아나 있었다. 화분들은 만지면 만지는 대로, 만져지면 만져지는 대로 한결같이 가만히 내 손결을 느껴 주었다. 혹여 진드기가 생기거나 비실거리면서 잎이 노랗게 말라가면, 내가 대체 뭘 잘못했나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서 더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별 탈 없이 쑥쑥 크는 녀석들이 기특했고,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존재가 내 마음 사이사이를 메꿔주어서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반려 식물'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너도나도 ‘식집사’가 되나 보다.
그런데 엄마는 아직도 내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엄마, 그래서 대체 친자식이 누구야?
계속
우리 모녀는 '식물을 키운다'는 말보단 '화분을 키운다'라고 표현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