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넷째날 : 안시-쥬네브-안시-리옹
호텔이 아닌 일반 주택에서 하루를 묵으면 좋은 점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치 그 동네에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넓은 침대에서 혼자 눈뜨고, 바로 일어나지 않고 조금 뒹굴다가 후드를 뒤집어쓰고 동네 슈퍼로 나갔다. 조식 서비스가 없으니 셀프로 해야 한다. 샐러드와 요거트, 방울토마토를 사다가 아침으로 먹었다. 프랑스 슈퍼마켓은 식료품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다.
전날 충동적으로 결정한 쥬네브(제네바)행. 안시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해서 낮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티켓을 샀다. 숙소에서 나와, 무거운 짐 가방은 또다시 내니백에 맡겼다. 이틀 연속 맡기러 가니 까르푸시티 직원이 알은체를 해 주었다.
터미널에서 쥬네브 행 버스를 타니, 옆 좌석에 딱 봐도 한국인처럼 보이는 승객이 앉아 있었다. 그러면 말을 걸어야 재미가 있다. 나는 외향형 인간이니까. 옆자리 승객 김 씨는 부산 사람이지만 서울에서 회사 생활 중이며, 스트레스가 쌓인 차에 반항처럼 연차를 몰아 쓰고 유럽 여행을 결정했다. 그의 친구가 그르노블에서 유학 중이어서 친구 집에 며칠 묵다가 인터라켄으로 넘어가기 위해 쥬네브 행 버스를 탔고, 그 버스가 안시를 경유한 것이다.
여기까지 대화하다 보니 묘하게 기가 빨린 듯한 표정의 김 씨. 묻는 대로 잘도 대답하다가 마침내 스몰톡의 정석인 MBTI까지 털린 그는 내향형 인간이라고 했다. 내향인 김 씨는 처음 보는 외향인(나)과 쥬네브에 내려 르망 호수도 같이 보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이렇게 된 것이 매우 다행이었다. 나는 해외에서도 쓸 수 있는 은행 카드 하나만 믿고 약간의 유로화만 가져왔는데, 버스로 한 시간 왔다고 쥬네브에서는 유로화가 아닌 스위스 프랑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아뿔싸. 설상가상으로 내 카드가 스위스 프랑을 결제할 수 있는지 검색하려고 보니 인터넷이 먹통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심 로밍도 다시 설정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러질 않아서였다.
밥은 먹어 놓고 돈은 없을 뻔했던 나는, 김 씨의 다음 행선지가 이탈리아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인터라켄 방문 이후에는 다시 유로화를 쓰게 되니, 내가 유로 현금을 그에게 주고 밥값은 그가 카드로 결제해 주면 되는 것이다. 외향적 성격 만세! 악명 높은 고가의 점심식사(20유로짜리 스크램블에그)를 하고, 기념품 가게에 들러 티스푼을 하나 샀다. 여기서는 유로를 받아 주었다. 좀 더 돌아다녀 본 결과, 다른 가게에서도 유로화 결제는 가능하지만, 거스름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쯤에서 김 씨는 인터라켄 행 기차를 타러 떠나고, 나는 호수를 좀 더 보기로 마음먹었다. 르망 호수의 물결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갔다. 찰박거리는 물결 소리를 들으며 나는 평온해졌다.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산과 호수를 좋아한다. 아주 높은 산과 아주 큰 호수를. 다시 말해 압도적인 대자연의 풍경을. 장벽처럼 비현실적으로 솟은 산맥을 보며, 그 너머를 상상하고 큰 호흡을 하는 것을. 호기심과 모험심이 스르르 솟아오르는 느낌을.
안시와 쥬네브는 쌍둥이 자매처럼 각기 알프스를 끼고 큰 호수를 가졌다. 안시처럼 쥬네브 역시 여름이어도 습하지 않은 공기와 밝은 햇살이 좋았다. 제토 분수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고, 한낮의 빛 속으로 물방울이 잘게 흩어졌다. 호수 옆으로 다리를 건너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려던 참이었다. 내가 앉은 벤치에 누가 와서 앉았다. 아. 느낌이 쎄-했다. 눈이 붉게 충혈된 세네갈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전기 쪽 일을 한다며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어디서 왔니. 몇 살이니. 결혼은 했니? 왜 결혼을 안 하니. 결혼을 해야 행복하단다. 나랑 떠나자. 응?
한국에서도 내게 저런 소릴 하는 사람이 없는데(왜냐하면 그런 말을 했다가는 나와 다시 만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스위스까지 와서 세네갈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되다니. 그리고 자기랑 떠나자는 건 또 무슨 소리람? 불쾌해진 내가 자리를 뜨려 일어나자 그는 내게 연락처를 물었다. 당연히 거절했다. 그는 정말 이상한 일을 다 겪는다는 듯이, 우리가 이미 친구가 되었는데 왜 연락처를 주지 않느냐고 불평했다. 편견을 갖고 싶지 않지만, 유럽에서 동양인 여성에게 말을 거는 남성들은 인종불문하고 라포 형성과 예의범절에 대해 좀 배울 필요가 있다.
시가지는 거의 돌아보지 못하고 호수만 본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호수를 보러 왔고, 호수를 보았으니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멀리 보이는 건물 지붕마다 롤렉스, 파텍 필립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 방향으로 나가면 시가지가 있었겠지.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또 오자.
다시 안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이번엔 이층버스였다. 운 좋게 맨 앞자리에 탔다. 그 자리에 타면 내가 직접 운전하는 것처럼 멀리까지 보여서 좋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의 형태가 한국 산과는 달라서 핸드폰 카메라로 영상을 찍었다. 옆 자리 승객이 힐끔, 내가 찍는 산 쪽을 보았다. 뭐 저런 걸 찍나, 싶었을 것이다. 하기야 나도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별 것 아닌 골목길이나 빌딩을 촬영하고 있으면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안시에 도착해 짐 가방을 찾으러 갔다.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본 까르푸시티 직원이 나를 또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난 이제 몽펠리에로 떠난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바로 옆집인 레바논 식당에도 들러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문 밖에서부터 손을 흔들며 들어갔는데 나를 도와 준 시리아 아저씨가 아닌, 다른 아저씨가 나를 활짝 웃으며 반겼다. 내가 인사만 하고 지금 이 도시를 떠난다고 말하자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리아 아저씨가 말하길, 그 동료는 한국 드라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이라고.
떠나기 전 가볍게 저녁을 먹고 버스를 탔다. 보라가 나를 배웅하러 와 줬다. 내 여행의 마지막 날이 졸업시험 결과 발표일이라고 했다. 졸업을 하든 못 하든, 이제 다음번에는 한국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보라는 프랑스에서 너무 오래 고생했다. 잘되길 기원하며 버스를 타고, 모바일 티켓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깨달았다. 안시에서 몽펠리에까지 쭉 가는 게 아니라 리옹에서 환승 대기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