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둘째날 : 리옹-안시
아침이 밝았다. 침대 이층에서 눈을 떴다. 생각보다 푹 잘 잤다. 방에서는 누군가 아직도 코를 골고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이부자리에서 뭉개곤 하는데,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설레고 낯선 새 하루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어서 새로운 사건을 일으키거나 직면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일어난 누군가가 창문을 살짝 열어 놓았다. 간밤에 잠시 앉았던 중정이 내려다보이는 창문이다. 어떤 남자가 소심하게 튕기는 기타 소리가 들려 왔다.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내려다보니 독일 할아버지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 옆 침대에서 웬 남자가 속옷 한 장만 입고 코골이 중이었다. 내가 잠든 뒤 입실한 모양이었다. 맞은편 침대 이층에 여자가 자고 있는 걸 꿈에도 몰랐나보다. 아무렴 어때. 이 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서로 없는 사람처럼 흐린 눈으로 다녀서 큰 불편은 없었다.
로비로 내려가 호스텔 조식을 챙겨 먹었다.
<조식을 어떻게 먹었냐면>
우선 뭐가 있는지 쓱 둘러본다. 간소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작은 뷔페다.
바게트 한 토막의 옆구리를 반 갈라 버터와 얇은 햄을 끼워 넣었다. 커피를 한 컵 가득 받아 곁들인다. 병에 담긴 요거트 뚜껑을 열고 곡물 플레이크와 사과 잼을 넣어 섞는다. 삶은 달걀도 빠뜨릴 수 없다. 달걀 껍질을 까다가 문득 전에 읽은 글을 생각한다. 독일에는 삶은 달걀을 두는 전용 받침이 따로 있는데, 거기에 달걀을 얹어 나이프로 윗부분을 잘라내고 티스푼으로 안쪽을 파 먹는다고. 그런 독일에서 어느 한국인이 삶은 달걀을 무심히 집어 테이블 위에 도르륵 굴리자 주변의 모든 테이블에서 사정없이 떨리는 눈동자들이 느껴졌다나. 하긴 굴려야 껍질이 잘 까지지. 그걸 언제 티스푼으로 떠 먹고 있나. 한국인인 나는 이야기 속 그/그녀에게 공감한다.
먹고 있자니 팬케이크가 나온다. 아니, 이런 건 진작 줬어야죠. 아침은 많이 못 먹는 편이지만 저건 포기 못 한다. 갓 구워 나온 따끈한 팬케이크에 살구 잼을 얹어 테이블로 돌아오는데, 벽에 붙은 목제 선반에 과일이 한가득 들어 있다. 아, 한국에서 이렇게 되어 있었다면 분명히 모형이었을 거다. 손질하지 않은 통과일 그대로 담겨 있는 과일 무더기에서 오렌지를 하나 집어다 깠다. 신선하고 향긋하다.
이렇게 모든 영양소를 고려한 아침식사가 끝나 간다. 완벽해.
커피를 한 컵 가득히 더 받아 마시고, 방에 가 짐을 챙겼다. 오늘은 안시에 가야 한다. 화장실에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선크림을 발랐다. 유럽의 햇살은 생각보다 강렬하다. 선크림과 선글라스는 멋이 아니라 필수다.
옆에 낯선 사람이 서서 화장을 한다. 딱 보니 한국인이다. 보자마자 알게 된다. 인사하고 스몰톡을 주고받아 보니, 나랑 같은 버스를 타고 안시에 가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친구랑 같이 왔다고 하는데, 터미널에서 다시 보겠거니 하고 먼저 출발했다. 숙소에서 터미널까지 도보 30분. 짐 가방을 끌고 가기에는 조금 먼 거리지만, 이보다 큰 가방을 양손에 끌고 지하철이 파업한 파리를 헤맸던 과거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리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걸어갔다.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려면 관광지보다는 주택이 많은 동네를 걸어서 돌아다니는 게 좋다. 그 사람들이 사는 집, 식료품을 사는 가게, 아이를 맡기는 유치원과 학교, 이런 것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나는 특히 프랑스 사람들이 창가에 내놓는 화분을 구경하는 게 좋다. 집집마다 다른 식물 취향, 그만큼 길러내기 위해 들였을 애정이 보인다. 어떤 집은 꽃을, 그 아랫집은 덩굴 식물을 좋아한다. 건물 입구에는 딱 한 장 보도블럭을 들어내고 사각형으로 드러난 좁은 흙에 나무를 심었다. 곳곳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그래피티가 우범 지역처럼 느껴진다면, 이렇게 가꾸어진 식물들은 누군가 나를 지켜봐 줄 것 같은 안도감을 준다.
