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r크루즈의 행방불명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2]

by 반년작가

1평 남짓, 작은 숲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02]


톰r크루즈의 행방불명




맨 처음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를 구상했을 때 ‘오, 이곳에 우리 집 화분들 얘기를 맘껏 떠들어 대야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신명 나게 어깨춤을 췄다. 앞으로 해 줄 이야깃거리가 아주 한 보따리가 있다. 요즘에 내 모든 관심이 식집사 생활에 쏠려있다 보니 최근 이모저모 새롭게 경험해 본 일들에 대해 맘껏 떠들어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나 보다. 내 경험이 맞든 틀리든 간에, 마치 육아를 처음 시작한 초보 맘처럼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많아지고 덩달아 고뇌도 많아지는, 오늘도 요란한 내 식집사 생활의 한 조각을 살짝 풀어보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 ‘육아’의 대상이 인간 아기가 아니라 초록 식물이라는 현실이 조금 웃프지만.


특히나 나의 식집사 생활에 가장 큰 활력이 되어주는 우리 집 새내기들부터 제일 먼저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소식이 끊겨버린 그때 그 녀석이 이 야심한 새벽에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공식 식집사가 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엄마의 화분이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와중에 머리를 감아야 하고 동시에 양치도 하며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던, 편도 한 시간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 신세였다. 자취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 이야기니까, 사람들이 왜 식물을 키우면서 힐링하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할 때였다. 집에 돌아오면 날 격하게 반겨주고 핥아주는 강아지도 아니고. 물론 그땐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라서 식집사 유행이 그다지 크지 않은 시점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잠시나마 식집사 생활(이라고 부르긴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을 살짝 맛보았던 경험이 있다. 잊을 만하면 종종 생각이 나던, 그 이름 하여 톰r크루즈. 어디서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지금은 소식조차 모르는 그 녀석.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톰r크루즈는 나의 첫 화분이었다. 아마 그전에도 식물을 몇 번 키워본 적은 있었겠지만 딱히 기억이 안 나기도 하고,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손에서 죽지 않은’ 내 첫 화분이었다. 그리고 최초로 화분에 애칭을 붙여 준 녀석이기도 했다. 이름을 보고 대충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톰r크루즈는 내가 사무실에서 키우던 방울토마토의 이름이었다.




엄마 아들이 준 소품을 화분에 올려놓으니 감성 넘치는 화분이 되었다.



시작은 ‘토마토마’였다. 처음부터 ‘톰r크루즈’라고 부른 건 아니었다. 어느 여름날, 사무실이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져서 갑자기 뜬금없이 다이소에서 방울토마토 씨앗을 사 왔다. 나와 함께 갔던 옆팀 직원은 캐트 닙(캣닢, catnip)을 한번 키워보겠다고 해서 캐트 닙 씨앗도 사 왔다. 나는 나 주려고, 옆팀 직원은 집고양이 주려고. 우리 두 사람의 최종 목표는 아주 뚜렷했고 돌아오자마자 씨앗을 심어 물을 듬뿍 주고는 사무실 창가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일주일 정도 지나자 귀여운 새싹이 돋아났다. 물론 이때도 화분을 잘 돌봤다고 하기에는 그냥 열심히 물을 주고 또 물을 준 것밖에 없었지만, 듬뿍 물을 받아먹은 새싹이 폭풍 성장하는 걸 보면서 엄청난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원래 방울토마토가 이렇게 폭풍 성장하는 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빛 한번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 창가는 항상 그늘졌다. 게다가 사무실이 고층이라 통유리 너머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좋았으나 그것은 인간의 시야각일 뿐, 심지어 창문을 활짝 열 수가 없어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환경이었다. 그런 열악한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녀석은 아주 쑥쑥 잘 커 주더니 매일매일 눈에 띄는 변화로 매력을 어필했다. 흙이 아예 없을 정도로 뿌리가 많이 자랐길래 조금 더 큰 화분으로 옮겨주고, 새 화분에서 새 출발을 시작한 녀석을 응원하며 귀여운 태명(?)을 좀 더 늠름한 이름으로 바꿔주었다. 한동안 내 직장 생활의 낙은 톰r크루즈였다. 일하다가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서는 머리를 들이밀어 과열된 머리를 식혀주었다. 우리는 알콩달콩 사이좋게 지냈다.




