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반짝 Mar 19. 2024

시차적응 완벽 실패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새벽에 헬싱키에 도착해 식사를 했다. 핀란드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공항은 새로 지어서 아주 현대적이고 깨끗했다.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기념품샵에서 핀란드 숲이 그려진 예쁜 나무접시를 하나 골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다 창백한 얼굴에 창백한 머리색… 왠지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꼭 씹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다음은 헬싱키에서 밀라노로 갈아타는 비행기였다. 핀란드항공인 핀에어는 좌석도 넓고 비행기도 새 비행기여서 너무 좋았지만 기내식이 좀 아쉬웠다. ㅠㅠ 헬싱키에 올 때도 기내식 선택권도 없더니 밀라노로 가는 3시간이 넘는 비행 중에는 음료만 한잔 주었다. 배고픈데.. ㅠㅠ 그렇지만 핀에어에서 주는 블루베리 주스는 너무 맛있었다.


밀라노에서 내려 다 같이 버스를 타고 모나코로 5시간 동안 이동한다고 했다. 점심은 자유식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버스 이동 중에 휴게소에 들러서 샌드위치를 사 먹는 것이었다. 나는 부팔리노 샌드위치랑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오렌지 착즙주스를 주문하였는데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는 영수증이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내가 시키지도 않은 에스프레소가 추가되어 나왔다 ^^;;;  카페인 쓰레기인 나는 밤을 새울까 봐 걱정되어 한 모금 홀짝거리고 말았는데 그때 그 에스프레소를 다 마셨어야 했는데 ^^ㅎㅎㅎㅎㅎ


우리는 모나코에 도착해서 그레이스 켈리가 자주 산책하던 공원이랑, 결혼식을 올렸던 성당이랑, 왕궁 뜰 등을 둘러보았다. 공원이 너무 예뻐서 다들 인솔자 말을 듣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날씨는 너무 선선하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ㅎㅎㅎ


그다음으로는 프랑스 니스로 갔다. 유명한 니스 바닷가! 날씨가 흐렸지만 바다 구경을 하고 예쁜 마세나광장으로 갔다. 저녁이라 가로등과 광장 건물들의 살구색이 어우러져 너무 아름답고 예뻤다. 나는 좀 더 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촉박하고 교통체증도 있어서 계속 조금씩만 둘러보고 길을 떠나야 했다. ㅜㅜ 우리 일행들은 전부 은퇴적령기의 어른들이어서 혼자 외로운 도토리 1처럼 젊은이였던 나는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진기사가 되었다. 나의 열정과 사진실력에 감동한 일행분들은 결과물에 다들 매우 흡족해하셔서 뿌듯했다.


인솔자는 시차 때문에 오늘 일찍 자면 새벽 2시에 일어나게 되니 최대한 늦게 자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여기서 새벽 2시면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10시이다. 나는 어디서든 말을 잘 듣는 모범생으로써 인솔자의 말을 따라 최대한 늦게 자서 내일 완벽한 컨디션을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차적응을 위해 저녁식사를 하지 않고 물만 마시려는 계획을 세웠다. 인터넷에서 16시간 동안 공복을 유지하고 아침식사시간에 맞춰서 식사를 하면 시차적응이 아주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정보를 보았기 때문이다..


인솔자가 우리가 데려간 식당은 아시안 음식 뷔페였다. 웬 굴이랑 해산물이랑 이것저것 음식이 많았다. 구색만 맞추려고 이것저것 조금씩 퍼온 나는 일단 처음부터 실패의 조짐이 보이는 듯했다. 하루종일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해 목이 말랐기 때문에 깨끗한지 아닌지 확실치도 않은 (아마도 생수가 아닐 듯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질 않나.. 오렌지랑 리치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며 퍼오질 않나.. 나는 일행들과 앉아서 무심코 새우튀김 한 입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아주 구려 보이는 비주얼과는 다르게 새우튀김이 너무 맛있는 것이었다. ㅜㅜ 원래 새우튀김을 좋아해서 뷔페에서 항상 새우튀김을 중점적으로 먹던 나는 그만 이성을 잃고 음식을 쓸어 담아 먹기 시작했다. ㅠㅠ 같이 앉으신 일행분들은 왠지 곱게 살아오신 듯한 70대의 나이에 5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분들이셨는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물이 깨끗한지 의심스럽다며 식사를 잘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서 열심히 고픈 배를 채우고 있었다. ㅠㅠ


숙소에 도착한 나는 샤워를 하고 나서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원래 책도 읽으려고 가져오고 드라마도 다운받아 놨는데… 여행 기록도 남겨놔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나는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새벽 2시… 정확히 인솔자가 경고했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 ㅜㅜ 잠이 깨버린 나는 대학원 합격통지도 확인하고 아빠랑 변호사랑 연락도 하면서 아주 알찬(?) 시간을 보냈다. 이러면 안 되는데… ㅠㅠ 지금 이곳은 새벽 4시 45분이다. 내일 일정이 많아서 얼른 다시 자야 하는데..

작가의 이전글 헬싱키로 가는 비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