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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Jun 12. 2024

깊은 잠

어제는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일로 고소를 한다고 협박을 당하는 일이 있어

너무 속상하고 심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이 과제 발표일인데 ppt에 논문 제목만 올려놓고 검토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른 논문을 다운받아 살펴봐야 했지만 너무 피곤해 새벽에 하는 것으로 미루고 잠들고 말았다.


오늘 새벽 일어나 과제 발표 2시간 전에 논문 5개를 다운로드하고, 급히 대충대충 읽으며 정리를 했다.

아마 과제를 이렇게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마저도 하나 읽고 피곤해서 침대에 가서 쉬기를 반복하다가

강의 시작 30분 전부터는 마음이 너무 속상해서 계속 울었다.

전남편에게 고소를 당해 다음 주에 법정에 서게 된 상황이 너무 속상했다.

어떻게 내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너무 상처가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내가 끝까지 정말 잘해드리려고 했던 사람에게 고소 협박을 당하고

심지어 어제 내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끝까지 사과도 없이 차단만 당해 버린 것이 화가 나고 속상했다.


오늘 강의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어떠어떠한 상황의) 높은 단계에서 용서가 아닌 공감이 필요하다.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언제든지 이 문제를 다시 소환해서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감은 그냥 이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정말 원했던, 갖고 싶었던 것에 대해 공감해 주는 것이다. 그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이 정말 얻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이런 행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것을 유지하기 위해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마음과 경험은 어땠을지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갖는 것이다.


내가 전남편에게 하려고 했던 것은 공감이었다. 나는 서러운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안타까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 나를 고소하겠다고 협박한 사람의 마음을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아무리 짐작해 보아도 그냥 모든 상황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통 터짐, 스스로는 옳다 여기고 타인에 대해서는 끝없이 정죄하는 교만함, 나에 대한 미움과 시기심만이 느껴져 기분이 나빠졌다. 심지어 자신의 고객들에게는 세상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고 내게도 처음에는 그렇게 행동했으면서 실제 마음과 앞뒤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 밝혀져 정말 기분이 나빴다. 내가 그 사람에게 아무리 최대한 공감을 해 보려 노력해도 지친 얼굴을 보아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친절과 공감은 다 억지로 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상황이 아무리 절실하고 급박한 것을 알았어도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서 절대로 안타까움이나 돕고 싶은 마음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고 그 사람은 억지 친절 연기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서 메마르고 지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게 절대 공감할 수 없어 질투만 나기 때문에 본인에게 잘해주기만 했던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외면한 채 지옥에 빠져 있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오늘 아침 강의가 시작되고 나는 5번째 논문을 아직 안 읽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급히 한 줄로 대충 요약을 해서 별문제 없이 발표는 잘 끝냈다.

이제 나를 당장 짓누르던 일정들이 모두 끝났다.

이번 주까지는 아무 중요한 일정이 없다.


나는 침대에 누워 기절하듯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바로 꿈에 빠져들어 기억도 나지 않는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꿈을 꾼 것 같은데

실컷 자다가 깨어보면 시간은 고작 10분이 지나 있고,

머리맡 옆 베개에는 나와 함께 늘어지게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가 있었다.

네가 없었다면 이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위로를 받았을까.. 생각하며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몸과 마음이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고 축 늘어졌다.

이렇게 깊이 잠들어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2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내 모습이 옆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와 똑같았다.

나도 항상 푹 쉬면서 먹고 놀고 잠을 자는 고양이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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