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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Jun 03. 2024

오늘 첫 출근을 했다. 양방원장님은 예전에 대학병원 실습 때 뵈었던 교수님이어서 같이 수다를 떨었고, 2과 원장님도 매우 살갑고 좋으신 분이라 맘 편히 도움을 받고 얘기를 많이 했다. 내가 없는 날 나오는 다른 젊으신 원장님들도 모르는 분이긴 하지만 다 나의 대학 선후배여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요양병원을 나온 이후 그동안 항상 원장님과 직원들 사이에 혼자 끼인 중간관리자로 일했는데 오랜만에 직장 동료가 여럿 있는 곳에 오니 너무 마음이 편했다. 내가 개원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는 원장이 되면 너무 외로워질 것 같아서도 있었다. 부원장으로 일하면서도 동갑인 직원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나를 버티게 해 주는 낙이었는데 다시 같은 직급의 동료들이 있는 곳에 오니 마음이 너무 즐거워졌다.

간호부와 원무과 선생님과 식당 찬모님까지 다들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라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한방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이라 자동차보험 환자 입원을 처음 받느라 우왕좌왕 헤매었지만 다들 친절하게 알려주어서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환자들과도 수다를 떨고, 원장님들과도 수다를 떨고, 직원들과도 수다를 떨면서 일한다. 너무너무 재밌다.


오늘 가장 재밌었던 환자는 카시트에서 내려지다 뒤차가 받아서 놀라서 자다가 깨는 증상이 있는 2세 남자 환아였다. 하나도 안 아픈 자석침 스티커를 붙여주려고 했는데 내가 인사를 하자 울먹이며 이모의 품으로 숨어 손발을 내어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스티커를 떼어 아기의 다리에 붙여주고는 “앗! 이게 뭐지? 하나도 안 아프네? “라고 말하며 그게 뭔지 쳐다보는 아이의 볼에도, 콧잔등에도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어머, 이게 뭐지? 너무 멋있다!! 더 멋있어지려면 손에도 붙여야 하는데 손도 좀 보여줄까?^^“라고 말하면서 왼쪽 손에도 스티커를 붙이고, 왼쪽 양말을 벗기고 발에도 스티커를 붙였다.

“와~~ 너무너무 멋있다!!” 칭찬을 해주자 아이는 오른쪽 발도 가리키며 양말을 벗기고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엽다! ^^ 나는 속으로 빵 터졌지만 얼른 오른쪽 손발에도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간호선생님이 옆 침대에 누운 아이 어머니에게 “아이가 침을 너무 잘 맞네요~^^“라고 칭찬을 했다.

마지막으로 빨간빛이 깜빡깜빡이는 전자뜸을 보여주면서 “야~~ 이게 진짜 제일 멋있는 거야~~” 하면서 아이의 손목에 척 붙여주자 아이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기다. 너무너무 재밌다. ㅎㅎㅎ


재밌게 일하고 집에 왔는데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나도 아이를 가지고 싶었는데.. ㅠㅠ 원래 나는 내가 우리 엄마처럼 될까 봐 절대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마음이 사라진 이후에도 내가 일찍 죽을 줄 알았기 때문에 아이를 가지는 상상은 해보질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너무나 극심한 위기에 처했을 때 나를 지탱해 준 생각은 ‘미래의 내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태어날지도 모르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버티겠다고 생각했다. 그랬지만 사실 내게는 신기루와도 같은 꿈이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는 잘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고양이를 안고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조금 서글프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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