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장롱면허(?)에 불과했던 나의 홈가드닝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1]

by 반년작가

1평 남짓, 작은 숲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1]


한낱 장롱면허(?)에 불과했던 나의 홈가드닝


+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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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가 유난히 극심하던 시절, 자의든 타의든 나를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이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서로서로 거리 둬야만 했던, 고독했던 그때를 기억하는가? 그 바람에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집콕 생활’을 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보았던 한 인터넷 기사에서는 ‘식집사’와 ‘식멍’과 같은 신조어의 뜻을 풀이해주면서 요즘 트렌드는 ‘반려 식물’을 키우는 ‘홈가드닝’이 대세라고 말했다. 게다가 ‘초보’ 식집사란 태그를 단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쑥 늘더니 너도나도 자신들이 키우는 화분 사진을 SNS에 올려 자랑하거나 블로그에 식물 일지를 쓰며 ‘덕질’을 시작했다. 화분을 키우는 건 우리 엄마나 나이 든 사람들이 주로 즐기는 취미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핫 트렌드가 될 줄이야. 아무래도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이래저래 늘다 보니, 홈가드닝 외에도 ‘레몬 딜 버터 만들기‘나 ‘달고나 커피 만들어 먹기’와 같은 챌린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그때 당시 반짝 이슈로 떠올랐던 걸로 기억한다.


+ TMI지만, 트렌디(Trendy)한 거랑 만사 귀찮은 일에는 딱히 관심 없어하는 나는 꾸덕꾸덕한 크림이 될 때까지 휘젓느라 ‘팔 떨어질 뻔’했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아예 시도조차 안 했다. 역시 커피라면 얼죽아, 얼음 동동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최고다.

어커아 (어차피 커피는 아메리카노) <출처 : 유튜브 탱키 박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 일부 기업들은 전면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회의는 화상회의로 대체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우리 팀한테는 같은 하늘, 다른 세계 이야기일 뿐이었다. 회사 내부가 재택근무 이야기로 시끌벅적할 때, 우리 팀 팀장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우리 팀은 재택의 ‘재’자도 꺼내지 말고 아예 기대조차 하지 말라며 아주 강력히 거부했다. 어린 아들과 와이프가 집에 있어 맘 편히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뭐, 그렇다면 팀장님을 뺀 희망자에 한한 재택근무를 권장하면 될 텐데, 내 몸은 소중하니까. 근데 왜 굳이 팀 전체가 코로나 속을 뚫고 몽땅 출근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그 끝에는 팀장님의 진짜 이유가 툭 튀어나왔다.


"나 심심해"





아무튼, 제목에도 이미 적혀있지만 나는 ‘중고 신입’ 식집사이다.


그런데 왜 ‘중고 신입’이라고 쓰고 그들과 나의 출발 선상을 나누는 건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사실 실력 부분에서는 나도 그들과 똑같은 초보 식집사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나 자신을 ‘중고 신입’ 식집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아예 없는 무경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전 글에서 이미 말했지만 화분 키우는 걸 좋아하는 엄마의 취미 탓에, 나와 동생은 온 집안이 화분 천지였던 ‘작은 식물원’에서 크고 자랐다. 아마도 화분들과 동거한 지는 못해도 30년이 훌쩍 넘었을 것이다. 훌쩍 흐른 긴 시간만큼이나 엄마의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기초 지식 정도는 조금은 있겠다 싶겠지만, 정말이지, 단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조금이라도 내 손을 탄 화분들은 곧 이유 없이 시들시들 말라가더니 번번이 미라처럼 바싹 말라죽었다. 그때야 알았다. 우리 집에는 식물 전문가와 식물 연쇄살인마가 함께 살고 있었단 걸.


그랬던 내가,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자취방이 적적하다고 엄마에게서 화분을 하나둘 얻어왔다. 내가 화분 좀 몇 개 달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엄마는 이미 나에게 반강제로 줄 화분들을 미리 준비해둔 상태였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공식 식집사가 되어 화분들을 키워온 지 3년이 흘렀다. 뭘 몰랐던 오랜 과거는 그렇다 치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이제는 풍월을 읊을 줄 아는 제법 능숙한 3년 차 ‘경력 사원’이 되어 나의 고객들의 ‘니즈(needs)’를 척하면 척, 아주 만족스럽게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나의 3년은 ‘물경력’이었던 것이다.



