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0]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0]
엄마의 취미는 화분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식물을 키운다'라고 안 하고, 맨날 '화분을 키운다'라고 말한다)
엄마는 꽃 화분이어도 좋아하고, 파릇한 잎을 뽐내는 화초여도 좋아하고, 앙증맞게 작은 크기여도 좋아하고, 정글을 축소해놓은 것처럼 한가득한 크기여도 좋아한다. 정말이지, 우리 엄마는 종류나 크기는 상관없이 모든 화분을 예뻐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의 화분 개수가 점점 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우리 집 발코니를 통으로 차지하다 못해 집 안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심지어 화장실 세면대 위에까지 점령하기 시작했다. 뭐,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쭉 함께 자라 온 내 형제와도 같은 터라 그들의 존재가 어색하다거나 낯설지는 않았다. 엄마의 화분들은 싱그러운 존재감을 제각각 뿜어내며 우리 가족의 사소한 일상생활까지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잠이 덜 깬 붕어눈을 비비며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피고 지고를 거듭하는 녀석들 너머, 그에 맞춰 심고 파내기를 거듭하는 엄마의 모습을 쭉 지켜보다 보니 어느덧 그들과 동거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우리 집이 이사했는데,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우리 집 화분 개수를 고갯짓으로 대충 세어 보고는 ‘어구 화분이 참 많다’ 하며 심호흡을 여러 번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아저씨들의 끌차에 실려 줄줄이 들어오는 화분 행렬을 보니 ‘우리 집 화분이 이렇게나 많았었나?’ 새삼 실감했고, 무슨 거대한 식물원이 통째로 이사라도 오는가 싶어서 조금은 웃겼다. 새 가구들이 속속히 도착해 빈방을 채우기도 전에 이미 발코니는 물론이고 집 안 구석구석부터 화장실 세면대 위에까지, 좋은 자리를 제일 먼저 선점한 건 역시나 나의 ‘초록 형제들’이었다. 짐 정리하느라 땀에 절어 축 처져 있는 우리 가족들의 몰골과는 반대로 녀석들은 아주 싱그러운 모습으로 새집에서 맞이하는 여유를 잔뜩 만끽하고 있었다.
친구네 집 상전은 그 집 강아지라던데 아마 우리 집 상전은 엄마의 화분들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 글을 쓰는 무렵, 어쩐 일인지 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이 무슨 거대 식물원이냐며 잔뜩 부풀린 말로 엄마의 취미를 실컷 놀리곤 했던 내가.
그랬던 내가 지금은 엄마와 똑같은 취미를 갖고 있었다. 텅 빈 자취방이 허전하다며 엄마에게서 한두 개씩 얻어 온 화분들과 예쁜 수형에 반해 내 손으로 직접 사 본 화분들로 집안 이곳저곳을 채우다 보니, 놀랍게도 나는 9개의 화분을 키우는 엄마, 식집사가 되어있었다.
요즘 나의 취미는 화분을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