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여행

3. 셋째날 : 안시

by 바니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화들짝 놀라 우이, 하고 대답하니 조식 시간이 곧 끝난다고 알려 주었다. 조식까지 미리 결제했는데 내가 나오지 않으니 호텔 직원이 깨워 준 것이다. 일층으로만 되어 있는 구조로, 로비에서 짧은 복도만 지나면 객실이 있어서 이런 친절을 베풀어 준 것 같다. 전날 알람도 맞추지 못하고 잠드는 바람에 아침식사를 놓칠 뻔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옷을 주워 입고 로비로 나갔다. 치우기 10분 전이었다. 빵, 햄, 요거트, 그리고 커피!


모든 걸 뱃속에 욱여넣고 방에 돌아와 창문을 열었다. 알프스 맑은 공기가 방으로 들이쳤다. 그러나 날이 흐렸다. 이런. 전날 본 호수가 너무 좋아서 날이 맑으면 수영을 하고 싶었는데. 조금 있으니 숫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영복 값이 굳었으니 기뻐해야지. 어제는 맑은 호수를 보았으니, 오늘 비 오는 호숫가를 걷는 것도 운치 있을 것이다. 또 누가 알아? 갑자기 날이 갤 수도 있는 것이다.


호텔은 시내에서 꽤 거리가 있어서, 짐을 다 챙겨 가지고 퇴실했다. 안시 시내로 나와 ‘내니백’서비스를 하는 곳을 찾았다. 유료 짐 보관 서비스다. 식당, 슈퍼, 옷가게 등 다양한 상점에서 겸업으로 운영한다. 내가 찾은 내니백은 까르푸시티에서 겸업으로 하는 곳이었다. 짐가방 하나를 하루종일 맡기는 데 6유로. 프랑스 물가 치곤 나쁘지 않다. 짐을 맡아 주는 청년이 넌 어디서 왔니, 예쁘다고 했다. 이 사람도 이탈리아곈가. 외국에서 외국인에게 듣는 ‘예쁘다’는 관광객에게 해 주는 립 서비스인지, 동양인을 쉽게 보고 들이대는 플러팅인지 구분하기 애매하다. 일단 칭찬으로 듣는 것이 마음 편하다. 고맙다고 말하며 길을 나선다. 짐을 맡겨버리고 홀가분하게 안시 구경을 했다. 오래된 중세 건물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며 곳곳에 흐르는 물 냄새를 맡았다. 호수와 이어진 작은 개울이 도시 곳곳을 흐르고 있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빨간 바탕에 흰 십자가 그려진 깃발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처음에는 스위스 국기인 줄 알았는데, 스위스 국기의 십자는 깃발 정가운데 적십자 마크처럼 좌우상하 길이가 동일하게 들어가 있다. 그럼 흰 십자가 빨간 깃발 끝단까지 사방으로 꽉 채운 깃발은 무엇인가. 찾아보니 사부아 지역을 뜻하는 깃발이었다. 영어로 ‘사보이’라는 발음이 많은 사람에게 더 익숙할 것이다.


과거 공국이었던 사부아 지역은 기병연대가 유명했고 프랑스 남동부와 몽블랑, 이탈리아 서북부까지 사부아에 속했다. 이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은 알프스 산맥의 ‘마멋’이다. 그래서인지 기념품 가게에서 마멋 인형, 마멋 병따개, 마멋 열쇠고리 따위를 잔뜩 팔고 있었다. 배에 음표 모양 스티커가 붙은 마멋 인형의 배를 눌렀다가 큰 소리로 흥겨운 요들송이 나왔다. 나는 놀라서 굳어 버리고, 가게에 있던 사람들은 박장대소했다.