쾌청한 하늘 아래, 가방을 돌돌 끌며 터미널로 걸어갔다. 론 강을 건너 지하도로 들어서는데 잠시 길을 잘못 들 뻔했다. 웬 아주머니가 “길은 저 쪽이야!”하고 알려 준다. 딱 봐도 터미널에 가는 사람처럼 보였나보다. 고마워요. 구글 지도를 보며 터미널로 올라가는 길엔 계단이 있고, 내겐 바퀴 달린 짐 가방이 있었다. 들고 올라가야지 어쩌겠는가. 손잡이를 밀어 넣고 가방을 들어올리는 순간, 웬 아저씨가 “너 도움이 필요하니?” 하며 가방을 번쩍 들고 꼭대기까지 옮겨 준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런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힘이 난다. 그리고 나도 남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를 찾다 보니 아침에 호스텔에서 봤던 한국 친구가 자기 일행과 함께 서 있었다. 그 둘과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탔다. 자리는 당연히 따로 떨어져 있으니, 얘기를 나누며 갈 수는 없다. 그들은 저 뒷자리에,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조금 가다 보니 옆자리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대화를 나눠 보니 그렇게까지 아저씨는 아니었다. 나보다 한 살밖에 안 많은데, 세월이 정통으로 다가올 때 피하지 않은 것이다. 옆자리 청년 ‘다니’는 안시에서 멀지 않은 호숫가 도시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댔다. 기회가 닿으면 놀러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마도 거기까지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서양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다니는 내 나이를 한 번에 맞히지 못했다. 동양인은 대부분 어려 보이니까. 우리가 비슷한 또래라는 걸 알고 나서, 다니는 나에게 예쁘다고 했다. 이 얘길 친구들에게 메신저로 중계하자 이탈리아계 아니냐며 웃었다. 그건 모르겠고 말이 많은 걸 보니 독일계는 아닌 것 같아.
다니에게 안시는 어떤지,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안시는 작은 도시야. 하루면 다 볼 수 있어. 그는 대답했다. 파리 사람은 파리지앵, 리옹 사람은 리오네, 그럼 안시 사람은 뭐라고 불러? 물어보니 ‘아네씨앙’이라고 한다. 외국인으로서 이런 점이 재미있다. 한때 한국에서도 뉴요커, 파리지앵처럼 서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을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다. 그 때 정해진 명칭이 ‘서울라이트’였는데,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서울러’라고 하지.
다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시에 금방 도착했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은 시각, 옆 도시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 ‘아는 사람’이 3명 생겼다. 안시 터미널에 내려 한 남자, 두 여자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교통카드를 샀다. 이 도시에 얼마나 머물게 될지 정하지도 않았으면서 10회권을 사도 될까, 싶었지만 이후 그것은 제법 현명한 결정이 된다.
안시에서 학교에 다니는 보라와 저녁에 시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그 사이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오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12번 버스의 악몽이 시작된다. 나는 시내에서 숙소까지 잘 찾아가고 있었다. 3번 버스를 12번으로 갈아타야 해서 우선 내린 다음 두리번거리는 내게 웬 할머니가 다가왔다. “너 길을 잃었니? 내가 도와줄게!” 할머니는 즐거워 보였다. 어디에 가냐고 묻고 대충 12번이 써진 버스에 나를 밀어넣어 줘서 고마워요. 친절한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길도 안 잃었고 그 버스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였어요.
두어 정거장을 지나며 버스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눈치채고 기사님께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는 종점에서 다시 돌아서 나를 올바른 곳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종점에서 시원하게 담배를 하나 태우고 나도 태우고 출발한 기사 아주머니. 한참을 가다가 나를 불러 지금 내리라고 했다. 그래서 내렸더니 또 다시 엉뚱한 정류장이었다.
결국 12번 버스만 세 번을 타고 간신히 도착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이미 온몸은 땀 범벅이었다. 그러나 고지대에 위치한 숙소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알프스 산맥이 피로를 싹 풀어 줬다. 시내와는 공기가 또 달랐다.
짐을 내려놓고 바깥을 좀 걸었다. 내려쬐는 햇볕 아래로 피어 있는 풀도, 꽃도 전부 낯선 것이었다. 기화요초란 이런 것인가. 돌 틈으로 작은 도마뱀이 사삭, 몸을 감췄다. 그 낯섦을 만나러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여기까지 왔다.
저녁까지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보라를 만났다. 보라가 안시 구경을 시켜 주고, 프랑스 전국에서 3번째로 맛있다는 젤라또도 함께 먹었다. 그러고보면 보라는 옛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도시에서도 나를 데리고 그 동네 곳곳을 소개해 줬었다. 같이 안시 호숫가를 걷고, 운하를 보고, 샐러드랑 디저트까지 거한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어떻게? 12번 버스 타고!
처음 갔던 방식대로 3번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내려 12번으로 환승할 정류장에 앉았다. 이번엔 제대로 된 방향의 정류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 자리 할아버지가 여기 12번 버스는 안 올 거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조금 전 헤어진 보라로부터 최근 안시의 버스 노선이 개편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 때문에 보라는 자기가 사는 도시인데도 노선을 헷갈려하며 결국 버스 한 대를 놓쳤다. 어라, 조금 고민됐다. 안 되면 걸어가지 뭐, 오늘 안에는 도착할 테니까. 속 편하게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왜냐면 이 날 12번 버스에 관해 남의 말을 들으면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아서.
할아버지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12번 버스가 안 올 거라며 내게 말을 걸었는데, 조금 기다리다 보니 왔다, 내 12번. 할아버지 말 들었으면 어쩔 뻔했나. 아니 대체 왜 온 '아네씨앙'들이 전부 내가 12번 버스 타는 걸 막으려는 거죠?
어쨌든 돌아온 숙소에서 씻고 옷 갈아입고 11시도 안 되어 기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