네. 이 녀석이 바로 톰r크루즈입니다.



그러나 고뇌와 위기가 찾아왔다. 일단 첫 번째, 대체 열매는 언제 열리는 건지 조금씩 답답해졌다. 정확한 정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인터넷 후기들을 찾아보니 대략 2~3달 정도면 노란 꽃이 피고 열매도 맺는다고 했다. 그러나 톰r크루즈는 몸체만 계속 커지고 도통 열매 맺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와 동시에 키우기 시작했던 옆팀 직원의 캐트 닙도 아주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고, 집에 가져다주니 고양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니, 하루빨리 난 먹어야 하는데 왜 너는 내게 열매를 주지 않으려 하는지. 나랑 그렇게 알콩달콩 잘 지내놓고 인제 와서 이러기야?


후다닥 달려가서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내가 처음 씨앗을 심었을 때가 7월 초였는데, 혹시 너무 늦게 심어서 생장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아마 방울토마토로서의 본분을 잊고 그냥 나무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엄마는 추측했다.


두 번째, 뭔가 수포처럼 오돌토돌한 포진 같은 게 줄기에 생기더니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서 정확히 그게 무슨 원인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보기에 너무 징그럽기도 하고 상태를 보아하니 녀석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 또는 좋은 해결 방안은 없는지, 나와 비슷한 사례가 없나 인터넷을 뒤적거려 봤지만 결국 명쾌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시간은 흘러 흘러 9월이 되었고 때는 추석 연휴 전날이었다. 긴 연휴 기간 아주 푹~~ 쉴 생각에 너무 기뻐 연신 ‘오예 오예’를 외치며 조기 퇴근에 몸을 맡기고 마냥 들떠 있었다. 톰r크루즈를 사무실에 두고 가면 긴 연휴 기간에 말라죽어있을까 봐 걱정돼서 집으로 챙겨가기로 했다.



누가 봐도 신이 나서 흔들린 사진



그것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톰r크루즈의 행방을 궁금해했을 땐, 이미 톰r크루즈는 실종 상태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추석 때 집으로 챙겨간 이후로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나와 친하게 지냈던 톰r크루즈의 존재를 그렇게 잊고야 말았다. 엄마에게 녀석의 행방을 물었으나 엄마의 답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가 처리(?)한 듯싶은데, 누굴 준 건지 아니면 집 앞 화단에 잘 옮겨 심어주었는지 정답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톰r크루즈는 그때 이후로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이다. 때는 2019년 7월이었고, 9월까지 약 두 달 동안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방울토마토의 곁순 제거와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아서 열매가 안 열렸을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도 화분들의 가지치기해주는 건 내게는 어렵기만 한 과제인 셈인데,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무럭무럭 잘 크길래 그렇게 내버려 두면 다 되는 줄 알았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리고 통풍도 안 되고 햇볕도 들지 않는 그늘진 사무실에서 방울토마토를 건강하게 키워낼 생각을 했다니, 놀랄 노 자다. 한참 잘 이어가던 이 이야기의 끝이 갑자기 뚝 끊기듯이 급히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지만, 슬프게도 이것이 실제 톰r크루즈와의 서사였고 결말이었다.


이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얘기하자면,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소식조차 모르지만, 녀석은 (내 첫사랑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직접 사서 애칭까지 붙여주었던 나의 첫 화분이었다. 잊을 만하면 어느 날 문득 떠올라 그때의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톰r크루즈는 야심한 새벽만 되면 갑자기 생각이 난다던 전남친과도 같은 존재였고, 첫 화분이었던 만큼 쉽게 잊히지 않았다. 녀석의 최후가 어땠는지 사실 알 것도 같지만, 어디선가 무럭무럭 잘 자라나서 탐스러운 열매도 맺고 자식부터 손자의 손자까지 번식하여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지낼 거라 믿고 있다.




톰r크루즈의 행방불명.

누가 우리 톰r크루즈 소식을 모르시나요?




계속


* 엔딩 BGM
곽순옥 -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QWvFiEsJR1g

(℗ 오아시스레코드 뮤직컴퍼니 199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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