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환승 버스를 기다리며 쓴 노트
나이트버스로 알고 잠이나 푹 잘까 했던 나의 계획은 보기 좋게 삐끗하고 말았다. P의 계획이란. 그나저나 환승 대기라니, 어디에서요?
안시에서 리옹은 금방 도착했지만, 그건 그만큼 더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터미널 의자에 앉아 기다리려고 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직원들이 문을 닫으며 승객을 모두 쫓아냈다. 뭐요? 황급히 구글에 검색해보니 이 터미널은 0시 30분에 폐쇄되고, 야간 버스는 대기하는 곳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터미널과 버스 어플에는 그곳까지 찾아가기 위한 안내문도, 지도도 없었다. 역 직원이 뭐라 큰 소리로 주소를 불렀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점에 대한 불평이 구글에 리옹 터미널 리뷰로 잔뜩 달려 있었다. 별 수 없지. 눈치껏 사람들을 따라 나가서, 구글맵에 밤 정류장을 검색했다. 검색하고도 그 곳이 맞다는 확신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데, 가다 보니 꽤 많은 인원이 캐리어를 끌고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비로소 안심했다. 야간 정류장을 보니 실내가 아니라 웬 다리 밑이었다. 헛웃음과 욕이 같이 나왔다. 가다 보니 한 아저씨가 내게 길을 물었다. 자긴 파리에 가야 하는데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냔다. 아이고, 동양인 관광객한테 그걸 물으면 어떡해요. 그런데 어쨌든 내가 알려주긴 했다.
다리 밑에 도착해보니 앉을 자리는 딱히 없고, 약 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서 있을 자신이 없다. 길 건너에 공원이 보였다. 나 같은 신세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있어서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배터리는 버스를 탈 때까지 아껴 둬야 하니 가방에 고이 넣었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이럴 줄 알았으면 책이라도 한 권 가져올 걸 그랬다. 허공 보면서 멍하니 있으면 또 달갑지 않은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 것 같아서 노트에 지금 쓰는 이 글을 적는다. 그런데도 힐끔거리네. 뭘 봐. 콱, 씨. 아, 다가온다. 옆 자리에 앉는다. 돈을 달라고 하네. 술에 취했나. 술이면 다행이다. 혼자서 키득키득 웃는다. 이럴 땐 못 알아듣는 시늉이 최고다.
결국 자리를 옮겼다. 여기 공원은 위험한 곳이구나. 언제 봤다고 자꾸 돈을 달라는 취객에게 아, 아임 쏘리?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갸웃거리고 황급히 도망쳤다. 사람들이 많은 다리 밑으로. 버스가 계속 드나들고, 그걸 타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공원보다는 나을 것 같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웬 곰도 때려잡을 것 같은 아저씨가 자기 몸통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한 시간째 사람들을 노려보며 어슬렁댄다. 짐이 저만하면 어디 좀 내려놓고 한 자리에 서서 기다리지 왜 저리 돌아다닌담. 좀 더 밤이 깊으니 팔뚝만한 쥐들이 뛰어다닌다. 정말로 뛰어다닌다. 개 빨라. 아니, 쥐 빨라. 쓰레기통과 하수구를 바삐 오가는 쥐들을 보며 한 여자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옆에 있던 남자가 ‘라따뚜이’라며 껄껄 웃는다.
온갖 버스가 다 왔다 가는데 내 버스만 안 온다. 당연하다.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았다. 차 타면 기절하겠는데. 만약 제 때 깨어 내리지 못하면 나는 바르셀로나 북쪽에서 내리게 될 거다. 내가 탈 버스의 종착지는 거기니까. 오, 아찔한데. 그렇게 되어도 재미있겠지만 그건 내 계획에 없다. P는 계획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계획이 플랜A부터 E나 F까지 다양하게 있는 사람이다.
혼자, 둘이서, 서넛이 기다리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자기 버스를 타고 사라져 간다. 내가 가 본 적 없는 낯선 도시로 가는 버스와 탑승객들. 그들은 거기 사는 걸까? 여행객일까? 상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버스는 계속 들어오고 나간다. 이 터미널에는 지정된 탑승장이 없이, 공터에 버스가 들어왔다가 사람이 얼추 탄 것 같으면 그대로 나간다. 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눈을 잘 뜨고 버스가 들어오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봐야 한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밤이다. 워낙 연착이나 결행이 잦은 프랑스여서 더 그렇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버스가 왔다. 짐을 싣고 자리를 찾아 앉고, 좌석마다 마련된 충전 포트에 핸드폰 충전기를 꽂았다. 비로소 안심이 된다. 출발. 따뜻하고 약간 졸리다. 서양에서 밀폐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들어찬 곳이면 어디든 그러하듯, 약간 암내가 난다. 그걸 대비해 향이 강한 아로마 오일을 준비해 왔다. 코 밑에 바르면 좀 낫다. 오, 반대편 복도 좌석에 앉은 남자가 코를 곤다. 은은한 코골이가 아니다. 곧 숨이 넘어갈 것 같다. 앞, 뒤, 옆자리 승객들이 술렁거린다. 코 고는 사람의 앞앞 좌석에서 누군가 말한다. ‘세상에,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야?’ 사람들이 낮게 키득거린다. 코골남 옆 자리에서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이 킥킥 웃으며 그를 깨운다. 조용해졌군. 이 틈에 좀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