골목을 걷다가 작은 성당을 발견했다. 안시에도 대성당이 있지만, 이 곳은 일반 성당이었다. 안시의 노트르담 성당. 건물 정면에 큰 글자가 적힌 석판이 박혀 있었다. 1566년 아들이 없었던 드 살 부인이 이 성당에서 하느님께 기도하여 아들을 얻었고, 그 아들이 바로 성 프랑수아 드 살(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이라고 한다. 이곳은 이미 성모의 기적으로 14세기부터 유명했다고도 쓰여 있었다. 그러면 들어가 보는 것이 인지상정. 내부는 다른 지역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스테인드글라스와 궁륭이 있는 예배당이었고, 강단 옆으로 마리아 상과 촛불이 준비되어 있었다. 비록 천주교인은 아니지만, 성당에서 초 값을 내고 기원을 담아 촛불을 켜는 것은 몇 번 해 보았다. 이 성당이 영험하다는 광고를 보고 들어왔으니 한 번 기도해 볼까, 하며 가까이 다가갔는데 촛불이 LED 양초였다. 파리 노트르담 화재 이후로 이렇게 바꾼 곳이 많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이 팍 새 버렸다. 전자 초를 켜고 기도할 거면 전자 기도를 하고 말지. 주님께 이메일을 쓰기로 하고 성당에서 나왔다.


비는 오다 말다 하는데, 잔뜩 흐린 하늘은 맑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호수 수영은 영 글렀다. 그래도 호수를 다시 보고 싶어서 호숫가를 한 시간 넘게 걸었다. 한 도시를 벗어날 정도로 커다란 호수, 끝이 안 보여 바다처럼 수평선이 있는 담수. 호숫가에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산들은 꼭대기에 만년설이 희었다. 그 산 너머에 뭐가 있을까. 멀리 보고 상상하게 되는 풍경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래, 그 산을 넘어가 보고 싶다. 산 너머는 쥬네브, 즉 스위스 제네바다. 안시에서 제네바까지 버스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 결심했다. 안시에 하루 더 묵고, 다음날 아침에 쥬네브 행 버스를 타기로.


시내에 있는 숙소를 찾아 예약하고, 보라를 한 번 더 만났다. 보라는 졸업작품 때문에 피폐해져 있었다. 내 오래된 어린 친구. 처음 만났을 때 스물한 살이었던 보라는 이제 서른이었다. 몸과 마음이 아파 학업을 쭉 이어가지 못하고 드문드문 공부하다가 마침내 졸업을 코앞에 둔 시기. 보라와 만나 옛날 이야기를 잔뜩 하고, 카페 테라스에 앉아 빗소리를 들었다. 실컷 내리던 비는 우리가 헤어질 즈음에 거짓말처럼 그쳤다. 이런 식이지.


나는 이번 여행을 위해 유심이 아닌 이심(ESIM)을 구입했다. 처음이라 몰랐는데, 이심은 핸드폰 배터리를 어마어마하게 빨리 소모한다. 보라와 놀던 도중 배터리가 2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져, 슬슬 충전을 해 볼까 하고 보조배터리를 꺼냈다. 이 여행을 위해 나는 구형 아이폰을 들고 갔다. 충전기 단자가 8핀으로 되어 있는 이 핸드폰을 위해, C타입 보조배터리에 8핀 젠더를 하나 끼워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새끼손톱만한 그 젠더는 정작 충전이 필요한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약한 숙소를 찾으려면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아야 하는데, 이번 숙소는 알고 보니 호텔도 아니고 에어비앤비처럼 개인이 내 놓은 집이었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핸드폰을 통해 이루어지는 숙박이었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핸드폰 충전을 해야만 했다. 내 젠더. 그 물건이 없으면 내가 가져온 보조배터리는 여행 내내 무용지물이 된다. 급한 대로 보라와 함께 프낙(FNAC)에서 충전기와 젠더 코너를 훑었지만 C타입을 8핀으로 바꿔 주는 젠더는 찾을 수 없었다. 보라가 권했다. “언니, 그냥 남은 배터리로 빨리 가서 숙소부터 찾아.” “역시 시대의 흐름은 젠더리스인가.” 그 와중에 개그를 쳐 봤다. 보라가 등짝을 때렸다. “이 언니, 여전하구만.”


보라와 헤어지고, 까르푸시티 내니백을 방문하여 낮에 맡긴 짐 가방을 찾았다. 이제 숙소로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숙소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열쇠를, 뭐라고? 열쇠를 보관한 위치와 숙소 위치가 따로따로라고? 이게 또 무슨 소린가 싶어 다시 읽어 보는데 핸드폰이 맥없이 꺼진다. 하.