당신이 만약 직장인이라면 아마도 ‘3, 6, 9’ 법칙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직장과 내가 연인 사이라도 된 것처럼 직장 권태기가 3년, 6년, 9년 주기로 정말 귀신같이 찾아온다는 법칙이다. 그리고 속한 업계 상황과 개인이 생각하는 이직의 최적 시기와 연차는 제각각 다를 테지만, 보통은 3년 차쯤 적당히 익은 경력 사원이 되어 슬슬 이직을 고민해보거나 경력직 이직을 목표로 차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


나는 3년 차 식집사이다. 엄마는 ‘식물 연쇄살인마’인 나도 손쉽게 키울 수 있는 다육식물들만 챙겨주었다. 엄마 말대로 정말 쉬웠다. 물만 주면 끝이었다. 그마저도 다육이들은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없는 애들이라 작은 화이트보드에 물 준 날짜를 적어놓고 대략 보름 간격으로 물 주는 기계처럼 물을 주었다. 물론 키우는 동안 이런저런 우여곡절은 몇 번 있었지만 3년 동안 내가 화분을 ‘키워’ 본 거라고는 물 주고, 물 주고, 또 물 주고, 3년 동안 물만 준 게 전부였다. 화분을 키우다 보면 반드시 맞닥뜨린다는 그 분갈이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대체 무얼 해 온 걸까?


기특하게도, 내가 딱히 해준 게 없는데도 녀석들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줬다. 다행히도 우리 집 발코니는 햇빛이 잘 드는 편이라 화분들이 건강하게 쑥쑥 크기에는 딱 좋은 환경인 듯싶었다.


그리고 직장인 ‘3, 6, 9’ 법칙처럼 3년 차에 식집사 권태기가 찾아왔다. 딱히 신경 써주지 않아도 쑥쑥 잘 커주는 화분들이 예뻤지만, 손이 덜 가는 만큼이나 막 친해진 것도 아니라서 마음도 서먹했다. 게다가 내가 직접 골라 산 화분들이 아니라 그런지 그냥 본가의 식물원을 살짝 떼어다가 아주 작은 체인점을 운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3년 차 식집사는 이직해야 하는지, 업종을 바꿔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 열혈 식집사가 된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집 근처 비닐하우스 화원을 함께 방문했다가 그만 마음을 뺏겨 버렸다.



이곳에서 화분과 식물을 구매하면 분갈이가 공짜!



난생처음 내 발로 직접 방문해 본 화원의 분위기는 아주 후끈거렸고(아주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지루하고 권태롭던 식집사의 삶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화원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이 화분 저 화분 구경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종류가 엄청 다양했고 신기하게 생긴 화분들도 많았고 수형이 예쁘게 생긴 화분들도 많았다. 그동안 엄마가 야금야금 화분을 챙겨주었으니 딱히 가볼 이유가 없었고, 근교로 나갈 때마다 종종 보이는 비닐하우스 화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요새는 인터넷으로 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필연의 강력한 느낌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내 마음을 빼앗은 녀석 둘을 데려와 우리 집 새 식구로 맞이하자마자 나의 3년 차 권태기는 거짓말처럼 사르르 녹아버렸다. 호기롭게 들여놓은 새내기들 덕분에 1평 남짓한 나의 작은 숲이 다채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다만, 우리 집 새내기들이 키우기 상당히 까다로운 아이들이란 사실은 빼고.



3년 차 식집사는 인제야 비로소 진정한 홈가드닝의 세계를 알아가고 있는 듯싶다. 엄마의 작은 식물원에서 화분들과 동거한 지는 30년. 자취를 시작하며 공식 식집사의 삶을 살게 된 지는 3년. 하지만 지난 3년은 그냥 근속 연수만 늘어 연차가 쌓인 것뿐, 풍월을 읊기에는 나 자신이 아직 미숙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정성이 부족했다. 3년이라는 그 아까운 시간이 그저 물경력이 되어 녹아내렸지만, 하지만 아무렴 어때. 이제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면 된다. 새로 분갈이도 하고 자구도 옮겨 심으면서 뒤늦은 ‘현장 경험’도 쌓고 인제야 좀 친해지는 중이다. 더불어 우리 집 헌내기들이 서운해하지 않도록 골고루 애정을 들이면서 말이다. 그동안 익숙해서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매일 설레고 보람찼으며 덩달아 내 마음의 숲에도 빛이 드리웠다.


이제 고작 3달 차밖에 안 된 ‘중고 신입’ 식집사일 뿐이지만.





이전 글과 함께 올렸던 우리 집 화분들 그림을 혹시 보았다면, 아마도 당신은 우리 집 신입생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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