가방 안에는 물론 보조배터리가 아닌 8핀 충전기가 들어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공공장소에 충전기를 꽂을 만한 콘센트가 흔치 않다.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몇 안 되는 충전기는 이미 누군가 선점하고 있기 일쑤고, 대부분 카운터에 맡기는 식으로 충전해야 한다. 나는 까르푸시티 앞 보도에서 잠시 고민했다. 이 핸드폰을 충전하기 위해 또다시 앉을 만한 가게를 찾아야 하나. 때는 이미 저녁이라 대부분 카페는 영업을 종료했을 시각. 선택지는 비스트로나 바 정도가 되겠다. 겸사겸사 저녁식사를 밖에서 하고 들어가자, 마음먹은 순간 누군가 말을 걸었다. “너, 도움이 필요하니?”


혼자 온 여행지에서 타인의 호의는 미안하지만 의심해야 한다.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재차 물었다. “어디서 왔니?” 보아하니 길 가던 사람이 아니라, 바로 앞 식당 아저씨다. 문 밖 길가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도와주러 나온 것이다. 이 아저씨는 딱 봐도 동양인인 나를 위해 순식간에 자기 핸드폰으로 번역 어플을 켰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어-아랍어 통역을 실행했다. 아, 아저씨도 불어 잘 못 하시는구나. “핸드폰을, 충전해야, 해요.” 또박또박 말하자 어플이 일을 잘 했는지, 아저씨가 자기 가게를 가리켰다. 통유리 안쪽으로 작은 테이블과 좌석, 그 아래쪽에 콘센트가 보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게에 들어가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고, 핸드폰은 조금이라도 빨리 충전되라고 비행기 모드로 바꿔 놓았다. 그러고 나니 꼼짝없이 이 아저씨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의 불어 실력은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가게는 레바논 식당이었고, 아저씨는 시리아에서 왔다. 대학에서 뭘 전공했냐고 묻기에 한국 문학이라고 했더니, 문학(Literature)을 세 번이나 못 알아들어서 또 다시 번역기가 일했다. 농담 삼아 “당신은 문학을 좋아하지 않나 봐요.”라고 말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그가 대답했다. “나는 문학을 좋아해. 예전엔 시를 썼어. 시리아에서 나는 변호사였지. 지금은 식당 셰프고.”


오래 전에, 전직 아프간 장관이 독일로 이주하여 피자 배달부로 일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그는 정보통신부 장관이었고 옥스퍼드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한 후 독일로 이주해 피자 배달을 시작했다던가. 이념과 정치, 그리고 전쟁이 개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 놓는지 엿본 것 같았다. 전직 변호사인 식당 요리사 아저씨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말했지만, 태어나 살던 삶의 터전을 강제로 떠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과정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고 지킬 가족이 있는 입장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뭘 묻기 어려웠다. 다행히 핸드폰이 빠르게 충전되어, 나는 가게를 나설 수 있었다. 최소한의 도리로 이 날 저녁은 이 식당의 레바논 음식을 포장해다 먹기로 했다. 고마움을 담아 작별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이제 정말로 숙소를 찾아야 한다. 그 전에 숙소 열쇠를 찾아야 한다. 안내 메시지를 따라 열쇠가 있다는 곳으로 가 보니 웬 길가 철조망에 주먹만한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남산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이 걸린 자물쇠들 중에, 숙소 주인이 보낸 사진과 대조하여 똑같이 생긴 자물쇠를 찾았다. 다이얼을 돌려 비밀번호를 맞히니, 주먹만한 자물쇠가 반으로 갈라져 열렸다. 그 안에 숙소 열쇠가 들어 있었다. 번호키가 뭔지도 모르나, 이 유러피안들은.


숙소로 찾아가 열쇠에 달린 전자 태그로 현관문을 통과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복도를 지나 내 숙소 문을 찾았다. 안내문-을 읽을 수 있는 휴대폰-이 없었으면 한 번에 찾기 어려울 것 같은 구조였다. 열쇠를 꽂아 돌리니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 아파트가 나왔다. 거실은 주방을 겸하고 있어, 싱크대 찬장에 그릇과 컵 따위까지 구비했다. 아니, 이 정도 공간을 나 혼자 쓴다고? 누군가 함께 왔다면 음식 해 먹고 가볍게 와인이나 시드르 한 잔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혼자다. 여럿이 누려도 충분할 것을 혼자 뒤집어쓰고 즐기는 것. 이것을 사치라고 한다. 사치를 즐기기로 한 나는 샐러드와 쿠스쿠스로 구성된 레바논 도시락을 뜯어 천천히 먹으며 이 날의 일들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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